"신-복음주의(Neo-evangelism)"란 용어를 처음에 만들어낸 사람은 해롤드 오켕가(Harold J. Ockenga, 1905-1985)였으며 < Ockenga, Evangelical Root, p.38, 1978 >, 그는 1947년 찰즈 훌러(Charles Fuller)와 함께 훌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이 되었으며 나중에 연임하였다.<1947-1954 and 1960-1963> 뿐만아니라 신-복음주의 기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를 창간(1953)하고 운영이사장을 25년간, 편집장을 12년 역임 함으로써<한종희, 신복음주의 신학은 다원주의 신학, p.112> 오켕가(Ockenga)는 훌러신학교와 크리스챠니티 투데이가 "신-복음주의 신학"의 산실이 되게 하였고 두 기관을 통하여 신-복음주의 사상을 널리 보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주의"와는 전혀 다른 "신-복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자신들의 명칭인 "신-복음주의"란 말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보수적 용어인 "복음주의" 명칭만 사용하고 보수적 신앙인들처럼 활동하면서 로마 카톨릭과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협력하고 기독교의 흐름을 종교다원주의로 이끌고 있으며, 수십년간 많은 신학생과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훈련시키면서 기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래서 지금은 "신-복음주의"가 "복음주의"로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신-복음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복음적 기독교가 변질되도록 유도해온 신학사상이 "신-복음주의"이므로 그 변화의 뿌리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신-복음주의"란 용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 신-복음주의 신학의 바탕
1) 오켕가(Ockenga)의 신학사상
오켕가(Ockenga)는 1948년 자신이 제창한 "신-복음주의(Neo-evangelism)"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현대주의(modernism)와 근본주의(fundamentalism) 사이에(in between)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Jeffrey Khoo, Biblical Separation, 1999, p.91 >
『 신-복음주의는 복음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삶의 사회학적(sociological), 정치적(Political), 경제적(economic) 영역에 강조점을 둔다 . . . . . . . . . . 신-복음주의는 시대의 요청, 신학적 논쟁의 재정립, 교단적 리더쉽의 회복, 그리고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 즉 인류의 역사문제(the antiquity of man), 노아홍수의 타당성 문제, 하나님의 창조방법 등을<현대주의자들이 성경을 부인하기 위하여 문제삼는 것들-역자주>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두었다(emphasised the restatement of Christian theology).』< Harold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1976,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성경은 신앙면에서 오켕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립(in between)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 편에 서든지 아니면 세속에 속하든지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요구한다(수24:15). 그러나 신-복음주의는 중립적 입장에서 현대주의자들과 타협할 수 있도록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기로 다짐하면서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신-복음주의 신학"은 현대주의자들, 로마 카톨릭, 신비주의자들과 타협점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신학을 변경할 수 있으며, 복음운동(evangelical campaigns)이라는 명목으로 주저함 없이 사회학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하여 그들과 손을 잡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전통적 성경관을 무시하고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 사람들과 손잡고 새로운 이론을 적용한다. 그 새로운 이론들로서 기독교를 변질시켜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변질시켜 나갈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