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복음주의(Neo-Evangelism)와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의 혼합
맥가브란의 수제자였던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1981년 맥가브란의 뒤를 이어 훌러신학교 교회성장학의 주임교수가 되었고, 1982년에는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으로 이름난 빈야드 운동가(Vineyard Movement)이며 신-은사주의자(Neo-charismatic)인 죤 윔버(John Wimber)와 함께 훌러신학교 내에 "표적과 기사와 교회성장(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 이라는 학과를 신설하고 윔버는 객원교수가 되었다.< globalharvest.org/peter.htm > 죤 윔버는 1974년부터 4년간 훌러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와그너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치유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운동(Pentecostal)과 은사주의(Charismatic)에 특히 큰 관심을 가졌다.
그 후 윔버는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는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1982년 훌러신학교와 손잡고 "표적과 기사"의 치유전문 학과를 개설한 것이다. 죤 윔버가 "표적과 기사의 능력사역"을 통하여 개발한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운동을 가리켜서 와그너는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이라고 불렀고, 그가 저술한 "성령의 제3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이란 책에 처음 소개하였다. 성령의 제3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은 피터 와그너가 최초로 소개한 기독교신학이론(christian theological theory)인데 아래와 같이 구분하였다.< wikipedia >
제1 물결: 20세기 캘리포니아, 아주사(Azusa)에서 시작된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
제2 물결: 1960년대 개신교(Protestant)와 카톨릭(Roman Catholic)으로 확산된 은사주의운동(Charismatic Movement)
제3 물결: 1980년대 죤 윔버에 의한 신-은사주의운동(Neo-charismatic Movement) 또는 표적과 기사운동(signs and wonders)
윔버의 "빈야드운동"은 한국의 여러 교단(고신, 합동, 통합, 기성)에서 이단 또는 사이비로 규정한 바 있다.<1995-1998> 성경에도 잘못이 있다 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를 무시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표적과 기사"는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 때에는 성령의 역사가 아닌 거짓된 "큰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이 예고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 .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11,24). 윔버는 신-복음주의 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그의 사역도 역시 방법론에 의존하고 있다. 윔버의 능력사역은 두 가지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데, 경험(experience)과 실험(experimentation)이다.<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 그가 간증하는 경험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일화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이며, 그의 능력전도는 실험, 즉 "시도와 시행착오(trial-and-error)"의 실지시험(field test)을 통해서 자리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 . . . 나의 근성(at the core of my being)은 행동주의자이다. 능력전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새로 발견한 신학(my newfound theology)은 실지시험(field-test)이 필요하므로 세계로 나가서 내가 생각한 성경의 교훈이 서구사회에 실제로 적용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see if what I thought . . . in fact worked . . .). 그래서 1978년 나는 훌러신학교를 떠나서 현재 캘리포니아, 아나하임에 소재한 "빈야드 크리스챤 휄로쉽(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의 목회자가 되었다. 50명의 소그룹 분위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능력전도의 나의 이론들을 시험하였다(tested). 』< John Wimber & Kevin Springer, Power Evangelism, Revised, 1992, p.13,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의 능력사역은 검증되지 아니한 자신의 신학을 현지실험을 통해서 그것이 효과적인지를 스스로 확인한 것인데, 그 윔버의 신학은 바로 "기독교 신학을 재점검하여 다시 진술하는 오켕가의 신-복음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것이며, 윔버의 방법론은 맥가브란이 주장한 대로 성경의 교리를 뒤로 하고 철저히 실용주의에 의존하는 심리학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윔버는 케빈 스프링거(Kevin Springer)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능력사역이 어떤식으로 시작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An interview with John Wimber, Part II: Discovering the Healing Ministry," First Fruits, May/June, 1985, p.18)<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
『 우리가 그 사역을 어떻게 하는가를 말씀드리자면, 소그룹을 가지는 것이 첫번째 시작 요소였습니다. 우리의 크리스챤 생활은 주로 소그룹 모임으로 해왔지요. 그래서 제가 멤버들에게 "정말, 시도와 실패(trial and error)를 (실습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곳은 바로 소그룹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모임에서 바로 첫번째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An interview with John Wimber, Part II: Discovering the Healing Ministry," First Fruits, May/June, 1985, p.18)<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하나님의 성령의 "표적(signs)과 기사(Wonders)"를 나타내기 위해서 시도와 실패(trial and error)를 거듭하는 실험을 거쳐서 얻으려고 한 것이 윔버의 능력사역의 출발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과 기사"는 사람이 고안해내는 것도 아니며, 인간이 시도하고 실험한다고 해서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과 기사"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남으로 사람들을 심히 놀라게 한 것이었다(눅10: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도리어 제자들에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확신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눅16:31-kjv)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믿음에 있어서 "표적과 기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표적과 기사보다도 더 권위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베드로도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라고 하였다.
보지않고 믿는 믿음은 장래의 영광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할 수 없는 즐거음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확실히 증언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은 우리가 보지않고도 믿는 복된 믿음이다. 마지막 때의 믿음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못하여도 "예수를 사랑하고, 장래의 영광을 기뻐하는 것" 이다. 마지막 때의 성도는 육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신령한 세계를 보아야 한다. 이 원리를 알지 못하면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아 그들의 올무에 발목이 잡힌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큰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인데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다(마24:11,24).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signs)을 구한다"(마16:4, 눅11:29)라고 하셨고(눅11:20), 그 이유는 "시대의 표적(signs)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마16:3, 눅12:56). 사탄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변장하며 그의 일군들도 의의 일군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이 얼마든지 그렇게 표적과 기사들을 행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놀랍고 큰 일이 아니라고 성경은 증거한다(고후11:14-15). 다시말해서 마지막 때는 악한 시대이고, "영적으로도 음란한 세대"이므로 사탄은 이상한 체험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영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있는 교회 안에 들어가서 가짜 큰 표적과 가짜 큰 기사를 얼마든지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신비주의의 거센 물결이 세상을 휩쓸게 되리라는 예고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이상한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고 한다면, 그는 미혹의 영에게 사로잡히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성경말씀 속에서 거룩하시고, 영원 불변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신의 머리 속에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 따라서 영적으로 분간하지 못하고 잘못된 기독교 분위기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기독교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도의 때이므로 교회 안에는 "배도하는 일"(살후2:3)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오늘날 기독교의 대세는 "넓은 길"(마7:13)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의 치유 개념은 로마 카톨릭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그는 기적에 대한 타당성을 말할 때 로마 카톨릭에 더 신빙성을 두었고, 윔버가 소유한 "신적 치유(divine healing)"의 풍성한 유산은 로마 바티칸이 지정한 성인들(saints)의 기적에도 나타난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기적에 관한한 개신교식 접근보다도 로마 카톨릭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는 것들을 그의 저서인 "능력 치유(Power Healing)"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래서 그의 능력치유의 개념은 로마 카톨릭의 신비주의에 가깝다.
『 나는 특별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신적 치유(divine healing)라는 것은 개신교(Protestant)와 카톨릭 전통(Catholic traditionss)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 . . 로마 카톨릭 교회는 기적에 대한 설득력 있는 표준(stringent criteria)을 가지고 있으며, 기적의 신빙성을, 특별히 치유의 신빙성을 확실히 하였다. 치유(healing)는 성인(saints)의 반열에 올려지는데 있어서 필요조건 중의 하나이고 초자연적 보증의 표시(a supernatural seal of approval)이다. . . . . . 많은 개신교의 신학들(Protestant theologies)에 비하여 로마 카톨릭의 신학(Roman Catholic theology)은 현대식 기적들(modern miracles)의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프랜시스 맥낫(Francis MacNutt)은<1960년대에 은사주의 회복을 강하게 주장하였던 로마 카톨릭의 사제로서 치유에 관한 책을 썼다-역자주> 기록하기를, "사실상, 대부분의 개신교인들 보다도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더 치유(Healing)를 이해하기가 쉽다. 그 이유는 성인들의 반열에 올릴 때 지금도 요구되는 치유의 은사를 포함하여 기타 특별한 은총을 받은 성인들의 전통(tradition of saints) 속에서 우리가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 카톨릭 신자들은 신적 치유(divine healing)를 믿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다"라고 하였다. 』(John Wimber & Kevin springer, Power Healing, 1987, pp.7,10,11) <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의 치유 개념은 심령치료(Psychic Healing)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성경에는 "표적과 기사"가 일어날 때 치유하는 사람이 "직관적 통찰(intuition)"로서 치유받는 사람의 속을 파악하고 치료한다는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흔히 심령술사(psychic healer)들에게서 타나나는 현상이다. 심령술사들은 치유 방법에 있어서 묵상하거나, 마음 속에 형상화하는 것이나, 기타 심리작용과 심리학으로 교묘하게 내적 치유를 다루는데, 아네스 샌포드(Agnes Sanford)와 그의 제자들이 행하는 수법이다.< Agnes Sanford는 1960s-1980 사이에 미국의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의 중요 인물이며, "내적치유 운동(Inner Healing Movement)"의 창시자이다-역자주> 윔버가 진술하는 능력치유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가 그러한 심령치료의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그는 서구식 복음주의를 비난하면서 말하기를 "대부분 서양의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직관적 통찰(intuition)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John Wimber, Power Evangelism, Revised, p.10> 윔버가 그렇게 비난하는 이유는 그가 치유받는 사람의 속사정을 직감적 통찰로 감지하는 동양의 신비적 풍습(Eastern mystical practices)을 실습하기 때문이다.
윔버가 그러한 것을 실행할 때에 보통 사교(occult)의 최면술사들이 손을 뻗어 손에서 기가 흘러나오게 하여, 그 영기(aura)로 심령치유(psychic healing)하는 방식도 모방한다.< Media Spotlight >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 24절에서 예고하신 말씀대로라면, 마지막 때에는 성경적이 아니더라도 큰 표적과 기사가 얼마든지, 실제로, 많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으며, 또 예수님은 그 놀라운 표적과 기사들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셨다.
맥가브란(McGavran)이 실용주의 철학개념으로 심리학을 신학교에 도입한 이후 심리학과가 개발되어 오고 있는데 그 심리학의 성격은 기술적 용어로 "신경언어심리학(psycho-neural linguistics)"이라고 하며,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에서 아주 널리 발견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Dager, Media Spotlight, vil.22, Apr. 1999 > 그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신분석의 인공두뇌학(Psycho-Cybernetics)"과 부분적으로 결합(overlap)하여 마음을 새롭게 프로그램(reprogram)하므로써 생각과 습관을 바꾸게 하는 심리요법이다. 기독교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많이 의존하는 것은 A. W. 토저(Tozer)의 말대로 "심리학의 이런 저런 학설을 교묘히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얄팍한 종교"를 보이는 것이다.<토저, "내 자아를 버려라", 규장, pp.22, 26> 훌러신학교는 미국 심리학 협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역사상 최초로 신학교에 심리학 학과를 도입하였다.< wikipedia >
훌러신학교가 죤 윔버와 함께 "표적과 기사와 교회성장"이라는 학과를 시작하였는데, 바로 그러한 심리학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보며, 그것은 신본주의(하나님 중심)가 아니라 인본주의(사람 중심)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문화에 큰 매력을 느끼고 <신접자, 술사, 복술자, 박수, 진언자 등, Ref.신18:9-11> 그 문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꾸며내는 것들을 더 신뢰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학대하였으며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다가 마침내 구약교회는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하였다. 하나님이 그 내용을 성경에 기록하신 이유는 마지막 때의 신자들이 그것을 거울삼아서 똑 같은 죄(신18:9-11)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고전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