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을 분리했다
사탄은 오늘날 신앙과 생애를 분리해 놓는 일에 크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이름뿐이며 생활과는 별개의 것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신앙을 하는 사람은 아닌지, 우리 개인 생활에서, 가정과 이웃들에게, 직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표할 수 있는 신앙인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1) 현대의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은 신앙과 삶을 분리해서 살므로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매우 경건한 척하면서, 회당과 거리에서는 매우 거룩한 척하면서 그들의 삶은 온갖 악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같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어떤 무덤들은 속에는 송장이 있으나 무덤의 겉은 회로 칠하여 매끈하고 깨끗하게 손질해 놓았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적인 신앙도 문제였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는 신앙적 의무를 행하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만족하는 것이었습니다. 속마음에는 분노가 있어도, 이웃과 싸웠어도, 용서를 못한 사람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난 신앙적 의무를 행하므로 그들은 안위를 얻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혹 교회에서의 삶과 가정에서의 삶이 다른, 이중인격을 가지고 위선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고대의 바리새인들처럼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의 의무를 행하므로 신앙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충실하고 열심히 봉사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 개인의 삶에서의 죄악들을 봐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안 볼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의 입으로뿐 아니라 그들의 삶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
2) 바벨론의 관습에서 분리되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이익을 추구하고 유행을 따르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탐식과 음주와 금지된 쾌락을 통하여 고상한 인간성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를 견책하는 대신에 오히려 물욕과 연락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추기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공급할 수 없는 교회의 자금을 보충하기 위하여 너무도 흔히 세속적인 방법들을 사용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날의 교회에 오셔서 종교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고 있는 연회와 부정한 거래들을 보신다면, 그분께서는 일찍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내쫓으신 것과 같이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런 자들을 내쫓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상은 자아 방종에 빠져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고상한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세속적 만족과 죄악적 습관을 완전히 내버리지 않으면 성화는 진실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3)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바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가장 의미 깊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유할 놀라운 능력과 지식을 열어서 보여 줍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그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는 것이그들의 특권이었습니다. 사도는 이어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간절히 구하였습니다(엡 3:16-19).
4) 믿음과 순종을 분리한 결과
신앙과 생애를 분리하기 위해 사탄은 먼저 믿음과 순종을 분리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오직 믿음만을 주장하게 하고, 오직 믿음이 아니면 그것은 이단이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주장하는 율법주의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지나치게 자신의 노력과 헌신과 희생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어보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매우 무겁고 엄중하며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과 순종을 분리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얻었고 그의 믿음을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을 통해 증명하였습니다. 순종은 믿음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누구나 지식적으로는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믿기만 하는 것은 사탄도 합니다.
5) 신앙과 생활
성경은 분명히 신앙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
복음을 입술로만 말하지 말고 삶으로 보여주도록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인터넷만 검색하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씀과 진리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성경의 진리를 찾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진리를 위해 목숨 거는 자들이 없습니까? 진리의 지식이 아니라 진리화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얼굴만 봐도이 사람은 진리를 가진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참이라고 생각할 사람, 진리로 거룩하게 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치면서
사탄의 분리작전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결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는 것들은 기도와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길뿐입니다. 기도로 하루를 열고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항상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합니다. 길을 걸을 때나 일상적인 의무를 행할 때에도 우리 마음이 늘 하늘을 향해 열려있게 합시다! 때로는 기도할 마음이 없을 때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정말 우리 영혼의 호흡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고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하며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신앙생활에 힘이없고 낙망하게 되는 이유는, 말씀을 등한히 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강하게 느껴지고 목적 없이 방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도록 합시다! 말씀에서 영적 생명을 취합시다!
모든 문제는 말씀을 등한히 함에서 시작되므로 문제의 해결은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포도 가지가 원줄기에 연결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열매가 맺히듯이, 우리 삶에도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