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의 도전에 대해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 “신정통주의”(Neo-Orthodox)이다. 실존주의에 철학적 기반을 둔 신정통주의는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했으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실존적으로 주관화시켜 버렸다.
대표적인 신정통주의 신학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자”라고 불리는 “칼 바르트” (Karl Barth, 1886-1968)는 성경과 계시를 구별했는데, 성경은 참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증언이므로,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부 모순과 문자적 오류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성경은 자유주의자들처럼 이성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성경 그 자체는 오류가 있지만, 신자가 성경을 읽거나 선포되는 성경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게 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자유주의에 대한 반기를 들고 일어난 신정통주의는, 성경의 무오성과 신적 기원을 부인한 자유주의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성경을 개인의 종교적인 경험과 체험을 해석하는 수단으로 이해하게 하여, 교인들이 자의적인 신앙을 추구하게 하는 발판을 제공했다.
그러나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의 도전보다 더 심각한 도전 가운데 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현대인들의 사고와 문화의 구석구석에 깊이 파고드는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또는 “탈근대주의”의 도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 이성의 절대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무한한 진보와 발전 가능성이라는 근대주의(Modernism)의 믿음에 대한 회의와 반대로부터 시작되었고, 보편적이거나 절대적인 진리를 부인하며, 모든 가치와 지식과 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한다. 사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인간 이성의 절대성에 대한 계몽주의적인 근대의 믿음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서 절대적 권위를 지닌 성경의 권위 앞에 머리를 숙이고 성경으로 돌아오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성경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 이성에 기초한 진리를 추구면서, “상대적” 진리를 추구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진리는 다 상대적인 진리다”라고 주장하면서도, “모든 진리는 다 상대적인 진리다”라는 이 주장만은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21세기 사상과 문화의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진리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자기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다 옳다는 상대주의를 주장한다. 모두에게 옳은 객관적 진리는 없으므로, 결국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태도는 성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이라는 주장에 대해 수용할 수는 있지만, 성경은 결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인 진리라는 것이다.
즉, 성경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진리이지,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나 교인들이 절대적인 진리, 객관적인 진리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들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성경의 교훈을 상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경을 받아들일 때, 자기가 원하는 말씀은 진리라고 생각하는 반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은 비진리로 여기게 된다. 즉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오래전 사사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이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갔다면,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오하고 최종적 권위를 가진 왕의 말씀,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기 쉽게 된 것이다 (삿 21:25).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3-4)
오늘날이 신앙과 삶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법칙인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성경을 가까이해야 할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신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신학을 공부하느라 모든 신학의 뿌리요 원천인 성경을 읽을 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하고, 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많은 신학자들의 수많은 이론을 연구하며 강의를 준비해야 하기에 막상 모든 신학을 판단하는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 성경을 연구할 충분한 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며 가르쳐야 하는 목사들은, 온갖 교회 행정과 다양한 사역에 매여 성경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 교인들의 상황은 어떠할까? 장년들은 경제 활동과 여가 생활로 바빠서 성경을 가까이하지 못한다고 하고,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학원과 입시와 취업에 매여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교회의 온갖 부정적인 모습들은, 신자들이 성경의 교훈을 멀리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생활을 한 대가로 맛보는 쓰디쓴 열매들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성경을 무오한 절대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앙과 삶의 유일한 최고의 법칙인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살아가는 교회들이, 중세의 교리적 타락과 도덕적 윤리적 부패함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신앙과 삶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법칙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의 권위를 소중하게 지키며, 하나님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종교 개혁기 당시에만 필요한 신앙 구호가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 특별히 포스트모더니즘에 포위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반드시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하는 진리다.
발체: 개혁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