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냉대에서 신학적 환대로
최근의 보고서를 보면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이 더 크다고 응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율배반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 때문입니다. 이것은 삶의 본이 되지 못한 봉사의 모습이 얼마나 무익한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또 다른 말로 철저하게 이원론적인 신앙에 물들여 있음을 봅니다.
도대체 그렇게 찬란하게 성장하였던 교회가 이렇게 부끄러움의 대상이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신학적 냉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장을 위하여 신학적 논의를 포기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교회 성장으로 일원화 되었습니다. 말로 안 되는 일이 일어나도 교회만 성장하면 다 용납합니다. 비인격적 모습을 보여도 성장만 하면 다 용서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쓰시니까 그렇게 성장하였다고 받아들입니다.
이단들이 득세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신학과 성도들의 교리의 무지에 있습니다.
설교는 신학의 열매입니다. 신학이 정제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설교입니다. 신학이 없는 설교는 빈 수레와 같습니다. 그리고 회심하는 성도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혹 종교인은 양성할 수 있어도 회심한 그리스도인은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다시 살아나려면 바른 신앙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바른 신학위에 다시금 세워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신학의 무지가 교회 성도들의 무지를 낳게 하였습니다.
이전의 교회는 신학을 가르치면 지식에만 머문다고 냉대하였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덕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신학은 교회를 건강하게 세웁니다. 구원받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배우고 사는 일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을 보고,,듣고, 행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르침을 배우고 기억하여야 합니다.
신앙은 교회 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으로 완성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바른 신학위에 세워질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님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를 아는 일에 매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다시 살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