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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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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12-10 17:16
세례는 반드시 물속에 잠기는(침례) 방식이어야만 유효하다고 단호한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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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69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는 명령을 남기시고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님의 명령이요, 초대교회에서부터 내려오는 오랜 전통이다. 교회 안에 세례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세례가 행해지는 방법이나 대상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거나, 심지어는 극한 대립 양상까지 보이기도 한다. 이 문제의 해결은 세례의 근본적인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1. 세례의 의미

성경에 사용된 세례라는 말은 본래 ‘물에 적심, 담금, 찍음, 염색, 씻음, 목욕’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말은 기독교 종교의식으로의 세례를 의미할 때뿐만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 물을 찍거나(눅 16:24), 떡을 찍어 나눌 때(요 13:26)에도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께서는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종교의식으로서의 세례를 말씀하면서, 세례가 갖는 의미를 여러 가지로 설명했다. 롬 6:4,7, 골 2:12에서는 세례가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이 다시 살아남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다. 엡 5:26, 딛 3:5에서는 죄로 더러워진 마음과 생활을 깨끗하게 씻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리고 고전 12:13, 갈 3:27에서는 한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따라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받고 죽음에서 생명에로 옮겨진 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됨을,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들이 머리되신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하나의 몸이 됨을 물을 가지고 표하고 인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께서는 세례를 가리켜 ‘거룩하신 자에게서 받는 기름부음’이나 ‘주께 받은 기름부음’(요일 2:20, 27), 또는 ‘성도를 함께 모이게 하는 주 예수의 이름’(고전 5:4), 또는 ‘내 몸에 가진 예수의 흔적’(갈 6:17)이라고도 표현했다.

2. 세례의 기원

기독교의 세례가 유대인의 결례에서부터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들은 레위기 15장이나 민수기 19장의 기록에서 보는 것과 같이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가지고 있었다. 선지자들은 정결 의식을 염두에 두고, 씻음에 대하여 자주 언급을 한다(사 1:16, 렘 4:14, 겔 36:25 등).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구원을 받은 것(출 14장)이나 나아만이 요단강 물에서 씻음으로 병이 나았던 것(왕하 5장), 또는 제사장을 위해 회막에 물두멍을 두었던 것(출 30:18) 등의 사례들에서 보는 것처럼 물로 정결케 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유대인의 결례는 예수님 당시에도 계속되고 있었다(막 7:3,4. 요 2:6). 따라서 죄 씻음을 의미하는 기독교의 세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유대인의 전통적 규례인 결례는 어느 정도 세례의 기원으로 여겨질 만한 여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의 결례를 세례의 기원으로 볼 수는 없다. 결례는 성례적 의미로 행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씻기 위한 것이지 씻어 깨끗해짐을 표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받으셨던 세례요한의 세례에서 세례의 기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요한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눅 7:30, 요 1:33). 예수님께서도 요한의 세례에 하늘로부터 오는 권세가 있음을 암시하셨다(막 11:30). 그러나 요한의 세례를 기독교 세례의 기원으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세례이었을 뿐, 회개의 결과로 얻어진 죄 사함을 인치는 세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의 세례는 임박한 천국을 소개하는 세례이었을 뿐, 그리스도와 함께 임한 천국의 소유를 표하는 세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요한의 세례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지 않았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점 때문에, 요한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사도 바울에게 다시 세례를 받았다(행 19:5).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기독교 세례의 기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서,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천하에 공포하셨다.

한편,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베풀었던 세례의 경우는 기독교 세례와 가장 가까운 세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요한의 세례와 같은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에 기독교 세례의 기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 세례의 기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우리는 세례의 기원을 예수님께서 친히 베푸셨던 세례와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 막 16:16)고 하셨던 명령에서 찾아야 한다.

3. 세례의 대상

세례는 아무에게나 베푸는 의식이 아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세례에는 반드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세례 그 자체가 믿음을 생겨나게 하거나 구원을 받게 하는 절대적 조건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 대한 증표로 행해지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도들께서는 예수님의 명령을 쫒아, 반드시 먼저 복음을 전한 후에 그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었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전 인격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그 믿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릇된 확신에 메이거나, 뜨거웠던 결심이 쉬 식어지는 경우를 경험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믿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믿음은 입으로 시인하는 형식, 즉 신앙고백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그 내용을 확인시킬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께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말씀했다.

세례는 자신의 믿음을 분명하게 입으로 시인하여 고백하는 사람에게 행해진다. 예수를 믿은 기간이나 나이는 큰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험으로 볼 때, 처음 믿은 사람이나 어린 아이들은 잘못된 판단이나 일순간의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무엇이 참된 믿음인지, 또 그 믿음을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함과 동시에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정한 학습기간을 두거나 최소 연령 기준을 마련하기도 한다.

어린 아이도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죄 씻음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구원을 인치는 의식인 세례는 어린 아이에게도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고백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신앙고백을 기초로 그 어린 아이가 구원받을 언약 백성임을 내다보며 세례를 베풀게 된다. 이것이 유아세례이다.

4. 세례의 방법

세례는 물을 사용하여서 죄 씻음을 표하고 인(印)친다. 물은 지정된 재료이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물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물을 뿌리거나, 찍어 바르거나, 붓거나, 물속에 잠기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세례는 반드시 물속에 잠기는(침례) 방식이어야만 유효하다고 단호한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침수(침례)만이 유일한 세례 방법이라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세례라는 단어는 물속에 잠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항상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전치사와 함께 사용이 되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다시 산 것을 인치는 것을 그 중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성경이나 초대교회가 침수방식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여기에 제시된 이유들은 모두 다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이유들만 내세우는 것은 그것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면들을 지나치게 무시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세례라는 단어는 물속에 잠기는 것만이 아니라, 물로 씻는 것이나 찍는 것이나 뿌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죄 씻음을 통해 정결케 되는 것을 더 중요한 의미로 표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경에서 세례가 베풀어졌던 사례들은 그것이 반드시 침수 방식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베드로가 베풀었던 하루 3천 명의 세례(행 2:41), 빌립보 간수가 한 밤중에 온 가족과 함께 받았던 세례(행 16:33) 등, 오히려 침수 방식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세례가 베풀어졌을 가능성이 더 많음을 보여주는 상황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생략) 반드시 침수 방식만을 유일한 방법으로 고집해야 할 필요는 없다. 세례에서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참된 믿음과 신앙고백이요, 이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세례에 필요한 것은 물의 사용 방식이 아니라, 함께 계셔야 할 성령의 역사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다. 만일 세례 때에 물을 사용하는 특정한 방법 때문에 세례 때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세례 그 자체를 구원을 생겨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나 공로로 여기는 것과 같은 오해를 낳게 될 것이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다는 사실을 표하고 인치는 의식이다. 세례는 이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물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진다. 그러므로 세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과 신앙의 고백,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물을 사용하는 방식은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

박일민 교수 /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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