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의 약속은 경건한 자에게 선을 이룬다.
약속은 하나님의 손의 표이다. 안전을 얻는 것을 좋은 일이 아닌가? 약속은 복음의 젖이다. 그리고 젖은 어린 아이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닌가? 이 약속들은 “보배로운 약속”(벧후 1:4) 이라 불린다. 이는 곧 실신하려는 영혼을 일으키는 영혼의 강심제이다. 이 약속들은 덕으로 충만하다.
우리가 죄책 아래 있는가? “자비롭고 은혜로운 여호와” (출 34:6)라는 약속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예전처럼 빛나는 옷을 입으시고 황금 홀을 내미셔서 가련하게 떨고 있는 죄인을 자기에게 오라고 격려하신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다.” 하나님은 벌하기보다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에게 있는 죄보다 그분 안에 자비가 더 많다. 자비는 그분의 본성이다. 벌은 본성적으로 꿀을 주며 화나게 할 때에만 침을 쏜다.
범죄한 죄인은 “그러나 나는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분은 은혜로우시다. 그분은 우리가 자비를 받을 자격이 있어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자비 베푸시기를 기뻐하기 때문에 베푸신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무슨 상관인가? 어쩌면 내 이름은 면죄부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신다.” 자비의 창고는 고갈되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보화가 쌓여 있으니, 어찌 당신이 자녀의 몫을 받지 않으리요?
우리가 죄의 오염 아래 있는가? 선을 이루는 약속이 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호 14:4)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은혜도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신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사 44:3) 이 약속은 성화시키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때로는 그릇을 씻는 물에, 때로는 밀을 까부르고 공기를 정결하게 하는 키(fan)에, 때로는 금속을 정련하는 불에 비유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은 영혼을 정결케 하고 성결케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신다.
우리가 큰 곤란에 처해 있는가? 우리에게 선을 이루는 약속이 있다. “저희 환란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시 91:15).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곤란에 빠지게 하지 않으시며 거기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 옆에 계실 것이다. 그들의 힘이 빠질 때 그 머리와 가슴을 붙드실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약속이 있다. “그는 환란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시 37:39) 영혼은 “오, 나는 시련 때에 넘어질 것이다”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힘이 되실 것이며, 자신의 힘이 우리에게 있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그 손을 더 가볍게 움직이시거나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외적인 궁핍을 두려워하는가? 이런 약속이 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34:10) 만일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가질 것이다.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이라면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출 23:25) 이 복은 단물이 잎에 내리듯이 떨어진다. 이 복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작은 것을 달콤하게 한다. 내게서 고기를 거두어 가라. 그러면 내가 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계를 잇게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다음 성경을 숙독하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다윗은 자신의 경험으로 말한다. 경건한 자가 그처럼 실추된 상태를 보지 않았으며, 경건한 자가 아주 낮아져서 먹을 떡 한 조각을 얻지 못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 주님이 경건한 부모에게는 잠시 궁핍의 시련을 주시겠지만, 그 자손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경건한 자의 자손은 먹을 것을 공급받을 것이다. 다윗은 의인이 떡을 구걸하거나 버림을 받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 그는 큰 곤경에 내몰릴지라도, 버림을 받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하늘의 후사이며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신다.
질문. 약속이 어떻게 선을 이루는가?
대답. 약속은 믿음의 양식이다. 그리고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선을 이룬다. 약속들은 믿음의 젖이다. 아이가 젖가슴에서 양식을 빨듯이, 믿음은 그 약속에서 양분을 빨아들인다. 야곱은 심히 두려웠다. (창 32:7) 그의 영혼은 곧 넘어질 것 같았다. 이제 그는 약속으로 나아간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창 32:12) 이 약속은 그의 음식이었다. 그는 이 약속에서 아주 큰 힘을 얻어 기도로 주님과 더불어 밤새도록 씨름할 수 있었고 복 주실 때까지 주님을 보내 드리지 않으려 했다.
이 약속은 또한 기쁨의 샘이다. 이 약속에서 위로하는 것은 세상에서 당황하게 하는 것보다 많다. 우르시누스는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는 약속으로 위로를 받았다. 이 약속은 기절하는 자에게 잘 듣는 강심제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약속은 그물에 달린 낚시찌와 같아서 마음이 괴로움의 깊은 물에 빠지지 않도록 붙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