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들은 그가 쓴 것은 별로 없고 대개 그의 부인이 과거 법원에서 속기사로 일하던 속기 실력으로 남편이 강의한 것이나 애급에서 영국군인들에게 설교한 내용을 모두 문자 그대로 받아 기록하여 Oswald 가 죽은 다음에 펴 냈는데 My Utmost for His Highest 라는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매일 일기장을 쓴 것 처럼 매일 매일 그 날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일종의 수상록 비슷하게 편집되어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며 이 책의 판매부수도 상당하다. 요즘은 한국에서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Chambers 의 신학을 알기위해서는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그에게 영향을 준 학자들이나 목사들 그리고 그가 관계했던 신앙운동을 아는 것이 지름길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한바 있지만 Chambers 는 예수를 믿기 시작하자마자 League of Prayer 라는 기관의 창시자인 오순절 신앙을 가진 Harris 와 교제하면서 그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고 특히 Keswick 신앙운동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그가 읽은 책들은 독일의 신비주의 신학자 인 Johann Tauler (1300-1361) 였다. 그는 철저한 신비주의자로 항상 성령을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가 주장하는 내적경험 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내적 경험( 신비적으로 얻는 내적 경험) 이 가장 중요하고 내적 경험에 치중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그의 독특한 신학은 그가 예수님의 승천을 설교할 때도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언급은 없고 내적 경험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one with God) 신비스런 경지만 논했다.
오늘의 Henri Nouwen 이나 Thomas Merton 같은 생각이었다. Nouwen 이나 Merton 그리고 Pierre Teilhard de Chardin 은 모두 천주교 신부들이다. Teilhard de Chardin (타이하드 드 샤르뎅) 은 인간의 머리도 진화한다고 가르친다. Oswald는 또한 사람의 신학자의 영향을 받았는데 Peter Taylor Forsyth (1824-1921) 라는 목사인데 그의 사상은 “이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말고 ”Justification by holiness" 즉 “성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Oswald 는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그의 신학을 짐작할만 하다.
여기서 잡시 영국에서 1875 년에 시작된 Keswick 운동의 성격을 보고자 한다.
이 운동은 이윽고 미국과 카나다로 펴져 나갔는데 목적은 교리를 연구하거나 전파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침체된 교인들에게 새로운 힘을 넣어주는 사역을 담당했고 오늘날도 그런 사역을하고 있다. 이 운동의 골자는 “승리의 기독도, Victorious Christian" 인데 이런 승리하는 기독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은 회심한 후에 ”성령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 오순절이나 순복음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정통적 기독교의 가르침은 사람이 회심하는 것은 성령으로 되어 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고전 12:3; 롬 8:9).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거듭날 수 없다 (요3:5, 딛3:5).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난 후에 다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다. 거듭난 다음에는 “성령의 충만” 이 있을 따름이다. “성령충만” 이란 다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점점 신앙이 성장해 가는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Joseph Price라는 부흥사는 이 점을 간과하기 때문에 설교할 때 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 받았으니 회개가 필요 없고 오직 감사만 해야한다“ 고 이단적인 설교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가 사해 진 것은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를 가리워주셔서 죄가 있지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죄없다고 간주(看做)해 주시는 은혜이지 우리의 죄가 하루 아침에 천사처럼 없어져서 도모지 죄를 짓지 않는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중생한 사람도 죄를 짓는다 불신자와 차이는 죄를 “상습적으로 아무런 가책없이 함부로 짓지 않은다는 것이 요일 3:9 의 말씀의 해석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