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칼빈주의는 학문의 본질적인 자유를 발전시켰다.
학문에 있어 자유는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것이지만, “학문의 자유는 방종이나 무법에 떨어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카이퍼는 말한다.모든 학문은 “자신의 주제와 지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고유한 방법이 요구하는 바를 엄격하게 지”킬 때에 자유로울 수 있다고 카이퍼는 말한다.
그리고 학문이 가지는 자유는 “학문에 꼭 필요한 원칙에 뿌리를 박지 않은 모든 부자연스러운 속박에서 자유로운데 있다”고 하면서 중세 대학이 교황권에 의해 통제된 것을 역사적 선례로 제시한다. 그에 반하여 칼빈주의는 “대학을 지배할 영적 머리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로마교 국가에서 억압받던 지식인들에게 자유로운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5.4. 칼빈주의는 학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했다.
네 번째로 카이퍼가 주목하여 말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와 해방은 필연적으로 원리의 첨예한 갈등과 충돌에 이르게 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카이퍼가 논급하는 갈등이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라고 하는 확언과 ‘비정상적 상태’라고 하는 확언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에 주목한다. 정상론자들은 “자연적 자료 외에는 의존하지 않으려하며, 모든 현상의 동일한 해석을 기어코 발견하려 하며,” 따라서 모든 초자연적인 기적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비정상론자들은 이에 반대하여 하나님에 의한 창조를 믿으며,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독립적인 종으로 보며,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다. 이렇게 “두 개의 학문적 체계 혹은 학문적 노력”이 각자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카이퍼는 “이 두 학문은 모두 인간 지식의 전체영역을 주장하며 자신의 최고 존재에 관한 제안을 자신의 세계관을 위한 출발점으로 갖는다”고 논평한다. 카이퍼는 자기 당대의 19세기 현대신학도 정상론자의 학문에 속하기를 택했다고 본다. 카이퍼가 판단하기에 양자는 절대적으로 다른 출발점이며, 기원에 공통점이 전혀 없으며,타협의 여지도 없기 때문에, 오로지 양자 중 선택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칼빈주의는 이와 같은 갈등과 투쟁에 대하여 난공불락의 입장을 취한다. “학자는 자신의 의식으로서 이 인간 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한 칼빈주의는 즉시로 ‘인간 의식(menselijke bewustzijn)’으로 되돌아 갔다.” 칼빈주의는 사물의 현재 조건에 관하여 두 종류의 인간 의식, 즉 ‘중생자의 의식’과 ‘비중생자의 의식’을 나눈다. 칼빈주의자의 의식을 구성하는 것은 ‘죄의식’과 ‘신앙의 확실성’과 그리고 ‘성령의 증거’이다. “사람의 의식이 이처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 의식에서 출발하는 학문도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카이퍼는 주장했다. 모든 학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개별 학문 분야에는 “원리의 대립과 다소간 연관되고 따라서 원리의 대립에 틀림없이 개입”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카이퍼가 활동했던 19세기 특히 중엽에 이르러서는 화란 전 대학 전 학부에서 정상론자들이 90%를 차지한다고 말할 정도로 우세하였다.
그와 같은 때에 칼빈주의의 학문 영역에서의 투쟁은 단지 신학교를 세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칼빈주의 원리의 기초에서 모든 학문의 전반적 계발을 도모하는 대학의 설립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소신의 결과 카이퍼는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를 설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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