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측면에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있는 어떤 자격을 보시고 그리스도의 모든 공로와 은혜에 대한 소유권을 그 사람에게 주시는 것과, 그 자격의 가치와 사랑스러움을 보시고 또는 그 자격의 탁월함에 대한 일종의 상급으로서 그리스도의 모든 공로와 은혜에 대한 소유권을 그 사람에게 주시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참된 제자들은 특별한 관계로 맺어져 있으며, 그 관계로 인하여 성경은 그들을 일컬어 어떤 의미에서 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그리스도인 쪽에서 그리스도와 이런 관계나 연합을 맺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행하는 일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쪽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려고 행하는 어떤 행동 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나 관계를 성사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어떤 행동. 저는 믿음이 이런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히 의롭다함을 얻는 믿음을 정의하거나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지를 단정지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정도로만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곧 이전에는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분리되어 있던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연합될 수 있는 것, 또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된 이전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나 관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어서 말하자면,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고 그를 영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전에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즉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마땅히 있어야 하는 그리스도와 관계나 그리스도의 연합과 무관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그리스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친밀함을 형성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소유권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자 하는 영혼의 적극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또는 믿음 자체가 믿는 사람들 쪽에서는 연합의 실제 행동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지적이고 활동적인 두 개의 존재나 인격 사이에 연합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그들이 하나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쌍방이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연합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상호행동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서로 연합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에게 실제로 있고 그들 사이에 실제로 있어야만,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로 여기시는 일이 비로소 적법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믿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주는 성질의 어떤 행위나 자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바로 그것 때문에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로 간주하시고 인정하시는 일이 합법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로 그 행동이나 자격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와 공로를 믿는 사람들의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일 역시, 곧 마치 그리스도의 속죄와 공로가 믿는 사람들 자신의 속죄와 공로인 것처럼 인정해 주시는 일 역시 지대한 타당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말이나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속죄와 모든 공로를 소유하게 하며 그리스도께서 그처럼 값 주고 사신 모든 은혜에 대한 권리를 소유하게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자신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는 사람을 구주와 연합된 사람으로 인정하고, 또한 그 결과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을 합당하다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이유는 바로 도덕적 적합성 때문이 아닌 특성적 적합성(그 사람이 구비하고 있는 자격들이 도덕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이 구비하고 있는 자격들의 특성과 그 지위의 특성이 서로 일치하고 조화되고 동일하다는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결단코 그리스도의 모든 공로를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시지도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일이 없으면 결단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언약에 의해서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방식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지도 않습니다. 행위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행위를 기뻐하시거나 그 사람의 순종에 내재되어 있는 탁월함과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증거로 영원한 생명에 대한 권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구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모든 행동을 그 안에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려는 영혼의 적극적인 모든 행동, 또는 소위 그리스도께로 나아감과 그리스도를 영접함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행동은 성경에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아무리 다른 것들이 믿음만큼 탁월하다 하더라도,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오직 믿음만이 할 수 있습니다.믿음 이외의 다른 그 어떤 은혜나 그 어떤 미덕도 그 일만큼은 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의롭다함을 얻는 믿음(justifying faith)의 구성 요소에 들어가고 그 믿음의 특성에 속하는 것뿐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