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복음적 순종과 칭의의 관계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나 복음적 순종에 속하는 여러 가지 행위들의 경우 선행이라는 자격으로나 그 안에 있는 도덕적 선함 때문으로는 칭의와 그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런 행위들은 율법의 행위라는 자격으로나 도덕적 탁월함이라는 자격으로나 그것의 일부분이라는 자격으로도 칭의와 그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에 속하는 여러 가지 행위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믿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라는 이유와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행위들로 간주될 수 있다는 이유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이유로든 칭의와 관련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 그리스도인다운 순종에 속하는 여러 가지 행위들은 이런 점에서 칭의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습니까?
답변. 이 질문에 대한 확정적인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믿음의 맨 처음 작용한 직후에 나타나는 믿음의 다른 행위들도 우리의 칭의와 관련되어 있는지, 또 믿음 안에서의 견인(堅忍)이나 믿음의 지속적이며 갱신된 행위들도 칭의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칭의는 특별한 방식으로 믿음의 첫 행위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믿음의 행위를 하는 그 즉시 실제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의롭다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은 그 첫 행위에서 견인에 관하여 비록 연약하지만 진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른 여러 가지 혜택들 중에서 견인에 관한 권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칭의 사건에서 믿음의 견인이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견인은 칭의와 확실하게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죄인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근거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앞에서 칭의가 어떤 방식으로 믿음에 의지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는 일의 적합성을 결정하는 자격이기 때문에, 또는 그 안에 적합성을 소유하고 있는 자격이기 때문에, 칭의는 믿음에 의지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견인에 대하여 숙고하는 일은 이와같은 적합성과 별도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견인과 이와같은 적합성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그의 의를 주고 사신 영원한 은혜들을 소유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현재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왜 현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만 이런 일이 적합합니까? 먼저, 영혼은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거나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은혜들을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유하는 것은 그 안에 특성적 적합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적합성은 영혼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되 지속적으로 연합해야 효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이유 때문에 현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혜를 소유하기에 적합한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뿌리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을 계속해서 얻으려면 포도나무에 지속적으로 붙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하시는 은혜와 은총 등 여러 가지 혜택을 계속해서 얻으려면 그리스도 안에 지속적으로 거해야 합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6-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맨 처음에 필요했던 그 이유와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한번이라도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영혼이 지금 현재 의롭다함을 얻은 상태에 있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이전에 한 번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것으로는 안됩니다.
단순히 과거 한 때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구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28에서 사도 요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이 내세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거 한 때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경력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맨 처음 이루어지기 위해서 믿음이 꼭 필요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지속되기 위해서도 그 연합을 가능케 해주는 자격인 믿음이 변치않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죄인은 믿음의 행위를 맨 처음 실행하자마자 실제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의롭다함을 얻지만, 바로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영원한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일의 적합성을 결정하는 한 요소로서 믿음의 견인을 고려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처음 믿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칭의의 행위에서 믿음의 견인을 믿음의 첫 행위에 사실상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고려하십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