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만일 믿음의 첫 행위만 칭의와 관련되어 있고 이후에 있게 되는 믿음의 다른 행위들은 칭의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면, 어떤 문제들이 파생되겠습니까?
당연히 믿음의 첫 행위가 아닌 다른 행위로는 절대 칭의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일 회심 이후에 있게 되는 믿음의 다른 행위들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면, 그런 믿음의 행위들을 통해서 칭의를 추구하는 것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국, 회심한 이후에 사람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거나 죄책으로부터의 구원과 죄 사함을 얻기 위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의무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은 칭의의 일부분인데, 앞에 전제한 것에 의하면 회심이후에 있게 되는 믿음의 다른 행위를 통해서 칭의를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심한 사람들이 죄책으로부터의 구원과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옳지 않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말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어떤 복을 얻고자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 복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책으로부터의 구원과 죄 사함을 얻기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그런 복에 대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인데, 앞에 전제한 것에 의하면 ‘회심한 이후에 사람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거나 죄책으로부터의 구원과 죄 사함을 얻기 위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의무가 될 수 없다’라고 했으므로, 결국 그런 복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기도 제목으로 사용하기에 또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기도 제목으로 사용하기에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런 기도 제목을 가르쳐 주신 그리스도께서 잘못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이미 회심한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도 제목을 사용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 제목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실 때 염두에 두고 계셨던 ‘죄’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죄가 응당 받아야 하는 형벌과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에 지고 있는 일만 달란트 빚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은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형벌로부터 우리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면케 해주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에 지고 있는 빚을 모두 탕감해 주는 것은 칭의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전제한 것에 의하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심한 이후에 사람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거나 죄책으로부터의 구원과 죄사함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의무가 될 수 없다’고 전제했기 때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