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믿음의 행위라 할지라도 매우 연약한 믿음의 행위들이 있습니다. 또 회심 이후의 믿음의 행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믿음의 첫 행위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첫 행위는 자궁 안에 있는 태아의 최초 태동처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첫 행위는 굉장히 연약한 행위일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그것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아무리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행한 믿음의 첫 행위가 참으로 믿음의 행위였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확정짓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과 많은 경험을 통해서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행한 믿음의 첫 행위가 정말로 참된 믿음의 행위였는지를 확정짓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상당한 정도로 만족했던 사람들까지도 크게 퇴보하고 타락할 경우 쉽게 영원한 형벌에 대한 큰 두려움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합당한 방법은 회개를 통하여 죄를 버리고 죄로 인하여 응당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지금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는 것이 이런 방법으로 얻어질 수 없다면, 그 방법은 구원받을 수 있는 합당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회심이후에 있게 되는 믿음의 행위도 우리의 칭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차원에서 입증하려고 했습니다. 곧 회심 이후에 있게 되는 믿음의 다른 행위들은 하나님과의 화평과 죄 사함을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경우, 어떤 문제들이 생기는 지를 말씀드림으로써 그것을 입증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훨씬 더 분명하고 직접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그 증거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위대한 약속과 관련하여 아브라함이 행사했던 믿음의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이 보인 믿음의 행위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3장 6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 행사한 이 믿음의 행위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4장 전체와 갈라디아서 3장 전체에서 이신칭의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을 확증하면서 정말 매우 강력하게 역설하는 중요한 실례요 증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게 된 이 믿음의 행위가 아브라함이 행사한 믿음의 첫 행위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이 행위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본토와 친척을 떠난 지 오래 후에 행해진 것이었고(히 11:8),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탁월한 친구로 인정을 받은 지 오랜 후에 행해진 것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