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신비
박영선 목사
서론
일반적으로 인재와 비교해서 뛰어난 자를 천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 안에서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바로 천재입니다. 즉 하늘의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서 천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심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우리 모
두에게 혜택을 고르게 하기 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에서 은사를 받은 우리는 천재라고 일컬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성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거룩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으로 일상의 삶에서 신앙으로 승리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이 평생의 고민거리입니다. 여기에서 “왜 승리하지 못하는가? 왜 승리에 대한 응답이 없는가? 뭐가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거룩한 삶 추구가 신앙의 고민거리
이와 관련해 로마서 6장 1절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이 질문은 구원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했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질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지도, 기대하지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구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 질문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없다면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원인이 있다면, 즉 나는 믿었다, 회개했다, 결단했다 등등, 이 질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구원을 경험했다면 이 질문, “그럼 난 뭐란 말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가져가거나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구원의 선물을 주시니 그저 받기만 하라고 하는데 사실은 받을 능력조차도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럼 이게 뭐냐?” 하는 이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구원조차 분별할 능력 없어
그래서 2절 이하에서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2-4). 이 말씀의 요지는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 가운데 살
게 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을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1절의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규명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십자가로 대변되는 구원에 대하여 구원을 칭의로만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 질문의 핵심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구원이란 칭의만으로 끝나지 않고 “새 사람은 새 생명을 가지고 커가기 위함이다”라고 말하는 이것이 바로 구원이란 것입니다.
3. 구원은 새 생명을 발현하는 것
1절은 칭의로 구원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고, 2절 이하는 새 생명을 가진 성도가 되었으니 새 삶을 살아야 하겠구나 하는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은 구원받은 감격과 더불어 그에 따른 책임이 함께 동반되는 신앙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후반부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를 가리켜 “네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라”(롬 6:13)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동시에 구원받은 성도는 십자가를 근거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에서는 십자가를 근거하여 사는 삶을 가리켜 구원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3, 4장에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라고 말씀하고 이어 정리하기를 5장 1절에 와서 구원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2절 이하에서는 바라고 즐거워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와 영화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