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칭의,그 이후에 남아 있는 ‘성화’
이와 관련해 9, 10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주신 메시아 사역이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구원 사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셔야 할 메시아 사역이 있다는데 이것도 구원 사역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과 그리고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신다고 합니다. 즉 십자가로 우리와 연합하여 ‘죄에서 건져낸 구원’이 있으며 동시에 부활로 우리와 연합하여 ‘살게 하시는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내가 이제부터 은혜를 갚으며 살리라!”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낳으실 뿐 아니라 기르신다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지나가야 합니다. 만일 어떤 부모가 자식을 향해 “내가 너를 낳았으니 나가서 돈 벌어 오거라”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오해의 소지가 많아집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라나는 일에 대해서는 아주 소극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5. 하나님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에베소서 1장 17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앞에서 구원의 천상 사역을 설명하고, 축하하고, 감사하고, 찬양한 후 즉 “구원을 전제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와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알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구원의 목표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을 전자의 것으로만 알고 익숙해 있습니다. 이 부분만 강조하다 보면 그 이후의 영광을 놓치게 됩니다. 바로 그 내용이 18절입니다.너희가 받은 그 구원이 가져다 주는 영광이 어디까지 가기를 원하는지를 알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면 그것은 구원과 그 영광을 얻기 원하신 것이며, 그 영광이 어떤 과정을 거쳐 되는가에 대해선 19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십자가를 지신 동일한 능력과 그 사랑으로 영광도 얻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해를 하게 되면 교회를 선교를 위한 캠프로 여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가정과 같지 않고 군대와 같게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생명이 커 가는 곳입니다. 태어나고 자라가고 용서하고 이해 받고, 잔소리가 있는 그런 곳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6. 교회가 군대같이 획일화 되어선 안돼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바울 사도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사신다’는 말의 시제는 미완료형으로 계속 살고 계신다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죽으셨고(완료형)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사신다(미완료형), 계속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신앙 생활의 근거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을 실천하면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미완료형)는 것은 계속 살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의 완성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묶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왜 안 되는가? 왜 우리의 기대만큼 승리를 이루지 못하는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철야 기도하고 금식을 하지만 그래도 안 된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하신 이 말씀은 성화의 최고 근거인데, 그렇게 믿고 기도하는 데도 안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