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리의 실패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아는 것이 성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전부입니다”라고 말하는 이것이 믿음의 전부입니다. 이 근거 없이 내 자랑이 믿음이라고 하면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최고 경지는 겸손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저 자신이 쓰임 받는 존재가 됨이 영광인줄 아는 것입니다.
참다운 신앙을 확인하는 길은 마태복음 5장의 산상보훈입니다. 그 첫 가르침에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함이 조건이 되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함이라고 하는 바로 그 상태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복의 증세가 심령의 가난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게는 힘이 없으니 하나님이여 채워주소서”라고 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나에게 채우면 얼마나 채우겠습니까? 나에게는 힘이 없으니 오로지 하나님만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겸손한 체하여 하나님이 힘주시
면 능력을 얻어 자기 자랑하는 식이 아닙니다. 내가 충만하여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바울 사도도 쓰시려고 한다면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 최고의 재목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스데반을 쳐죽이고서야 등장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바울이 평생 죄인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온갖 고난 배고픔, 갇힘, 매맞음 등등.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도 있었습니다(고후 12:1 이하).
12. 하나님만 믿는 것이 바로 믿음
최고로 쓰임받을 때조차도 우리는 그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장 큰 은혜를 주셨을 때, 가장 큰 능력을 행할 때에도 나는 여전히 막대기 같은 허접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를 붙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를 붙잡아 힘이, 능력이 있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같이 내 안에는 재고가 없습니다. 후- 하고 불면 다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우리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라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자기 의(義)를 철저하게 제거시켜 나가는 것이 곧 신앙의 성숙이며 이것이 성화의 길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언제나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