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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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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13 20:16
왜 칼빈의 영성은 리바이벌 되지 않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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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362  

3. 경배로서의 신학함

우리는 이러한 원인을 그의 신학함에서 발견한다.칼빈에게 있어서‘경건’은 그의 신학함의 구심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였으며, 교리를 세울때나 성경을 해석할때 언제나 적용되는 원리였다. 따라서 그의 학문적인 탐구들은 늘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관심사와 동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신학에 있어서 이와 같은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은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오늘날의 신학함의 문제는 너무 사변적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신학의 동기가 지나치게 순수(?) 학문적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이런 방식의 신학함은 종교개혁자들이나 청도교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경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규명하기 위하여 신앙의 원칙들을 발견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의 교리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실천적인 삶 속에서 진실임을 입증받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삼가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학문이 아니라 신앙이었으며, 현학이 아니라 거룩한 삶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단지 우리의 이론과 지식의 자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따라 사는 거룩하고 투쟁적인 삶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신학’(神學)이라고 할 때 ‘신’(神, ‘하나님’)과 ‘학’(學, ‘탐구’)의 관계는 속격(genetive)이기도 하고 대격(accusative)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신학에 있어서는 모든 학문적인 탐구 활동이 신학의 성취가 하나님이 자신을 먼저 알려주시는 계시라고 하는 선행된 신학(antecedent theology)에 전적으로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하나님의 신학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학은 하나님을 탐구하고 배우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논의 위에 있어야 할 전제는 하나님은 우리의 연구의 대상이기 이전에 경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신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그의 신학함은 ‘경배 의 과정’이 되어야 하고, 경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하며, 신학적인 결론은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신학의 시작점은 진리인 성경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영적인 체험이 신학을 공부하는 이의 성경 이해에 영향을 미친다.

 


4. 칼빈의 회심 

따라서 신학자 칼빈을 규명함에 있어서는 먼저 신앙인으로서의 칼빈을 고려해야하고, 신학의 결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의 신학함이 어떠하였는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이나 마틴 루터(M. Luther)가 그러했듯이, 칼빈에게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한 신앙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는 시편 주석 서문에서 자기의 회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둡고 비참한 상태로부터 끌어올리셨으며, 나에게 가장 명예로운 하나님의 사자(使者)와 복음 사역자의 직무를 부여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신학을 공부시킬 의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이 보다 많은 부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공교롭게도 나는 철학을 공부하다가 법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역시 아버지의 소원에 부응하려는 순종심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으나, 나는 열심히 공부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비밀스러운 섭리의 고삐(ferno)로 나의 진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셨습니다.

제일 처음 일어난 일은 예기치 못한 회심으로 다년간 완악해진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온순하게 길들이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교황제의 미신에 너무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보다 못한 그 무엇으로는 나를 그깊은 수렁에서 끌어내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참 경건의 맛을 본것이 그안에서 진보하려는 나의 갈망에 불을 불이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록 전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남은 기간의 공부는 열심을 잃은 채 냉랭하게 해야 했습니다. 회심한지 일 년도 채 못된 초보자요 신출내기인 나에게 사람들은 교리를 배우기롤 갈망하며 몰려왔습니다”

 

그는 회심을 통하여 경건의 깊은 맛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경건의 맛을아는 신앙은 그로 하여금 회심한 지 일 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참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갖게 만들었다. 결국 그의 이러한 탐구는 개인의 신앙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회심을 통하여 깊은 경건을 맛본 영적인 체험이 신학함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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