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붙 붙은 신학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은 불 붙을 때 비로소 신학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불 붙은 신학을 칼빈에게서 본다. 베자(Beza)는 칼빈의 말씀 사역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였다.
“그의 설교에는 동정이나 매력이 부족하고 상상력의 결핍도 나타났으며,예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어떠한 시적인 전환이나 감동적인 호소나 솟구쳐 오르는 웅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장점은 놀라운 것이 었습니다. 용기, 정직함 진리에 대한 불같은 사랑, 맡은바 직무에 대한 헌신, 신앙적인 원칙에 충실한 삶과 섬김, 동료들에게 보여준 신실함, 거룩한 목표에 대한 열심,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순결과 사역에 몸과 마음을 바친 것 등 여러 가지 뛰어난 특성들을 주목할 때 앞서 언급한 결점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의 설교사역에 대한 또 다른 평가는 에드윈 다아간(Edwin C.Dargan)에게서 본다.
“그의 설교에는 설교자의 기교를 더함이 없이, 성경의 표현으로 성경의 사상을 드러내는데, 날카로운 자각과 명확한 이해, 표현력이 총동원되어 있다. 설교 양식은 명쾌하고 박력 있고 예리하며, 꾸밈이 없으면서도 순결하고 엄격한 우아함이 있고, 인간적인 따스함은 없지만 거룩한 열정과 힘에 불 붙은 설교였다.”
그런 점에서 볼때, 하나님을 말씀으로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지적인 준비와 함께 영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거룩한 정서가 깃든 경건을 소유하는 것이 성경에 관한지식을 삶으로 연결시켜 주는 다리가 됨을 잊지 말아야한다. 신학적인 지식이 어떻게 신앙과 조화되고, 선학을 통해 알게 된 성경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사람들의 인격속에서 불 붙여져서 구체적인 섬김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지에 대한 신앙체험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해하는 성경에 대한 지식은 언제나 깊은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신앙의 체험을 통한 사랑과 헌신의 경건을 유지하지 못한 채 계속되는 신학 연구는 단지 그로 하여금 현학과 인간적인 자랑을 위하여 헌신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18세기 미국교회들의 영적인 각성과 부흥의 역사를 주의깊게 살펴 본다면, 오늘날 볼 수 없는 희귀한 현상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 시대의 신학교 학장들의 목록은 곧 당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능력있는 경건한 설교자의 목록과 거의 일치한다. 그들은 뛰어난 학자들이었고, 동시에 뛰어난 설교자들이었다. 그들은 목회할 수 없는 신학자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모든 교회의 설교단이 그토록 목말라하는 영적인 설교자였으며 목회자들이었다. 1790년대 미국 버지니아의 부흥과 대각성의 역사를 개관한 후 던져진 이얀 머레이(Iain Murray)외 다음과 같은 지적은 우리에게 두고두고 교훈이 된다.
“위대한 부흥은 장로교회들에게 정통적으로성경적으로 올바른 설교-물론 그것이 교회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는 하지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권위, 부드러움, 열정, 긍훌-이러한 것들이 하늘로 부터 쏟아부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사역 속에 이같은 것들이 깃들 때, 비로소 진정으로 신학이 불붙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