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영력 있는 지성인가
종교개혁사에 나오는 다음의 일화는 칼빈의 독특한 신학함이 그의 신학의 결론에 무엇을 더하여 주었는지를 엿보게 한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위해 섬겼던 순수한 말씀의 증언자들 가운데는 프로망(Froment), 비레(Viret), 파렐(Farel) 이 세 사람이 출중하였다. 1536년 어느날 로잔느 (Lausanne)에서는 종교 회담이 개최되었는데, 개혁자들과 가톨릭 신학자들 간의 이와 같은 회담은 토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결과에 따라서는 한 도시가 개혁파 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고, 한 도시의 개혁 세력이 매장될 수도 있는 그러한 것이었다.
양측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 존 칼빈(J. Calvin)은 처음 사흘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렐과 비레가 그들을 상대로 토론하도록 물러나 있었다. 나흘째 되던 날은 토론의 주제가 성만찬이었다. 가톨릭 측의 유능한 변론자인 미마르(Mimard)가 등단하여 자신이 준비한 연설문을 주의깊게 읽어 나갔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어거스틴과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교부들의 교훈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바로 그때, 마른 체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젊은이 한 사람이 일어서서, 비웃음을 머금은 채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그 유능한 카톨릭의 변론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칼빈이었다. 뜻밖의 인물의 출현에 의아해하는모든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거룩한 교부들에게 영예를 돌립니다. 우리들 중에 당신보다 교부를 더 잘 알지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부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교부들의 저작들을 좀더 철저하게 읽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당신이 교부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였더라면, 그들의 저작 중에 몇몇 구절들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준비된 원고가 없는 상태에서 칼빈은 즉석에서 가톨릭측에의하여 제시된 여러가지 의견들을 조목조목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인채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의 모든 논거들은 철저히 교부들로 부터만 이끌어져 오고 있었다. 그들은 개혁파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비난하던 교부들의 글을 통해서 자신들이 이토록 궁지에 몰리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칼빈은 먼저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의 견해를 인용한 후 주석하기 시작하였으며, 교부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의 것이라고 밝혀진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출처를 밝혔다. “제11장 중간 부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는 어거스틴의 저작을 인용하였다. “제23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고는 마니교도인 아만투스(Amantus)를 반박한 어거스틴의 책에서 또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상은 그의 글 중간 부분에 있는 내용입니다.” 교부 어거스틴(A. Augustine)의 시편 98편에 대한 주석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전부 어거스틴의 저작으로 부터 인용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교부 어거스틴의 요한복음 설교의 시작 부분인데, 아마 여덟 번째 아니면 아홉 번째 설교일 것입니다….”
이미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으나 이 젊은 칼빈은 고대 교부들의 저작들로 부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나가기 위해 증빙자료로 그것들을 인용하고 주석하는 일을 끝내지 않았다. 그가 능숙하게 인용하고 주석해 나가는 자료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거기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 즉 교부의 저작들을 스스로 신성시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낯선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토론되고 있는 문제에 관한 복음주의적인 해석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들 사이에서도 아직 충분히 언급되지 않은 많은 자료들을 엄청나게 쏟아 놓기 시작 하였다. “[집사베드로를위한신앙론](De Fide ad Petrum Diaconum)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고, [다르다누스에게](ad Dardαnus)라고 제목 붙여진 서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데---.”
칼빈은 이 모든 것을 암기하여 대답하였다. 원고도 없이 책도 없이 그는 자신의 정리된 기억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학문적 천재성이 드러나는 순간만은 아니었다. 발표하는 자신의 신앙에 의하여 확신되어지고, 칼빈 자신이 성령에 의하여 감동되고 있는 거룩한 성경 진리였다.
천부적인 기억력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는 이 참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학문적인 중언들을 들으면서 양측 모두는 숨을 죽였다. 자신의 고발과 비난을 확신있는 목소리로 선포하였던 가톨릭의 연사는, 작은 체구에 창백한 젊은이 칼빈이 그의 두 눈을 자기에게 고정시킨채 다음과 같이 승리에 넘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을 때, 완전히 오그라들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교부들에 대하여 적대적이라고 하는 당신의 주장이 무례하고 뻔뻔스러운 주장이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교부들이 쓴 저작의 껍데기도 못 읽어 본 사람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만일 당신과 당신보다 앞서서 연설했던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교부들의 저작을 통독하였더라면 아마도 현명하게 침묵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