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언약 사상 이해
피터 릴백(웨스터민스터신학교)
요한 칼빈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며 우리는 개신교 종교개혁과 개혁 신학에 영속적인 영향을 미친 제네바 개혁자의 업적을 되새긴다. 이것은 특히 언약에 관한 그의 가르침에서 발견된다. 언약에 관한 칼빈의 독특한 접근방법은, 그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안에서 성경의 기록들을 해석하고 그들의 조화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칼빈의 언약에 관한 견해 안에서, 크리스천의 생활과 성례전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전개하는 한 체계를 발견한다. 우리는 칼빈의 언약신학과 언약적 성경해석에 관한 연구를 할 것 이다.
우리 시대의 중요한 복음적 신학중 하나인 세대주의를 구체적인 배경으로 하여 칼빈과 언약을 숙고해보자. 비록 그의 시대에는 세대주의가 아직 공식화 되지 않았기에 그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학체계였지만, 칼빈의 언약적 사상 은 세대주의와 대조되는 입장이며 더욱이 그것의 주된 견해에 대한 적절한 비평을 시사한다.
칼빈의 언약적 성경해석과 언약신학으로부터 추론된 세대주의 비평
첫 강의에서는, 다음의 여덟 가지의 요점을 고찰할 것이다:
1.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의 차이점들
2.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의 대조되는 역사적 근원
3. 언약의 공식에서 발견되는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칼빈의 강조점
4. 성경 해석을 위한 칼빈의 언약적 경구: 언약은 본질에서 언제나 동일하지만, 경륜에서는 그것이 구별된다.
5. 그리스도가 성경의 핵심이신 한편, 언약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다.
6.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구약에도 유기적으로 존재함: 언약은 구원 역사의 DNA이다.
7. 경계에 관한 논쟁: 구약의 땅에 대한 약속에 관한 언약적 해석과 세대주의적 해석
8. 언약신학은 하나님의 나라를 오로지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임했으나 앞으로 올 것으로 가르친다.
그러면 위에 열거된 여덟 개의 요점 가운데 가장 처음 것을 언급하며 시작하자.
1.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의 차이점들
무엇이 세대주의를 세대주의로 만들고 또한 무엇이 언약신학을 언약신학으로 만드는가?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성경 해석에 관한 두 가지 접근 방법의 차이점이 그리 중요한가? 여하간 세대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도 예수를 믿는다. 그리고 언약신학적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것은 누가 크리스천이며 아닌지에 관한 논쟁이 아니다. 이 논쟁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세대주의를 세대주의로 만드는가? 찰스 라이리박사(Dr. Charles Ryrie)가 "오늘날의 세대주의 (Dispensationalism Today)"라는 책에서 세대주의의 필수요건(sin qua non)은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이라고 언급 하였
그런 까닭에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이 없이는 세대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둘이라는 것이 세대주의의 중추적 사상이다.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교회라고 불리는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백성은 전적으로 다르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구약 백성에게 주려고 가져왔으나 그들이 그를 거부하였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한쪽에 제쳐 놓임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대, 즉 교회 시대를 개시하셨다. 이 시대는 일종의 '중대한 삽입'(greatparenthesis)이다. 교회의 세대는 이스라엘과 율법의 구약 세대 후에 나타난 은혜의 시대이다.
그러면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점에서 교회는 7년 환란 전에 이 세상 밖으로 휴거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한 구약의 계획으로 되돌아가신다. 그 계획은 타락한 왕국을 회복된 이스라엘로 이끌어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위치는 구약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과 교회의 휴거 후 회복된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사역 사이에 놓여져 있다. 그 결과 세대주의의 왕국은 미래적, 즉 전천년왕국(the premillennial kingdom)이다.
세대주의적 신학은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것이 이스라엘에 의하여 거부당했기 때문에, 그 대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가 들림을 받은 후에야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이 임할 것이다. 따라서 세대주의의 입장에는 미래에 성취될 이 왕국은 요한계시록 20장에 언급 된 것과 같은 문자적 천년왕국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세대주의의 근본 개념은 세 가지이다:
(1) 하나님의 백성은 둘이다.
(2) 교회와 이스라엘은 구분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의 왕국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며 본질적으로 미래적이다.
언약신학은 이 세 가지 논점에 대하여 전혀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언약신학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우선 첫째로, 언약신학은 하나님의 백성은 오로지 하나뿐이라고 가르친다.
이 하나의 백성은 내적으로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던 백성과 그가 이미 오셨으며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뒤돌아보는 백성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는 유일하고 동일한 메시아의 백성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이다. 이와 같이 교회나 구약 성도에 관해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단일 백성의 부분이다. 이런 까닭에 언약신학에서 그 왕국은 전적으로 미래적이지 않다. 그 왕국은 이미 이곳에 도래하였으나 앞으로 더 훌륭한 것이 도래할 것이다. 그것 은 '이미 그리고 아직 아니'(already and not yet)이다. 언약신학은 이미 활동하고 있는 한 왕국이 있으며, 또한 한 왕국은 보다 큰 영광 가운데 도래 할 것이다. 이 현재와 미래의 왕국이 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졌는데 그들은 메시아의 초림을 고대하던 자들과 또한 이미 오신 그가 이미 오신 것과 재림하실 것을 기대하며 되돌아보는 자들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은 두개의 다른 체계이면서 성경을 읽는 두개의 다른 방식이다.
2.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의 대조되는 역사적 근원
다음으로 제 각기의 역사를 정리해 보도록 하자. 세대주의는 교회 역사에서 근래에 전개된 일이다. 그것은 19세기 말 영국의 플리머스에서 세대주의적 체계의 주된 개념을 발전시킨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의 가르침을 받아 시작되었다. 세대주의는 성서대학과 성경 출판을 통하여 보급되었다. 현재 이 신학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언약신학 개념은 초대 교회까지 소급된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설명했다, "구약은 숨겨진 신약이다. 신약은 드러난 구약이다." 이 간단한 신학적 경구가 언약신학의 핵심을 잘 요약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성경 전체가 예수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요지는 구약이나 신약 어느 곳을 읽어도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 에 대한 것이다. 신구약은 그리스도의 도래를 중심하여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어거스틴과 다른 초기 기독교 성경학자들에 의해 인식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경의 통일성은 종교개혁에 와서야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루터가 5개 조항을 발표한지 오직 17년이 지난 1534년에, 헨리 불링거(Henry Bullinger)가 언약에 관한 첫 번째 논문인 '유일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 또는 언약에 관하여'(Of the One and Eternal Testament or Covenant of God)을 저술하였다. 불링거는 종교개혁의 초기에 활동했던 스위스 개혁자였다. 개혁파 신학자들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에 근거하여 성경을 직접 주해하는 연구방법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성경 이해에서 언약이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을 재발견 하였다.
불링거와 그의 앞서 활동했던 쯔빙글리(Zwingli)는 성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사상은 언약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언약신학은 초대 교회의 어거스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상일 뿐 아니라, 개혁파 전통이 지닌 신학의 중요한 통찰중 하나이다. 개혁파 전통의 다른 표현인 장로교 전통과 사상을 같이 하는 자들은 언약적 가르침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즉각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쯔빙글리와 불링거를 따라 언약신학을 강조하였으며, 그들과 같이 성경의 신학 이해와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의 중대한 통일성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사상임을 수용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