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언약의 공식에서 발견되는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칼빈의 강조점
언약신학은 어떤 독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첫째로, 언약의 공식에 대해서 언급해 보자.
빵을 굽는 사람이나 요리사는 조리법 또는 공식 중에 무언가를 빠뜨리면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베이킹파우더를 빠뜨리게 되면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수 없다. 화학자는 특정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공식을 알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언약을 설명하는 어떤 공식이 있다. 칼빈에 의하면 그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이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만날 수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창세기 17장, 레위기 26장, 예레미야 32장, 에스겔 36장, 고린도후서 6장, 히브리서 8장, 그리고 계시록 21장이다.
이 언약의 공식은 구약에서 시작되어 신약으로 진행된 후에 성경적 계시 안에서 천국으로 진척된다. 언약의 공식이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들이 되리라" 가 아닌 점에 유의하라. 그것은 단수로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이다. 그것은 구약으로부터 신약과 천국까지 진행되면서 하나님과 관계한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을 잘 드러낸다.
또한 그것은 언약은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시어 인간과 맺은 관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나"란 단어에서 발견된다. 언약의 공식은 "우리 협상을 해보자" 내지는 "우리 흥정을 해보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행사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단독사역론, 일방적 구원주권적 은혜, 또는 칼빈주의라고 부르는데 하나님께서 첫 걸음을 행하기는 특징이 있다. 그가 열심을 다해 우리를 찾으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을 주시려 이 땅에 오셨다(눅 17;10). 언약 안에서, 하나님께서 먼저 행동하시며 그의 주도권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된다.
다음의 세 본문 예레미야 31;31, 창세기 15장과 17장을 숙고해보라. 베들레헴의 제롬은 히브리서와 헬라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불가타'라고 불리는 번역본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 번역본이다. 제롬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의 이스라엘에 관한 책들(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과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의 책들(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이 각 각 구분되기를 원했다. 그는 첫 부분을 구약, 둘째 부분을 신약이라고 불렀 다. 이를 위하여 그는 예레미야 31장을 활용하였는데 그곳에 "나는 이스라엘 집과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다"라고 기록이 있다.
제롬은 '베리트'라는 히브리 단어를 라틴어로 '테스터멘툼'으로 번역하였다. 이 단어는 언약 또는 계약을 의미하는데 유언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베리트'란 무엇을 "자른다"는 뜻이며, 이로써 언약은 희생을 통해 제정되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또한 제롬 후에도 우리는 줄곧 구약과 신약을 두고 성경의 정경을 크게 둘로 나누는 것으로 언급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 31장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우리에게 '구약과 신약' 대신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고 불러야 할 것을 시사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언약 사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기서의 중요한 요점은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언약이므로 언약 사상은 성경 전체의 체계화를 거들어 준다는 것이다.
4. 성경 해석을 위한 칼빈의 언약적 경구: 언약은 언제나 본질에서 동일하지만, 경륜에서는 그것이 구별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보도록 하자. 성경의 구약과 신약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여기에 담겨져 있는 모든 내용이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으로 깨달으며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찰해 보도록 하자. 그러면 어떻게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이뤄지게 할 수 있을까?
칼빈이 언약의 공식을 강조하는 것과 아울러 그가 성경의 구원역사 이해를 위하여 그가 제시하는 하나의 기본적인 해석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언약은 언제나 본질에서 동일하지만, 경륜에서는 그것이 구별 된다"이다.
본질이란 무언가가 실제로 어떤 것인가를 의미한다. 경륜이란 어떻게 특정인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통치하는 가에 대한 이해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한 대통령의 경륜이 있지만, 그의 뒤를 이어 선출된 대통령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통치하거나 관리하게 된다. 이것은 한 가족의 경륜에서도 유지된다.
예를 들어, 나에겐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가 계시다. 내가 약 2세나 3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길을 건너는 것을 배울 때, 나의 모친은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 하시곤 했다. "피터야, 지금은 길 건너로 뛸 수 없다. 내가 내 손을 놓을 때에야 넌 걸을 수 있으니, 내 손을 꼭 잡아라. 나는 네가 차가 왕래하는 곳에서 다치길 원치 않아." 오늘 내가 귀가하여 나의 모친을 뵙고 길을 건너게 될 때, 나는 모친의 팔을 부축하고 "어머니, 나에게 기대세요. 나는 우리가 길을 건널 때 어머니께서 차가 왕래하는 이곳에서 넘어지시길 원치 않아요"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와는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현재 서로를 위한 사랑과 안전에 관한 관심사를 나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의 사랑은 변함없다. 가족 사랑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가정 안전에 대한 경륜은 사뭇 다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약은 언제나 본질적으로 동일한데 그것은 자기 백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이다. 그러나 언약은 다르게 실행되어지는데 구약에서는 제사에 의하였듯이 신약에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예배를 통해 실천된다.
언약의 연속성에 대한 칼빈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소개될 수 있다: 구 언약과 새 언약의 영적 영속성에 관한 칼빈의 논의에 대한 요약 그들의 본질은 동일하다.
1. 세상의 시작부터 같은 율법과 같은 교리
2. 그리스도는 언약들의 중재자이시다.
3. 둘 다 칭의의 은혜를 말한다.
4. 성례전은 양쪽에서 동일하게 중요하다.
5. 양쪽 모두 영생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6. 양쪽에 적용되는 일반적 언약의 공식은 영생을 포함한다.
우리가 칼빈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성경의 본질은 언제나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역이다. 그러나 메시야께서 무엇을 하셔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 방식은 구약으로부터 신약으로 가면서 바뀐다. 구약에는 피의 제사가 있었으며, 또한 대제사장과 성막 또는 성전이 있었다. 신약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없다. 이런 것들이 현재는 다르게 실행되어진다. 비계가 있는 건물이 다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건물이 건축될 때에 그 주위에 비계가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건물이 완성되면 비계는 해체되고 제거되는데 더 이상 그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구약 시대에는 은혜의 언약이 동물 제사, 관례들과, 음식에 관한 법, 그리고 대제사장 등으로 실행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메시야를 세상에 오도록 하는데 사용된 비계 와도 같다. 현재는 그가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구원 사역을 다르게 실행하시는데 더구나 구약의 언약에 대한 경륜은 끝났다. 그러므로 그것의 가시적 기호와 습관, 즉 비계가 제거되었다.
5. 그리스도가 성경의 핵심이신 한편, 언약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다
언약의 실체에 대하여 언급하는 다른 방법은 언약의 공식으로 요약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경륜이 시간이 흘러 변화가 되어도 항상 성령의 핵심으로 남아 있었다. 다른 경륜 가운데서도 변화되지 않는 실체의 이중 강조를 설명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교 교인의 관점에서 신약 시대에 우리는 믿는 자의 자녀에게 세례를 베푼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의 믿는 자의 자녀들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할례와 세례는 아주 다른 경륜이지만 그 실체는 매우 동일하다. 둘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사실을 밝힌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성례전은 그가 오신 후에 비해서 다르게 시행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이나 동물의 피를 흘리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구속적 희생을 가리켰는데, 이런 방법으로만 이 세상의 죄를 진정으로 없애실 수 있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고 그의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제사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
마찬가지로 유월절은 주의 만찬이 되었다. 이 변화는 필요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더 이상 피 흘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유월절 양을 잡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모두 이루셨다. 유월절은 언제나 언약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켜왔다.
언약의 차이점은 그것의 형태에 있다. 언약의 연속성은 유월절 양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로 인하여 자기 백성을 향한 진노를 거두셨으며 또한 우리가 구원을 얻도록 그 피를 우리 마음의 중심에 놓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계속하여 유월절의 빵과 잔을 기념한다.
칼빈은 두 언약간의 차이점 다섯 가지를 열거한다. 이 차이점은 언약의 실체가 아닌 외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
*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경륜에 대한 차이에 대한 칼빈의 관점
A. 구 언약 - 그리스도 전
1. 물질적이며 일시적 복은 영적 복을 나타낸다.
2. 형상과 의식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3. 구약의 율법은 죽이는 문자이다.
a. 구약 율법은 엄밀한 의미에서 저주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 율법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b. 구약 율법은 넓은 의미에서 복음을 포함시키는데, 그리스도의 약속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4. 구 언약은 속박과 두려움으로 특정지어진다.
5. 구 언약은 이스라엘에 한정된다.
B. 새 언약 - 그리스도 후
1. 영적 복에 대한 직접적 묵상
2. 그의 성육신으로 온전히 계시되신 그리스도
3. 신약 복음은 살리는 영이다.
a. 새 언약에서 율법은 복음에 속한 성령에 의하여 마음에 새겨졌으며, 죄의 용서를 수반하여 일어난다.
b. 새 언약의 복음은 세상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험한 것이다.
4. 새 언약은 자유와 신뢰로 특정지어진다.
5. 새 언약은 모든 백성에게 확장되어진다.
우리가 언약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우리는 언약의 공식의 상관성, 언약의 실체와 경륜, 그리고 언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언약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역사에 따라 언약의 경륜이 다르지만 언약의 실체는 성경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 연속성을 강조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