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절대적 필요성(The Necessity)
예수님은 중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Verily, verily, I say unto thee)라고 반복하였다(요 3:3, 5). 헬라어 원문에는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이 “아멘 아멘”(amen amen; amen amen)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참 의미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참으로 진리요, 참으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명예와 권세, 부귀와 영화를 다 가졌을지라도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토록 중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하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 대륙으로 건너간 초기 청교도들은 중생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미국에서는 시민전쟁(1861-1865년) 이후로 중생과 회심은 부흥 설교의 중심 메시지가 되었다. 무디(D. L. Moody, 1837-1879)와 토레이(R. A. Torrey, 1856-1928) 같은 부흥사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중생”(regeneration by the Holy Spirit)을 회개와 성화와 더불어 강조하였다.
1. 죽은 영이 다시 살리심을 받기 위하여 (in order to be born again)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이 범죄하지 않았을 경우 영생(eternal life)할 수 있도록 창조하였었다(창 2:7; 엡 4:24; 골 3:9, 10).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아담의 후손들도 죄의 성질을 이어받아 또한 범죄하므로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게 되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롬 6:23).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8,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말씀의 근본적 의미는 사람의 영이 죽었다는 말이다. 즉 사람의 영적 죽음을 가리킨다. 영적 죽음이란 사람이 죽어서 부동체 무의식 상태가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영이 본래 창조된 대로의 원시 상태에서 타락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하고 악한 일을 자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중생함을 받기 전 영은 죽은 상태(dead state)이다. 따라서 죽은 영이 다시 살기 위해서는 중생이 절대 필요하다.
2.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in order to enter the kingdom of God)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은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 15:50). 혈과 육(blood and flesh)은 죄성과 연약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의한 초자연적 출생(supernatural birth)이 절대 필요하다. 중생은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이다. 사람의 죽은 영은 신령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heaven)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생이 절대 필요하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이냐, 아니면 지옥으로 들어가 영원 형벌을 받을 것이냐의 문제는 사람의 중생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중생은 그토록 중요하다.
3.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for the restoration of fellowship with God)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을 따라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겸한 인격적 존재(personal being)로 창조하시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과 그들(아담과 하와)과의 사이에는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므로 그 영이 죽었으며 하나님과의 교제도 단절되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중생이 절대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영적 교제, 신령한 교제, 인격적 교제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영이시요, 신령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그 영이 살아나야한다. 죽은 영은 살아계시고 영존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불가능하다. 중생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작이다. 뿐만 아니라 중생함을 받은 믿음의 형제자매들과의 영적 교제가 시작된다.
죄인들에게 있어서는 중생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케 한다. 사도 바울은 중생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진술하기를 사람이 할례를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다만 새로 지음을 받았는지 받지 못하였는지(갈 6:15)가 중요한 문제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할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 지음을 받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중생이다.
에베소서 2:14-15,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