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중생의 특성들(The Characteristics of Regeneration)>
1. 중생은 성령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다 (Regeneration is a creative work of God) – 하나님 편에서
중생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다. 소명·기본적 신앙·칭의·양자·영 화에서와 같이 죽은 영을 다시 살리시는 중생의 역사도 오로지 성령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다. 중생은 외부의 간섭이나 협조 없이 되는 하나님의 직접 사역이다. 따라서 중생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이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래 아담의 모든 후손은
①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
② 허물과 죄로 영혼이 죽은 자들은 죽은 자 자신의 노력으로는 다시 살아 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
③ 성령 하나님만이 살리신다는 진리를 가르친다. 죽은 영을 다시 살리시는 이는 성령(푸뉴마, pneuma; Spirit)이시다(롬 8:9, 11; 고전 6:11).
에베소서 2:1,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 큰 변화(this great change), 이 엄청난 변화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 하다.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죽은 영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자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뿐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 물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중생은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이시다. 하나님은 허 물과 죄로 죽었던 그 수많은 영혼을 살리셨고, 지금도 살리시는 역사를 계 속하시며, 앞으로도 계속하실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중생에 있어서 새 생명 을 부여하시는 영(the new life giving Spirit)이시다(딛 3:5, 6).
에베소서 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일서 3장 9절, 4장 7절, 5 장 4, 18절에도 중생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born of God)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분명히 중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택자들에게만 적용시키시는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요, 하나님과 사람과의 협동적 사역도 아니며, 사람만의 노력은 더욱 아님을 가르친다.
2. 중생은 피동적 사역이다 (Regeneration is a passive work) – 인간 편에서
중생은 중생함을 받는 사람 편에서는 전적으로 피동적이다. 죽은 영은 스스로 다시 살아나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의 살리시는 역사에 협력하지도 못한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 중생은 사람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인간의 결정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로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본 절에서 “하나님께로서 태어난다”(에겐네데산, egennethesan; were born; 태어났다)는 3인칭·복수·과거·수동형으로 중생은 전적으로 피동적임을 가르친다(요 3:3, 4, 5, 6, 7, 8; 벧전 1:23; 요일 2:29; 3:9; 4:7; 5:1, 18). 즉 하나님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셨고 우리의 죽은 영은 살리심을 받았다. 중생은 하나님 편에서는 능동이고 사람 편에서는 전적으로 피동이다.
∙ 찰스 핫지(C. Hodge)는 “중생은 하나님의 행동이다.… 중생시키는 자는 하나님이다. 영혼은 중생된다. 이 의미에서 영혼은 중생에서 피동적 이어서 우리 안에 공작되는 변화요, 우리가 행하는 변화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 호크마(Hoekema)는 중생은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 없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God works in us without our help). 중생은 독립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출생에 협력하지 못하며 또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엄밀히 피동적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연령으로 부터 독립하여 가장 작은 영아 안에도 능히 발생된다.… 우리는 심지어 의 당한 것으로 여기기를 하나님의 언약의 영역에서 그의 택하신 아이들을 영아기로부터 중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 패커(J. I. Packer)는, “유아들은 자신들의 생식과 출생을 유발하거나 협력하지 않는다. 더욱이 허물과 죄로 죽은 이들은 그들 안에서 성령의 소생시키는 사역을 촉진할 수 없다(겔 2:1-10). 성령의 노심케 하심은 자유로운 사람에게는 신비한, 신적인 권능의 발휘이며(요 3:8), 사람의 어떤 노력(요 1:12-13)이나 공로로 유발되거나 촉진되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자연 출생(natural birth)에 있어서 완전히 피동적인 것처럼, 우리의 영적 출생(spiritual birth)에 있어서도 완전히 피동적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출생을 결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 편에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모든 면에서 중생이 불가능하다. 주님도 “나 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시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로 올 수 없느니라”(요 6:44, 65)고 말씀하심으로써 중생은 인간 스스로의 자력으로는 불가능함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인간의 노력에 근거하지 못하며 또한 인간의 경험의 결과도 아니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무흠하고, 모든 규례를 준수하며,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호언장담 할 지라도 자신이 스스로 중생할 수는 없다. 중생은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쫓아… 하셨느니라”(딛 3:5).
그러나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에서는 주장하기를 중생은 도덕적 설득에 의하여 회개와 신앙에 의하여 발생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이나 주장은 인간의 범죄, 전적타락, 전적부패, 전적무능을 바로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오는 교리적 오류이다.
3. 중생은 영적 상태의 변화 (Regeneration is the spiritual change)이다
중생은 영적 상태의 변화요 영적 성질의 변화가 아니다. 중생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영의 내적 변화 또는 갱신(inner change or renewal by the Holy Spirit)이다.
∙ 찰스 핫지(Charles Hodge)는 “거의 보편적인 동의(同意)로 중생이란 성화의 전사역도 아니고 회심에 포함된 사역의 첫 단계도 아니고 칭의나 또 는 어떤 신분의 외면적 변화는 더욱 아니고 오직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생명 으로의 순간적 변화(the instantaneous change from spiritual death to spiritual life)이다” 라고 하였다.
중생은 영에서 일어나는 영적 상태의 급진적, 그리고 완전한 변화이다(롬 12:2; 엡 4:23). 즉 중생은 영이 죽은 상태에서 새로 창조되는 영적 소생 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생은 이미 있는 영혼의 죄악된 옛 상태에서 성결한 새 상태로의 변화를 함의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자도 외형적·육체적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 성질의 변화·삶의 변화도 없다. 인간 성질의 변화·삶의 변화는 신앙과 회개를 통한 성화로 이루어진다. 중생은 사람 안에 새 생명의 원소를 심어주는 영의 주관적 성향의 변화이다. 존 웨슬리는 중생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 암아 영혼에서 역사 하시는 대변화”(that great change which God works in the soul by the Holy Spirit)라고 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