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중생한 자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법을 자신에게 맞게 뜯어고쳐 그 기준을 낮추지 않는 한 자신을 완전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없는데, 중생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뿐이다. 위험은 여기에 있으니 하나님의 불변의(immutable) 진리의 말씀을 사람의 비위에 맞게 필요에 따라서 낮추어 생각할 수 있다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끝없이 격하(格下, degradation)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훼방을 받고 있다.
이상 위에서 살펴본 일곱 가지 이유로 완전주의자들의 주장의 헛점들을 알 수 있다. 우리 성도의 생활은 절대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늘 자신의 부족을 느끼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자비하신 하나님에게 죄 용서함을 빌며 부단히 성화 해가는 과정에서 죄와 싸우는 생활의 연속이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義, justice, dikaiosune)에 대하여 살려는 신앙생활이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의 몸이 무덤 속에 들어가고 영혼이 육신을 떠나 하나님에게로 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된다. 부활하지 못한 육신을 입고 살고 있는 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William Shakespeare의 말대로, “To err is human, to forgive is divine." 그 말은 옳은 말이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것뿐이다. 족장들이 그러했고, 선지자들이 그러했고, 사도들이 그러했고, 앞서간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모두 이런 싸움을 싸우며 살아갔다. 우리의 실수나 연약함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법으로 따지면 죄가 되지만 현실에 맞게 격하시켜놓은 말씀의 기준에서 본다면, 죄가 아니라고 하는 완전주의자들의 가르침은 과연 옳은가?
어느 법을 따라야 할까? 하나님의 온전하신 법을 따라야 할까? 아니면 사람의 비위에 맞게 격하시켜 놓은 것을 따라야 할까? 물론 하나님의 온전하신 법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우리의 영과 육의 싸움은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데 이 싸움에서 매일매일 시간마다 승리하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름다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전하자.
요일 3:9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해야 한다. 중생한 자가 도무지 죄를 짓지 아니하는가? 요일 본문에서 말하듯, 중생한 자는 상습적으로 반복적으로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뿐이고, 아직 부활하지 못한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사는 성도는 늘 죄와 싸우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가끔 실수한다. 예: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도 모두 죄를 지었다. 요일 1:10을 분명히 읽어 익힐 것. 바로 알고 바로 믿자, 또 중생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생한 사람도 죄를 짓는가? 대답은 중생한 사람도 죄를 짓는다. 그러나 죄의 종이 되어 감각없이 마음대로 고의로 상습적으로 짓지 않는다. 죄를 안 지으려고 피나는 노력을 한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성화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성화는 일생을 두고 죽을 때까지 계속한다. 우리의 신앙은 점점 성화되어 갈뿐, 아무도 이 세상에서 죄를 안 지을만큼 성화가 완성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끝)
김명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