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로(正路)
김효성 목사
교회의 정로(正路)가 무엇인가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고자 한다. 이것은 목사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 섬기게 하기 위함이며, 일반 신자들로 하여금 혼란한 이 시대에 분별력을 가지고 교회를 선택하고 교회생활을 하게 하기 위함이며, 비기독교인들에게도 기독교와 기독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1. 기독교가 무엇인가?
우선 기독교가 무엇인가부터 간단히 말해 보자. 기독교가 무엇인가 말하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전하셨는지, 또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부탁하셨는지, 또 그의 제자들은 무엇을 전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전하셨는가? 마가복음 1:1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또 마가복음 1:15는 예수께서 전하신 내용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음을 증거한다. 즉 예수께서 전하신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와 회개와 복음과 믿음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중요한 주제이었고(마 13장) 또 바울도 전한 중요한 내용이었다. 사도행전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하나님의 나라는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 받음으로 그의 심령에서 시작되고 장차 그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나라라는 것은 신약성경과 역사적 기독교회들의 이해에서 명확한 것이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이며, 그것은 곧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그 나라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특히 복음의 내용은 사도 바울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명확하게 증거되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함을 입었다고 말했고 그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고 그 서신을 시작하면서, 그 서신의 핵심인 로마서 3:20-24에서 복음의 내용을 밝히 증거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즉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전한 복음의 골자는 ‘이신칭의’ 곧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갈라디아서의 내용이기도 하다(갈 2:16).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래서 루터는 갈라디아서 주석의 서문 첫줄에서 그 서신이 하나님의 바로 그 가장 순수한 복음이라고 증거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24에서 중요한 말을 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것은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증거하는 중요한 발언이다. 즉 그는 기독교가 인간의 철학도 아니고 기적주의도 아니고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증거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매우 중요한 점이다. 기독교를 철학화하려는 시도는 교회 역사상 부절히 있어왔으나 특히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을 통해 그러하고, 기독교를 기적주의로 만들려는 시도도 그러하나 특히 오늘날 은사주의를 통해 그러하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치우친 두 경향을 경계하고 성경적이고 사도적인 기독교를 지키며 전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회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마 16:16, 18)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신 죽음이라는 속죄의 신앙 고백 위에서 세워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성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 있게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을 세우셔서 교회의 기초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성경과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을 확고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기초이며 교회의 기초인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이 예언하고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외에 다른 예수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만 교회의 기초이다(고전 3:11). 사도들을 통해 증거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갈 1:7-9).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이다.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우리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성경적 기독교, 즉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만 참 기독교이고,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성경적 기독교는 이신칭의의 속죄의 복음을 중심하여 일곱 가지의 교리 주제의 내용을 가진다. 그 첫째는 방금 말한 성경의 신적 권위성에 대한 교리이며,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 셋째는 사람에 대한 교리,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 다섯째는 구원에 대한 교리, 여섯째는 교회에 대한 교리, 일곱째는 내세에 대한 교리이다. 이것이 조직신학의 내용이며 교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어느 교회이든지 조직신학이 분명치 않으면 기초가 약한 교회가 될 것이다. 목사들이 조직신학만 가지고 목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신학 없이 목회할 수 없으며, 조직신학을 기본적으로 확고히 가지고 있어야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다.
또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 지침으로 주신 내용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우 중요하다. 이신칭의가 복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법적인 의로 만족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의 목적이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삶임을 강조하셨다(딛 2:14). 주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요 13:34).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 13:8-10).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의(義)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으로 힘을 얻어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구약성경에 근거한 성경적 기독교는 교리와 윤리를 둘 다 귀히 여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 2:17). 우리가 육신대로 죄 가운데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롬 8:13).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 가운데 머물지 않는다(요일 3:9). 우리의 목회와 설교에는 칭의와 성화의 강조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성화만 전하며 칭의가 분명하지 않으면 그는 율법주의, 윤리주의에 떨어질 수 있고, 칭의만 전하고 성화를 소홀히 하면 반율법주의, 즉 도덕적 해이와 방종에 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성경적 기독교를 붙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