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이트는 [회원가입]을 하신 후에 내용들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회원가입 후, 하루 정도 기다리시면 정식회원으로 등록해 드리며 모든 내용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사역의 특성상, 불가피한 절차임을 이해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drcharleshong@gmail.com 으로 문의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20-10-22 05:40
교회의 정로 (4-6)
인쇄
 글쓴이 : gopeace
조회 : 420  

(4) 은사운동

오늘날 교회들의 네 번째 문제는 은사운동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앞의 여러 문제들 못지 않게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것은 정말 말세의 한 징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이는 문제이다.

주 예수께서는 세상의 종말과 그의 재림 직전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하셨다(마 24:24). 또 사도 바울도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고 말하였다(살후 2:9-10).

사도 요한도 마지막 때의 미혹에 대해 예언하면서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하였다(계 13:13, 15).

오늘 시대는 은사주의 시대인 것 같다. 오늘날 소위 수적인 성장이 있는 교회들은 주로 은사주의적인 교회인 것 같다. 오늘날 교인들은 성경공부나 교리공부, 교리적 바른 지식과 윤리적인 삶에는 관심이 적으나 방언이나 병고침 등의 은사체험에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을 바르게 인식하고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은사체험을 통해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29-31).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장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하였다(고전 1:22-25).

우리는 오늘날도 교회의 바른 설립과 부흥은 순수한 성경말씀과 그 말씀 속에서 또 그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은사주의라는 거짓된 운동에 속지 말고 2천년 동안 역사하셨고 우리 한국에서도 지난 100년 동안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통한 교회의 설립과 부흥을 믿고 일해야 한다.

 

(5) 선교개념

다섯째는 선교개념의 변질이다. 오늘날 교회에는 선교개념의 혼란이 심각하다. 사람들은 교리는 분리하지만, 선교는 하나가 되게 한다고 흔히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선교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들은 과연 오늘날 교회가 공통적 복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요, 또 오늘날 교회가 선교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점은 이미 오늘날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함으로 공통적 복음을 상실했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말했다. 두 번째 점은 오늘날 다수의 교회들,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들 조차도 선교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들에 들어온 선교 개념의 변질을 바르게 인식하고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은 선교를 단순히 십자가의 속죄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을 구원하는 전통적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들은 선교라는 개념 속에 소위 사회 정치적 활동들을 포함하여 이해한다. 이것이 소위 선교에 대한 전체적 개념 혹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교회가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뿐이 아니고, 사회의 구조적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교회가 이제까지 반쪽짜리 선교를 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갱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들도 이런 영향을 받아 교회의 사명이 마치 지역사회를 봉사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목사들과 교회들이 적지 않다. 교회의 사명(선교)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이 있는 것이다. 오래 전에 한국의 대표적 보수 교단에 속한 갈현동에 있는 한 큰 교회의 주보를 보니까, 그 교회의 몇 가지 목표 중 하나가 지역사회 봉사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교회의 사명이 과연 지역사회의 봉사 등을 포함하는 사회 정치적 활동인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교회의 사명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의 계승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사회정치활동을 자신의 성육신의 목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오직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자신이 전도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또 그의 명령을 받은 그의 사도들은, 사도행전이 증거하는 대로, 오직 복음 전파에 전념했지 그 외의 다른 사회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사명을 바르게 인식하고 오직 그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택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며 참된 교회들을 곳곳에 세우는 것이다.

 

(6) 여성 안수

여섯째는 여성 안수 문제이다. 이것도 오늘날 교회들의 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성경은 분명히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 곧 여자들의 목사직과 장로직을 금한다고 말한다. 그 근거가 되는 구절은 디모데전서 2:11-14와 고린도전서 14:34-38이다. 이 두 구절에는 여성 안수를 금하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이유들이 제시되어 있다. (1) 창조의 질서, (2) 범죄의 징벌, (3) 주의 명령, (4) 율법(성경)의 교훈, (5) 교회의 보편적 규례. 이것은 성경의 명백한 교훈이기 때문에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의 교훈을 저버렸다. 이것은 사람들이 신약성경의 최종적, 신적 권위를 부정하기 때문에 성경의 교훈을 마음대로 변경하려 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부정하는 이런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7) 윤리적 문제

일곱째는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들이다. 오늘날 미국의 대교단들은 낙태를 허용하고 동성애를 용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동성애 결혼식을 허용하고 있고, 심지어 동성애 목사를 허용하는 교회들과 교단들이 점차 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오늘날 많은 교회들, 특히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교회들이 열린 예배 형식을 도입하고 현대기독교음악(CCM)을 용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개혁교회의 예배모범에 어긋나는 풍조이다. 이것이 교회의 속화, 예배의 속화가 아닌가? 우선, 이런 경향은 장로교 목사들과 장로들이 임직시 했던 예배모범에 대한 임직서약의 위반이다. 장로교 예배모범은 열린 예배나 현대기독교음악을 용납하지 않는다. 현대기독교음악은 확실히 경건한 예배나 성도들의 삶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라기보다 사람들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노래라고 보인다. 그리스도인의 노래는 좀더 경건해야 할 것이다.

 

(8) 대책

이와 같이, 현대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문제, 은사운동의 문제, 선교 개념의 변질 문제, 여성 안수의 문제 등의 교리적 문제들과, 낙태와 동성애를 용납하는 문제, 열린 예배와 현대기독교음악(CCM)의 문제 등의 윤리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교회들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과 특히 교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성경은 교제와 분리(혹은 절교)에 대해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그런 교훈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주의자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또 자유주의적 교단들 안에 머물러서도 안되고 그런 교단들과 교제를 나누어서도 안 된다. 또 우리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WCC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 또 우리는 자유주의자들과 자유주의 교단들과 함께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교제하고 협력하고 활동하는 신복음주의자들, 즉 타협적 복음주의자들을 책망하고 그들과의 교제도 삼가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은사운동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선교의 영역에서도 연합전선을 펼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 안수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한다. 또 우리는 낙태와 동성애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열린 예배나 현대기독교음악(CCM)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한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7,389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789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11/20) 창암 11-11 295
4788 신앙 (Faith) 3 gopeace 11-11 387
4787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10/20) 창암 11-10 286
4786 신앙 (Faith) 2 gopeace 11-10 373
4785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9/20) 창암 11-09 242
4784 신앙 (Faith) 1 gopeace 11-09 393
4783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7/20) 창암 11-07 505
4782 펠라기우스의 포로된 교회 / R. C. Sproul gopeace 11-07 530
4781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6/20) 창암 11-06 368
4780 개혁주의와 장로교회 (5-5) gopeace 11-06 537
4779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5/20) 창암 11-05 350
4778 개혁주의와 장로교회 (4-5) gopeace 11-05 396
4777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4/20) 창암 11-04 378
4776 개혁주의와 장로교회 (3-5) gopeace 11-04 514
4775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3/20) 창암 11-03 339
4774 개혁주의와 장로교회 (2-5) gopeace 11-03 396
4773 스펄전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2/20) gopeace 11-02 325
4772 개혁주의와 장로교회 (1-5) gopeace 11-02 600
4771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31/20) 창암 10-31 603
4770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6-6) gopeace 10-31 546
4769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30/20) 창암 10-30 477
4768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5-6) gopeace 10-30 362
4767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9/20) 창암 10-29 329
4766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4-6) gopeace 10-29 419
4765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3-6) gopeace 10-28 451
476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8/20) 창암 10-28 323
4763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2-6) gopeace 10-27 532
476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7/20) 창암 10-27 294
4761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1-6) gopeace 10-26 388
476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6/20) 창암 10-26 540
4759 교회의 정로 (6-6) gopeace 10-24 427
475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4/20) 창암 10-24 549
4757 교회의 정로 (5-6) gopeace 10-23 420
475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3/20) 창암 10-23 375
4755 스펄전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2/20) gopeace 10-22 338
4754 교회의 정로 (4-6) gopeace 10-22 421
4753 교회의 정로 (3-6) gopeace 10-21 422
475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1/20) 창암 10-21 296
4751 교회의 정로 (2-6) gopeace 10-20 510
475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20/20) 창암 10-20 325
4749 교회의 정로 (1-6) gopeace 10-19 496
474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19/20) 창암 10-19 372
4747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17/20) 창암 10-17 233
4746 죤 프레임 교수 “예배” 비평 (5-5) gopeace 10-17 392
4745 죤 프레임 교수 “예배” 비평 (4-5) gopeace 10-16 711
474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16/20) 창암 10-16 301
4743 죤 프레임 교수 “예배” 비평 (3-5) gopeace 10-15 384
474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15/20) 창암 10-15 622
4741 죤 프레임 교수 “예배” 비평 (2-5) gopeace 10-14 392
474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0/14/20) 창암 10-14 27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