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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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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10-11 18:42
균형 있는 신앙과 지·정·의의 올바른 역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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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74  

지성, 감정, 의지의 바른 균형이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특히 지성, 감정, 의지의 균형과 조화 문제가 참으로 중요하고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영적인 혼란이나 침체, 무기력함, 열매가 없는 것 등의 좋지 못한 일 대부분은 지, 정, 의의 올바른 기능과 조화에 관한 무지에서 비롯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올바르게 정리해두는 일은 강단에서 올바른 교리가 끊임없이 선포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먼저 지성, 감정, 의지의 본래 기능을 올바르게 설명하며 이해하고, 다음으로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성도 개개인과 교회가 더 온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위험한 오류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 구원받은 성도라고 해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죄의 흔적과 매일 싸워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은 종종 지, 정, 의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잘못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와 교회는 정말 아차 하는 순간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러한 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a. 지성만 강조함

먼저 죄가 사람을 사로잡아 지성만 강조하게 되면 지성주의, 자유주의, 교조주의와 같은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배우고 익히기보다, 오직 학문적인 성취를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의 지적 욕구만 채우려는 죄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사람의 감정과 의지를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머리만 엄청나게 크고 팔다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기형아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점점 더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고, 눈뜬장님처럼 되어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을 자세히 살피니, 이는 그 안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않으나, 너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있다(요 5:39~42, 바른 성경).”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는 구약 성경에 통달하여서 그 교훈을 백성에게 가르치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높은 학식은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지 못했고, 도리어 그 학식 자체가 그들의 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놀랍게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 심지어 예수님을 적대하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지적으로는 상당히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학식은 있었지만, 정작 그 학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지혜로움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 결과, 그 모든 학식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발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경고를 줍니다. 우리는 논쟁 그 자체를 위해 지식의 칼을 벼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고도 철저하게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참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믿지 않는 자에게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자기 지성을 사변적이고 학문적인 성취를 목표로 사용한다면, 스스로 어리석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교회는 차갑고 냉랭한 영적인 얼음 창고처럼 변해갈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은 오직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르게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여 죽은 영혼을 살려내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지식은 오히려 우리 눈을 가려버릴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하게 되어, 그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자기 궤변을 합리화하는 도구로써 악용될 것입니다. 스스로 속으면서도 속는 줄 모르는 이러한 위험에 관하여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에 대한 신학적 지성주의라는 오류를 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교리를 믿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인격을 믿고 그를 향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생각으로 교리의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받을 만한 믿음으로 믿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완전히 정통적인 신학자일 수 있으면서도 전혀 영적 생명은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중략)……

교리의 체계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교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교리가 복되신 그분을 감추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분이 구주이십니다. 구원을 행하시는 분이 그분이십니다.”1

이처럼 지성만 강조하는 생명 없는 지성주의에 빠지면, 신앙이 단순히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그 이상이며 전인격을 수반한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게 됩니다. 학문 자체에 빠져 그 학문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지혜에 취하는 큰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책 1,000권을 읽었다고 해서 내 믿음이 그 1,000권만큼 되지 못하는 것처럼, 신앙은 지성만으로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b. 감정만 강조

이에 반해, 신앙적인 감정만 열렬하게 추구하는 오류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오류에 빠지면 자기감정이 상하지 않는 데 열을 올리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지성을 사용하여 찬찬히 헤아려보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은 은혜가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 그냥 덮어 놓고 막무가내로 열심과 헌신을 쥐어 짜내는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오류에 치우친 교회에서는 신앙주의, 신념주의, 감상주의, 열광주의, 신비주의, 경건주의, 자아몰입, 모호한 신앙이 성행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교리 파괴, 이단 허용, 교회의 세속화와 상업화, 새로운 감성적인 기독교라는 흉측한 괴물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오류에 감염되면, 바른 교리를 따라 지적으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아가는 지극히 올바르고 자연스러운 일을 영적이지 못하다고 여겨, 무조건 매도하고 보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열심, 내가 만난 하나님, 나의 체험에 취하여, 기록된 말씀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내 감정과 체험을 시험하며 분별할 당위성과 필요성조차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런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싶어서 아예 그런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니 각자의 신앙고백이 다 제멋대로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정의 강도가 믿음의 척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대부분이 이러한 오류에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깊이 파고든 이러한 병폐에 관하여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매우 강하고 진지하게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사랑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유대인들이 분명하게 이 경우에 속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아주 높이 칭송하였으며, 고기나 물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밤낮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며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주를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다.”2

이처럼 사람은 마음에 새겨진 수많은 강한 인상, 상상력, 분위기, 각자의 기질 등에 의해, 얼마든지 감정적인 영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대는 감성팔이식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감상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교회로 들어와 세상에서 하던 그대로 행하여 교회를 점점 감정주의의 오류에 치우치게 합니다.

그들은 교회가 마땅히 내 감정을 달래고 위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역할이며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성경의 진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 세상의 온갖 것들, 즉 내적 치유, 자존감 높이기 등의 자기를 위로하고 숭배하려는 세속 심리학이 진리의 탈을 둘러쓰고 버젓이 들어와 교회를 장악해버렸습니다. 예배도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따라 온전하게 드리는 예배가 아닌, 그저 내가 듣기 좋은 가르침, 나를 힘이 나게 하는 가르침을 전하는 예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감정주의의 오류에 치우쳐, 죄에 물든 자기감정의 만족과 평온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적인 심리치유 기관 정도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c. 의지(행위)만 강조

바른 지성과 바른 감정에서 나오지 못한 의지적인 행위는 헛되고 무의미합니다. 사람이 이런 오류에 휩쓸리면 자력구원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또한, 내가 무엇무엇을 이루었고 기도와 금식을 얼마만큼 했다는 업적주의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분을 온 마음으로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의지적인 행위와 선택의 결실은, 바로 자기 의와 교만인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오류는 무지한 경건주의로 사람을 이끌어가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은혜를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열정과 의지적인 노력으로써 구원의 확신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선행과 봉사와 같이 외적으로 약간의 선한 모습만 나타나면, 신앙의 동질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경향이 계속 발전하면 결국 종교 통합까지 추구하는 거대한 재앙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진리를 배우고 아는 것보다도, 의지적인 노력과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양승훈 교수: 휘튼대학에서 신학(MA) 미국 위스콘신대학 과학사(MA) KAIST 물리학과 ,

밴쿠퍼 기독교세계관대학원 이사장, 경북대학교 사대 물리교육과 교수 에스와티니 기독의대(EMCU)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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