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죄로 인해 나타나는 다양한 오류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으로 말미암는 지, 정, 의 사이의 균형은 어떠해야 합니까?
(1) 지성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쓰여야 합니다. 사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이 사실만큼 간과되는 것도 없습니다. 지성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아간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교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배우고 연구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 그분의 거룩함과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배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지식,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칭의, 양자, 성화, 종말, 재림, 천국, 지옥, 심판 등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지성을 사용하여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일을 지지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또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 말씀이 올바르게 가르쳐지고 선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언제나 말씀을 가르칠 것을 강조하는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며 율례와 법규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스 7:10).”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이 말씀을 네 마음에 있게 하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언제나 이것들을 말하여라(신 6:6, 7).”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여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하였다(행 18:4).”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담대히 말하며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들을 강론하며 설득하였다(행 19:8).”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자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과연 이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 17:1).”
“내가 갈 때까지 너는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
“그들이 마치 의를 행하고 자기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처럼 날마다 나를 찾고 나의 길을 알기를 즐거워하며 내게 의로운 규례들을 묻고……. (사 58:2)”
지성을 통해 올바르게 앎으로써, 우리는 참으로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지성을 통하여 그릇된 것을 앎으로써, 수많은 이단과 오류와 속임에 속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그 정도에 그치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지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밝히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영적인 시각을 갖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지성을 사용하여 교리를 배우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운 그 교리적인 지식이 우리의 보물이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알고 사랑하는 곳까지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면, 그 많은 지식은 실로 헛됩니다. 그런 일은 이방인이나 바리새인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자기 지혜를 믿고 의지하면서도,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다고 자기 죄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지성소가 아닌 성전 뜰만 밟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모든 교리가 우리 주님의 영광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격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리를 배움으로써, 십자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영적인 시각이 생겨나야 합니다. 그 모든 지식이 여러분을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경외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교리적 지식을 따라 이 빛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런 지식은 살아 숨 쉽니다(히 4:12). 단순한 지적인 이해는 우리 인격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살아있는 지식은 우리의 전인격을 변화시킵니다.
(2) 감정
바른 지식에서 나온 올바른 깨달음은 감정에 건전한 영향을 끼칩니다. 바른 교리적 지식은 머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드시 가슴까지 온전하게 내려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운 바의 뜻을 곰곰이 헤아려보면서 묵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가슴으로 경탄하지 않은 교리는 금방 잊힐뿐더러, 신앙의 견고한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교리를 많이 이해하는 것과, 실제 삶 속에서 진리로 인해 굳건하며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교리적인 지식이 우리의 감정을 새롭게 하지 못한다면, 단순한 지적인 계몽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로는 삶의 거센 풍랑과 환난이 몰려오면 맥없이 쓰러져버리게 되고 맙니다. 견고한 교리의 반석 위에는 감화된 감정이 꼭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줄 수는 있어도, 단순히 아는 것을 위해 목숨을 걸지는 못합니다. 단지 지적으로만 아는 진리에 우리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그저 학문 또는 지적 체계로써만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감정에 대해 수없이 강조합니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신 6:5).”
“여호와를 기뻐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실 것이다(시 37:4).”
“나로 하여금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소서. 주께서 꺾으신 뼈들이 기뻐 뛸 것입니다.” (시 51:8)
“만군의 여호와시여, 주님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기진하며,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즐거이 외칩니다(시 84:1, 2).”
“백성아, 항상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라(시 62: 8).”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구절이 성도가 가져야 마땅한 생생한 감정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신앙의 감정은 반드시 올바른 교리적 지식을 밑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진리를 묵상하면서 진리 자체의 감화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진리 안에서 다시 분별되고 절제되어, 다른 형제∙자매의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지 못하고 혼자만 도취되는 것으로 그치는 감정은 참된 신앙의 감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