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기독교 웹 사이트에 기사가 올라오면서 화제가 된 EDM을 알고 있는가?
아마 일반적인 기독교인 대부분에게 그 말은 상당히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본인 역시도 관련 기사를 접하면서 그 말을 처음 들었다. EDM이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의 약자로서, 주로 음악 지기(DJ)가 전자 음악 장비를 사용해서 연주하는 클럽 음악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한마디로 EDM은 ‘클럽용 춤곡’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 대부분에게 생소하기만 한 이 음악이 이처럼 큰 논란을 몰고 온 것은, 모 선교 단체가 개최한 전국리더대회 개막식에서 EDM 찬양 공연을 무대에 올렸고, 그 공연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부터였다. 본인은 그 소식을 듣고 난 뒤, 해당 기독교 언론사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그 기사를 읽어보았다. 읽어보니 그 기사는 주로 해당 공연을 한 EDM 음악가를 취재한 내용을 주된 내용으로 싣고 있었다. 다음은 그 기사 중에 가장 핵심적인 대목만 발췌한 부분이다. 이 대목에서 그가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가 잘 나타난다.
「교회에서 EDM을 하는 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낀다고요? 오히려 EDM은 동시대적인 음악이에요. ‘교회 열심히 다니는’ 신실한 청소년과 청년들을 제외하고, 이 시대의 청소년, 청년들에게는 진짜 동시대적(contemporary)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돌 노래, 댄스 음악을 들어 보세요. 전부 EDM적 요소가 있어요. 흔히 말하는 발라드·밴드·포크에 익숙하고, EDM에는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느끼는 이질감인 거죠.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말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궁극적 관심에 이를 수 있느냐는 거라고 생각해요. EDM으로 찬양이 되느냐, 하나님 만날 수 있느냐는 거죠.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충분히 찬양으로 가능하다고 봐요. 무엇보다 저 자신 스스로 디제잉1 워십을 하면서 하나님께 경배감·경외감을 느끼고,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2
기사를 통해 나타난 그의 논지를 정리해보면 이와 같다.
– 교회가 이 시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수용하는 동시대적(contemporary) 음악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 음악 장르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어떤 음악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단지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편견을 넘어서야 한다).
– 음악의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음악이든 그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된다.
사실, 이런 논지는 별로 낯선 것이 아니다. 그동안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찬양을 옹호하는 이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것들이다. 다른 점이라곤, EDM 찬양이 CCM보다 세속 음악을 더 급진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한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다시 말해, 위에서 EDM 음악가가 제시한 논지는 CCM 옹호론자라면 적극적이든 암묵적이든 기본적으로 다 동의하는 내용이다.
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부인하면, 결국 현대 세속 음악을 기꺼이 찬양에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그들 자신의 정체성과 대의를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한번 생각해보라. 교회가 찬양에 쓰일 음악을 건전한 신학적 기준을 따라 구분하는데, 어떻게 세속 음악이 무분별하게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겠는가?
이처럼 저들의 주장에 깔린 핵심 전제는 “모든 음악은 다 훌륭한 찬양의 도구가 될 수 있으므로, 찬양 음악에 어떤 제한이나 구분을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을 “편견을 가지지 말라.” 또는 “당신이 시대에 뒤처졌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말로 표현하면, 이러한 주장은 더욱더 그럴듯하게 보이게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저들의 주장은 거짓이다. CCM의 영역을 넓히려는 저들의 주장은 올바른 성경 해석에 근거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성경에 근거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저들의 논지는 성경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지금부터 그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CCM의 오류
사실 음악은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므로, 어떤 음악의 용도나 적합성을 따지는 일에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기독교인이 CCM 옹호론자가 제시하는 논지에 설득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음악이 엄연히 인간의 창작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창작물은 원작자의 창작 의도에 따라 저마다 고유한 목적과 용도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음악 역시도, 당연히 지은이가 의도한 고유한 목적과 용도가 장르마다 존재하게 되어 있다.
EDM도 마찬가지다. EDM은 그 이름(Electronic Dance Music)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본질은 ‘전자 춤곡’이다. 그러므로 EDM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흥을 돋우고 흥분 상태를 조장하여서, 사람들로 춤을 추게 하는 감각적인 요소와 기법이 주로 사용되는 특징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없으면 EDM이 될 수 없다. EDM이 만들어지고 연주되는 근본 목적과 이유는 그와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런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과연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성경은 찬양이 영적인 노래여야 한다고 가르쳐준다(엡 5:19). 육신적 감각을 자극하여 흥을 돋우고, 그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뛰노는 노래가 과연 영적인 노래일 수가 있을까? 이처럼, EDM은 이미 창작 목적에서부터 영적인 노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격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정말 부끄러운 사실은, 오히려 이방 종교는 이와 같은 사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은 지금껏 신나는 클럽 음악이나 귀를 찢는 듯한 헤비메탈 가락이 울려 퍼지는 모스크나 불교 사원 혹은 천주교 성당을 본 적이 없다. 이방 종교조차도 어떤 음악이 자신의 종교적 목적과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본성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분별이 없는 이방 종교조차 그러할진대, 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이 성경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세속 음악을 교회 안으로 들여오는 어리석은 일을 한다는 말인가?
혹시 ‘아, 우리 교회는 EDM을 안 하니까 괜찮아. 이 문제는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EDM과 CCM은 본질적인 면에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CCM은 ‘컨템포러리 크리스천 뮤직(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약자로서, 번역하면 ‘동시대적 기독교 음악’이다(‘동시대적’이라는 말은 앞서 나온 EDM 음악가의 말에서도 중요한 논거로 언급되었다). 여기서 ‘동시대적 음악’이란 결국 ‘대중음악’을 의미한다. 우리 시대 대중이 향유하는 음악이 바로 ‘동시대적 음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CCM은 대중음악에 ‘기독교적인 가사’를 덧입혀 부르는 찬송인 것이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말 그대로 대중이 즐기는 음악이다. 대중음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의 육적인 기쁨을 충족시켜주고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반면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한 영적인 노래이다. 이처럼 대중음악과 찬송은 전혀 다른 두 대상(세상 사람,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지는 음악인 것이다.
우리는 CCM 옹호론자의 논리가 성경이 아닌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컬 신학, 그리고 감상주의적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의 EDM 음악가도 역시 자유주의에 가까운 신학자 폴 틸리히의 주장을 논거로 사용하고 있으며, 막연한 자기 생각과 감정에 기준을 두고 신앙생활 하고 있음을 기꺼이 시인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과 신앙의 근본 문제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 그 가르침에 자기 생각과 경험을 맞추어 교정하는 대신, 거꾸로 자기 생각과 경험에 성경을 억지로 꿰맞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생각과 경험에 불과한 것들을 마치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양 오도하고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학과 신앙은 결국 하나님을 모욕하는 악독한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