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색깔을 가진 신복음주의
한국신학계에서 그 정체를 가장 분간하기 힘든 것이 ‘신복음주의(新福音主義)’이다. 이 신복음주의는 국내에서 소위 ‘복음주의’로 일컬어지며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그리고 때로는 개혁주의와 함께 동행하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1. 신복음주의의 유래와 역사
‘신복음주의’는 194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신학 사조로서, 자유주의와 싸우며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수호하던 ‘근본주의’ 진영이 갈라지면서 발생한 ‘중립적’ 신학운동이다. 이 명칭은 풀러신학교의 초대 교장인 헤롤드 오켕가(Herold Ockenga)가 1948년 그 학교 강연에서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함으로 시작된 것으로서, 그는 이 강연에서 ‘전통신학의 새 시작’을 부르짖으며, 근본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하였다. 이들은 자유주의와의 ‘철저한 분리(分離)’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와는 달리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浸透)’로 바꾸었다”는 노선(路線)을 채택하였다(신중립주의).
비분리주의를 표방하며 시작된 이 운동은 자유주의와의 유화적 태도를 취하면서 점차 세력을 넓혀갔다.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NAE)가 결성되고, 1951년 세계 복음주의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가 형성되면서 자유주의와 손을 잡는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다. 지난 70년대 중반부터는 에큐메니칼 선교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천주교가 합세한 종교 다원주의 운동을 개신교 내에서 자유주의와 더불어 이끄는 세력이 되었다.
2.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활동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Evangelicals)’로 불렀으며, 이와같이 신복음주의 역시도 복음주의로 불리운다. 하지만 원래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때에 카톨릭의 교황주의와 성례주의에 대항하여 성경의 절대 권위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재확인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무튼 신복음주의는 그 색깔을 구별하기 힘들도록 모호하다.
3. 신복음주의의 문제성
신복음주의의 문제성은 그 안에 다양한 신학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자유주의 및 카톨릭 심지어는 이단들과도 ‘협력’(cooperation)하고, 셋째는 오히려 건전한 개혁주의를 가혹히 비판한다는 것이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복음주의 안에는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수용하는 자들과 ‘성경의 영감을 믿지만 무오는 인정할 수 없다’는 애매한 성경관과, ‘성경과 과학을 조화시킨 기독교진화론’을 주장하는 신학적 여러 갈래가 있다.
둘째,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자를 교수로 채용하거나 협력 전도라는 이름으로 손을 잡는 일, 특히 카톨릭과 이단까지도 포용한다. 예를 들면, 빌리 그래함은 그의 전도집회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목회자를 대회장으로 임명하였고, ‘카톨릭과 자유주의는 이단이 아니고 우리와 견해가 다른 형제’라고 하는 등 “그의 언행을 보면” 가히 그 사상을 알 수 있다.
셋째, 신복음주의는 정통 기독교를 ‘20세기 분리주의자’라고 혹평하며 이는 ‘교리논쟁’을 빌미삼아 습성적으로 분열하는 자들이며, 타 교파에 대한 무례한 심판관이라고 하여, 개혁주의 교회를 고립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가진 신복음주의는 오늘날 여러 교회의 세속화와 혼합주의화의 주된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신학자 우드 브릿지는 “신복음주의의 타협적 태도의 결과로 성경의 정경성, 완전 영감, 무오에 대한 회의와 진보적 창조 개념의 수납 등의 신학적 변질과 춤과 영화 등에 대한 개방적 태도에서 볼 수 있는 윤리의 세속화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마디로 ‘적과의 동침’이 결국 그 순결 상실과 타락으로 연결된 것이다.
4. 신복음주의에 대한 우리의 입장
신복음주의가 한국에 들어온지 30-40년이 지났다. 현 시점에서 많은 한국 교회들이 신복음주의에 물들어 ‘오류와의 타협’을 하고 있다. 교회의 전통이나 의식(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을 율법주의로 간주하고 선교와 대 사회봉사를 위해 교리를 초월한 협력과 연합을 강조하며, 세속적 윤리관으로 교회를 평가하려는 시도를 하여 교회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을 영웅적으로 한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인권이 중심이 되며, 교회의 신본적 통치와 질서를 배격하고 민주적 합리적 운영의 목소리를 높인다. 교회관이 희박하며 교리적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다. 신복음주의를 가리켜 박형룡 박사는 “신자유주의 내지 신이단 운동이다”라고 하였다. 작금의 한국 교회에 신복음주의의 ‘협력과 화합’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개혁주의 교회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때 우리는 외롭더라도 ‘타협’하지 않는 무리로 남길 원한다. 타협은 결국 변질을 가져오고야 만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출처 : 로고스신학교(대한예수교장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