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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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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04 04:01
Dr. 김명도의 (개혁주의 변증학)시리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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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501  

4. 구원론 (soteriology)

죄로 인하여 영적인 파산을 당하고 영과 몸이 아울러 죽은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는 없을까? 영원히 죽을 상태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救贖, Redemption)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여기서는 구원론의 핵심 교리로서 변증학과 관련 있는 부분만을 공부한다.

1) 자연계에서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

자연계에서의 성령의 사역을 보자. 성령의 특수 사역을 알려면 반드시 성령의 일반 사역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 자연계에서의 성령의 일반 사역을 보면, 모든 것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고 지적인 도덕적인 생명을 준다. 벼나 콩이나 팥을 심으면 자라난다. 성령의 일반 사역행위이다. 4계절이 찾아온다. 성령이 하는 일이다. 성령의 특수 사역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특수 사역이라 함은 성령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룩한 구속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 적용되는 방법을 말한다. 사람이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인데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내고, 자라게 하고, 선행의 열매를 맺게 한다.

성령의 일반 사역과 특수 사역은 공통되는 면, 즉 새로운 생명을 주고 또 자라게 하고 마지막까지 완성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같으나 그럼에도 또한 차이가 있다. 즉 일반사역은 이미 주어진 자연에 역사하여 새로운 생명을 주고 질서를 유지하게 하지만 특수 사역은 모든 것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서만 역사한다는 점이다.

2) 보편은혜, 일반은혜(Common Grace)

보편은혜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 모두에게 분별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햇볕은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꽃은 성도의 뜰에만 피는 것이 아니다. 비는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의 밭에만 내리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은혜를 주어서 심령이 변하는 경험(회심, conversion)이 없이도 어느 정도 도덕적인 선을 행할 능력이 있으며, 죄를 통제(統制, control, restraint)하며, 인간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질서가 유지되게 한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이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주시는 보편적인 은혜인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에서는 이 보편적 은혜로도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있고, 그리스도에게 돌아 올수 있고, 또한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으며, 또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보편적인 은혜로서는 그런 영적인 차원에 미치는 사역이 허용되지 않으며 영적인 영역(領域, realm)의 일은 특수 은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보편 은혜로서 인간의 완전 타락상을 제거하여 하나님에게 회심케 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가르침은 허위이다.

그러면 성령의 보편 은혜와 특수 은혜의 차이점들을 여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가) 보편은혜는 인간의 마음에 변화를 초래하지 못하지만 특수 은혜는 초래한다.

나) 보편은혜는 인간의 이성적이며 또한 도덕적인 방법으로 역사하는데 인간으로 하여금 진리를 받아 드리도록 하고, 의지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인간의 자연 욕망에 호소하지만 특수 은혜는 영적인 영역에 창조적으로 역사하여 인간의 성품을 완전히 새롭게 하여 새로운 열매를 맺게 한다.

다) 보편 은혜는 저항할 수 있고, 또 때로는 인간에게 거절당하지만 특수 은혜는 저항당하는 일이 없고, 한번 특수은혜를 받는 사람은 저항할 수 없이 인간은 자발적으로 모든 의지를 성령께 복종한다. 이것이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칼빈의 5대 강요 중 네 번째 되는 가르침인 것이다.

3) 구원의 서정 (Order of Salvation, Ordo Salutis)

죄로 파산당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갈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에게 나아오며 구원을 얻는가? 부르시고(Calling), 중생케하고(Regeneration), 회심시키고(Conversion), 믿음(Faith), 칭의(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그리고 성도의 궁극적인 인내(Perseverance of Saints)이상의 여러 단계를 거친다. 그러면 이제 이 과정을 자세히 생각해 보자.

가) 부르심 (Calling)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인 부르심(Universal Calling)과 효과적인 부름(Effectual Calling)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노방전도나, 개인전도나 방송 전도나 부흥집회나 어떤 모양이든 복음을 들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것이 일반적인 부름이다. 일반적인 부름은 사람을 회심시키거나 회개 시킬 수 없다.

그러나 효과적인 부름(effectual calling)을 받으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부르심을 거역할 수 없고 반드시 회심하게 된다. 루터교나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인간의 신앙에서 출발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구원은 성화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이 이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효과적으로 불러 주어서 죄로 죽었던 인간이 살아나서 회개하게 된다. 루터교나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믿음에 기인한다는 말은 모순이 있다. 우선 하나님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회개할 수도 없고 또 믿음을 가질 수 도 없다. 하나님은 효과적인 부름으로 불러 주신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데 믿음조차도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첫 단계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은 우선 하나님이 그의 성령으로 불러 주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불러 주시면 반드시 죄인은 거역할 수 없이 구원 얻고야 만다.(행13:48, 고전 1:23-4 참고).

나) 중생 (Regeneration)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과 중생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거듭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거듭난다는 말은 인간의 영혼이 거듭나고 인간의 성품이 거룩해지도록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중생한다’는 말은 “위로부터 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Born from above"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으로 난 것이다.(What is born of flesh is flesh, and what is born of spirit is spirit, 요3:5절 이하). 중생하면 인간은 그 죄로 물들어 육신의 생각만 좇던 인간의 영혼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것을 사모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된다. 중생하면 사람의 지, 정. 의가 모두 변한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기적이 일어난다. 지(intellect)가 변한다.(고전2:14-5, 고후4;6, 엡1:18, 골3:10). 의지(volition)가 변한다.(빌2:13, 살후3:5, 히13:21), 그리고 정서(emotion)이 변한다.(시42:1-2, 마태5:4, 벧전1:8 등). 그러므로 중생은 인간의 어느 한 부분만 변함이 아니요 전 인간이 변한다.(the whole man). 중생은 오랜 시일을 두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즉시 일어나는 행위이다. 반면에 성화는 오랜 시일을 두고 일어난다.

***수세 중생설 (Baptismal Regeneration)

세례를 받으면 자동적으로 중생한다는 교리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대표전인 교파는 천주교이며 그 외에 성공회(Anglican church)및 루터교의 일부이다. 이들이 가르치는 공통되는 점은 사람이 중생했다가도 중생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 회심(Conversion)

하나님이 불러 주시고 중생시키면 사람은 그 다음 단계는 회심한다. 회개한다는 말이다. 구약에서는 슈브 (bWv Shubh) 그리고 니캄 (!j'n nicham)이 모두 회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자는 “가던 길을 돌아 온다“ 는 의미이고 후자는 ”어떤 계획을 변경시키는 회개“를 말한다. 신약에서는 주로 메타노에오 (μετανοέω / metanoeo) 이다. “생각이 변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에피스트로페 (ἐπιστροφή / epistrophe) 라는 단어가 있는데 “가던 길을 돌아 온다”는 말, 즉 유턴(U turn)하는 일을 말한다. 또 한 가지 회개라는 신약성경의 용어는 메타멜로마이 (μεταμέλομαι / metamelomai) 라는 단어인데 이는 늘 회개하는 것은 아니고 “회개하는 척하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가롯 유다의 경우처럼(마27:3). 회심의 요소는 항상 회개와 믿음인데 회개는 과거에 관련되어 있고, 믿음은 장래에 관련되어 있다. 또한 믿음은 칭의와 관련되어 있고 회개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와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만이 회심 시킨다.(행11:18, 딤후2:25 등 참고) 회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요3:5 이하를 참고).

라) 믿음 (Faith)

믿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모두 무엇이든 믿는다. 이방인들은 우상을 믿고 섬긴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증거이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아 갈수는 없다. 그런데 회심한 사람에게는 믿음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다.(엡 2:8)

신앙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A. 역사적 신앙

지적으로만 믿는 신앙.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그러하다. 성경의 사실을 지적으로 알고 있지만 본인은 믿지 않는다. (마7:26, 행26:27, 약2:19 등을 참고).

B. 기적적 신앙

기적이 일어나면 믿는 신앙. 천주교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마17:20, 막16;17-18 등을 참고).

C. 임시 신앙

중생이 마음에 뿌리가 박힌 것이 아니고 감정에 치우치는 신앙.(마13:20-21) 핍박이 오거나 시험이 오면 견디지 못한다. 천박한 신앙이다. 이런 신앙을 경계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성도들의 신앙이 이런 유형의 신앙이다.

D. 구원에 이르는 신앙 (Saving Faith)

중생한 심령에 뿌리를 박은 신앙이다. 중생시 마음에 믿음의 씨가 심기어졌다. 하나님이 믿음의 씨를 마음에 심어 준 후에 사람은 믿음을 행사할 수 있다. 계속해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훈련을 쌓으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늘 믿음 생활을 하게 된다. 즉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 욕망이 그를 지배한다. 믿음에는 지적요소, 정적 요소, 그리고 의지적 요소가 있다. 말씀을 알고, 받아드리고, 의지한다. 받아드린다는 말은 순종한다는 말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교훈을 지적으로 깨닫고, 순종하고 의지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천주교는 믿음을 보는 각도가 다르다. 그들은 성경을 알든 모르던 문제가 되지 않고 즉 지적인 요소가 결여되었고, 또한 의지적 요소도 없어서 의지(trust)하는 요소가 없으며 단지 정적인 요소 즉 교회의 가르침에 동의(同意, assent)하는 일, 즉 순종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만 하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다고 가르친다.

마) 칭의 (Justification)

구약에서는 체데크(qd'x)인데 “의로워졌다“는 의미. 신약에서는 디카이오수네 (δικαιοσύνη)이다. 이 말은 counted as righteous 라는 의미, “의로 여김을 받는다”란 말이다. 절대로 “의로워졌다”가 아니다. 헬라어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나타내는 말이 ow 로 끝나는 단어는 “....이라고 간주되다”란 의미를 갖는다. 칭의의 반대는 정죄(condemnation)이다. 칭의의 방편은 믿음이고 칭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이룩한 의(義)이다. 칭의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죄인을 “의롭다고, 죄를 짓지 않은 양, 모든 죄를 감추어 주시면서 하늘나라의 영생을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이다.

칭의의 요소가 무엇인가? 부정적인 요소는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impute)되어 얻어지는 죄의 용서이다. 죄를 없다고 보아 주시는 것이다. 이 죄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과거이건 현재이건 미래이건 죄 한 가지만 지어도 그 결과는 의에 이르지 못하고 지옥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섰다는 말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모두 용서 받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칭의의 긍정적인 면을 본다면, 두 가지인데,

1)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것이다.(요1:12). 2) 영생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로마서 8:17절 말씀대로 그리스도와 같이 후사가 된다.(co-heir, 後嗣). 따라서 모든 특권을 누리게 된다. 이 땅의 특권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리요”

칭의는 어디서 이루어지는가? 능동적인 의미에서 볼 수 있고 수동적인 면에서 볼 수 있는데 1) 능동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법정에서 이뤄진다.(롬3:20, 갈3:11), 2) 수동적으로 보면 인간의 마음속에 이뤄진다.(롬5:8). 칭의의 근거(ground of justification) 은 십자가에서 이룩한 주님의 “의” 이다.

바) 성화 (Sanctification)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중생하고 회심한 후 믿음을 선물로 받아 칭의를 얻고 양자가 된 사람은 계속해서 그 신앙생활이 성숙해 나간다. 이것이 성화과정이다. 인간의 성화는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데 죽을 때까지는 아무도 완성되는 이가 없고, 죽을 때, 즉 우리의 육신이 영혼을 떠날 때 비로소 성화가 완성 된다.

구약에서는 카데쉬 (vd'q / qadsh) 인데 이는 “set spart" 의 의미이고 신약에서 사용하는 하기아조 (ἁγιάζω / ;hagiazo) 라는 말도 같은 의미이다.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교회“ 라는 의미와도 같다. 교회란 말 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 / ekklesia) 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 이라는 말이다. 성도는 이 세상에 동화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구약에서는 사람이나 기물이 거룩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표리가 거룩하며 이는 하나님에게 받쳐졌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에 적합하게 되는 것이다.

성화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여 이룩되는 사역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성령을 거슬림이 없이 순종하여 자신의 신앙을 성장 시켜 나가시기를 원하신다.

성화는 두 가지 면이 있는데, 1) 옛 사람을 죽이는 일이요(롬6:6, 갈5:24), 2)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날마다 영혼이 새로워진다.(롬6:4-5, 골2:12, 3:1,3). 성화는 성도의 마음에서 일어 나기 때문에, 인간의 지, 정, 의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서 겉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난다.(롬6:12, 고전6:15, 20, 고후5:17, 살전5:23 등 참고), 성도는 이 세상에 살아 갈 동안 유혹과 시험에 들기 쉬우므로 늘 경성하여 성령에게 복종하고 또한 성화하는데 힘쓰기를 원하신다.

성화는 성도가 방관하는 사역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참여하는 행위이다. 성화는 이 세상에서는 완성되지 못하고 죽을 때 완성 된다. 이 세상에서는 육신과의 부단한 싸움이 이어진다.(빌3:12-14). 죄의 고백과 용서는 아직도 성도가 계속해서 행할 의무이다. 성화가 완성되었다면 기도할 필요가 어디 있고 용서를 빌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사) 성도의 궁극적인 인내 (Perseverance of Saints)

한번 구원 얻은 성도는 결코 구원을 잃지 않는다. 개혁파만 그렇게 믿는다. (Calvin의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또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Belgic Confession, Heidelberg Catechism \ Canon of Dordt 참고)

루터파나 천주교나 성공회나 모두 한번 구원 받아도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궁극적인 인내를 가르치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0:28-29, 로마서 11:29, 빌립보서 1:6, 데살로니가후서 3:3, 디모데후서 1:12, 4:18 등.

(고) Dr.김명도 목사, 교수

연세대 영문과 졸업, Philadelphia Westminster 신학교 졸업, M.Div.(목회학)Th.M.(신약학) D.Min.(변증학) 개혁장로회 신학교 학감 (RPS, L.A) 미국 개혁신학교(ARCS) 교장 (L.A ) 미국 L.A 소재 칼빈 신학교 대학원장. Tyndale International University 초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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