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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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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12 03:28
Dr. 김명도의 (개혁주의 변증학)시리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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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494  

IV. 기독교의 변증학(접촉점) Christian Apologetics (Point of Contact)

1. Anknuepfungspunkt 접촉점

앞에서 기독인과 비교독인의 지식의 사고방식, 그리고 행동의 표준 등을 보았다. 변증학은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문을 열어야 한다는 점에서 불신자 들이 어떠하며 그들의 행동의 강령이 어떤가를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일반 자연인들이 생각하는 것이 어떠한지 알고 난 다음 이제는 우리가 기독교의 믿는 바를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고 기독교만이 진리를 전함을 자연인에게 알려야 한다.

기독교의 변증학의 출발은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는데 (creatio in imago Dei) 범죄로 인하여 그 형상을 상실하여 지. 정. 의가 모두 죄로 오염되어 각기 그 기능을 발휘할 능력을 상실하여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아 가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이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타락한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그 흔적만 가지고는 무엇이든 바로 행할 수는 없다. 중생(regeneration)의 과정을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대개 일반 자연인들과 접촉 할 때 한 가지 알 것은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그들의 생각은 거듭난 사람과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피조물을 숭상하고 크리스챤은 조물주인 하나님을 경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들과 교통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 볼 수 있을까?

여기서는 접촉점(Point of Contact, Anknuepfungspunkt)을 공부하고 다음 항목에서는 그 방법론을 공부하자.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인과 접촉할 때 그 자연인들에게 우리와 통할 수 있는 어떤 점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이름으로 간하배(Harvey Conn, 1933-1999)는 동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실천 신학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던 분인데 그의 책 Evangelism: Doing Justice and Preaching Grace (1982, P&R)에서 불신자와 신자가 접촉하려면 그들과 아픔을 같이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사례 연구를 많이 발표하고 있다. 음악이나 사교(社交)를 통해서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그의 영혼의 울부짖음을 채워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음악활동들은 그 자체로서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해도 죽은 영혼을 살리는 데는 별 구실을 못하고 사람의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은 오직 말씀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찾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낡아 빠진 성경을 옆에 끼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길 어귀에 서서 거룩하게 “오! 주여”라고 외치기만 하면 수많은 사람이 주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 비기독교인이 같이 공감 할 수 있는 공감대를 찾아야 하는 과제가 있게 되는데 한 가지 공감대는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 졌어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완전 타락 (total depravity)을 외칠 때, 우리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찾아 갈수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알 수 있다. 불신자의 어느 심성에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불을 점화 할 것인가? 기독교에만 빛이 있고 생명이 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2. 천주교의 견해

오래전에 프린스톤 신학교의 주경신학 교수였던 워필드(B.B.Warfield)라는 분이 책을 썼는데 그 책의 이름이 ‘구원의 계획’ (Plan of Salvation) 이라는 아주 적은 Paper back인데 부피는 작아도 그 책에서 그는 천주교의 구원관과 또 오늘의 복음주의 또 개혁주의 견해에 대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설명해 주고 있다. 신학에서는 크게 자연신학과 초자연신학으로 구분 할 수 있는데 가령 주후 4세기 후반의 펠라기우스 같은 사람은 자연신학을 주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초자연주의를 주장하는 신학이다. 초자연주의 신학은 희랍정교, 천주교, 개신교 모두 초자연적인 신학을 주장한다. 즉 인간이 구원 얻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초자연적인 신학체계를 다시 둘로 구분하면, 복음주의 신학과 사제중심 신학으로 구분된다. 양자 간의 차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직접 신자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는가 아니면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오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신자에게 임한다고 믿는 것은 복음주의의 신학이다. 그러나 사제중심(司祭中心神學, Sacerdotal Theology)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직접 신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 온다고 가르친다.(Grace of God is communicated by and through the ministration of church, otherwise, not).

교회를 통한다는 말은 물론 교황을 비롯하여 신부들을 통해서 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개인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교회의 횡포가 있다. 하나님은 은혜를 사람을 통해서 주시는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간에 매개체가 필요한가?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둘로 갈리진 것을 일부러 잊으려 하고 있고 그 의미를 일부러 무시하려고 한다.

개신교 중에서도 두 가지로 구별 할 수 있는데.....

즉,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온 인류를 향한 것이라고 믿는 일반구원론과 또 반면에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특정된 사람들만 구원한다는, 즉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만(엡1:4) 구원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온 세상을 위함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만을 위함인가? 이에 따라서 양자가 구분된다. 이와 같이 같은 곳에서 출발했으나 이렇게 사이가 넓어지게 되었다. 분명 복음은 하나 일수밖에 없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여러 가지 복음을 머리에 두고 기록한 것이 아니다. 복음은 하나뿐이다. 그런데도 실제에 있어서 우리는 수많은 형태의 복음을 본다. 어느 한 가지가 분명히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에 관한 정확한 말씀이고 다른 것들은 잘못된 교리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펠라기우스는 잘못이다. 그러나 그의 신학의 반대에 선 신학자들마저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 은혜가 사람을 통해서 오는가? 어떤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있는 그런 권리가 사제에게 있는가? 주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 가셨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만의 죄를 담당하셨는가?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보여만 주시고 물러선 분인가? 아니면, 친히 구원을 끝까지 이룩하신 분인가?

분명히 로마 천주교는 교리면에서 모두 왜곡되어 있다. 비단 은혜만이 아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7가지 신품 중 영세와 성찬도 성경에서 벗어난 가르침이지만 그 외에 거짓 성례인 견신례, 종부성사, 혼인성사, 신품성사, 고해성사 등은 터무니없는 억지 성경해석이다. 특히 견신례에서 견신례를 받아야 신앙이 돈독히 되어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교리나 종부성사(終傅聖事, extreme unction)를 받으면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 받는다는 교리는 비성경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주교는 비단 한 가지 교리에 실수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전체를 비성경적으로 전락하는 기형적인(deformed) 종교로 타락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9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다. “다른 복음”이란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도 다른 복음이지만, 성경에 가르치지 아니한 종부성사나 견신례(堅信禮, Confirmation)를 통해서 믿음이 돈독하고, 종부성사, 그것 자체가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용서한다고 가르치는 교훈은 다른 복음이다. 한 가지 교리에 잘못되면 그 다음 교리도 잘못되게 마련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은 필연적으로 잘못되게 마련이다. 이것은 신학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변증학에서는 불신자에게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고 수호하기 위하여 바른 성경적인 신학으로 투철하게 무장하는 것을 우선순위(top priority)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변증학도는 바른 복음에 서서 비기독교와 대화하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제시하고 또한 수호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다. 특히 오늘과 같이 사이비 기독교(Quasi-Christian Religion)가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바른 정통적인 기독교(genuine Christian Relgion)가 절대로 요청된다.

변증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인 접촉점(接觸點, Anknuepfungspunkt)을 찾는데는 정확한 인간론이 필요하다. 사람의 상태가 어떤가? 술취한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서 그를 설득시키겠는가? 죽은 사람에게 무슨 말로 그를 깨우겠는가? 사람을 살리거나 사람을 깨우는 것은 변증학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변증학자를 통해서 역사 하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대로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 사람이 무엇이며 사람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그런데 여기에서도 로마 천주교는 개신교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에덴동산의 아담은 그렇게 완전 타락하여 스스로를 구원 못할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되어 있고 이 둘은 서로 싸우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선을 주어서 싸워서 승리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고로, 천주교인들이 다른 불신자와 이야기 할 때는 인간은 아주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의 힘으로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여 믿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인간이 완전 타락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은 성경 여기저기에서 말하고 있다. (롬3:11, 3:23, 시14:1-5, 58:3-5 등)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는가? 요한복음 6: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은 지극히 악하다.(렘17: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온갖 더러운 죄악뿐이다.(마15:19-20). 로마 천주교에서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이성(理性, reason)에 호소한다. 보통 사람은 이성을 사용하여 믿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자기를 바로 볼 수 있을까? 사람이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율법이 없으면 죄를 모르게 된다.

율법의 목적이 바로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율법아래 설 때에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무를 잘라 책상을 만들려하는데 자르기전에 나무에 금을 그어 두었다. 그러나 그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그의 어린 아들이 그 나무의 금을 모두 변경시켜 버렸다. 나중에 돌아 온 아버지는 그 금대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른다고 했을 때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 나무는 모두 비스듬히 잘라졌고 아무 쓸모없이 되었고, 본래 의도했던 책상을 만들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와 같이 믿지 않는 사람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해도 그 진리의 교리에 자기 나름대로의 금을 그어 놓는다면 진리는 전파 될 수 없다. 다른 복음이 전파되는 셈이 된다. 자연인은 아무리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한다고 해도 인지(認知, recognize) 할뿐이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생각이 이해 못하도록 타락했기 때문이다.

3. 복음주의의 견해

개혁주의가 아닌 개신교 교파를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고 한다. 복음주의는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완전 타락을 믿지 않는다. 인간에게 어느 정도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가르치며 따라서 인간의 이성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천주교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인간의 자아의식(自我意識, self-consciousness)면에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깨닫는가? 복음주의는 천주교와 그의 인간론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천주교와 교류하는 경향이 많다. 1997년에 개신교 중에서 복음주의를 믿는 목사들과 천주교의 신부들이 모여서 이른바 Protestants-Catholics Together 라는 선교협력기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2000년대를 향하여 선교 협력면에서 천주교와 같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기구에서는 선언문 Protestatns-Catholics Together 라는 선언문을 발표했고 그 선언문에 서명한 사람중에는 뱅쿠버(Vancouver)의 Regent College의 패커(J.I.Packer)도 들어 있다.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 교단의 John White 목사는 이에 서명하였다가 후에 철회한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복음주의는 그의 접촉점이 천주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

4. 개혁주의 입장

개신교 중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성경의 권위를 가장 높이는 교파를 개혁파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는 칼빈주의(Calvinism)라고도 한다. 개혁주의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정확성을 믿으며 하나님의 주권사상(sovereignty of God)을 믿는데 인간은 완전히 타락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리 이성을 동원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믿음을 가지는 것은 사람이 이성을 행사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은혜로 믿음이라는 선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파가 인간의 완전 타락에 대한 명확한 교리가 없는 천주교의 가르침과 복음주의의 가르침을 수용 못하는 것이다.

(고) Dr.김명도 목사, 교수

연세대 영문과 졸업, Philadelphia Westminster 신학교 졸업, M.Div.(목회학)Th.M.(신약학) D.Min.(변증학) 개혁장로회 신학교 학감 (RPS, L.A) 미국 개혁신학교(ARCS) 교장 (L.A ) 미국 L.A 소재 칼빈 신학교 대학원장. Tyndale International University 초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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