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 전제론적 논쟁 (Argument by Presupposition)
1.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형상
기독교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진리는 전통적인 재래식 변증학적 접근방법으로는 입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 재래식 변증학의 방법론은 천주교에서 만들어 낸 것을 개조해서 개신교가 사용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에는 맞을지 몰라도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충분치 못하다. 개신교(改新敎, Protestants)의 변증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창조주로 인간에게 스스로 나타내주시는 하나님에게 인간이 순종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바른 변증학의 출발점이다. 그런데도 재래식 변증학은 이 점을 눈감고 지나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권위 있는 말씀이며 이를 믿거나 안 믿거나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항상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변함이 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인간의 타락을 말하고 인간은 그것을 믿고 순종하며,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죄 사유함을 받고 구원 얻는다고 가르치면, 그대로 순종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경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순종하고 믿어야 한다. 성령은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서 가장 효과 있게 역사한다. 브라이언 에드워드(Brian Edwards) 는 그의 명저(名著) Shall We Dance? 라는 책에서 (Evangelical Press, 1984, 153pp.)에서 “교회는 세속에 물들어 설교보다도 음악을 더 중히 여기고 북을 치며, 춤을 추지만,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은 북을 치며 춤을 추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복 중의 복은 성경 말씀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p.144).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송장(stinky corpse)이다. 죽은 사람을 깨우는 비결은 말씀이다. 말씀 밖에 없다. 뉴톤( John Newton)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신나는 음악이 아니라 선장이 설교하는 성경 말씀이었다. 개혁주의적인 변증학은 죄로 인하여 영혼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씀임을 굳게 믿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모든 논쟁을 성경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재래식 변증학과는 아주 판이한 방법이다. 재래식 변증학, 이를테면, 노만 가이슬러(Norman Geisler) 나 고든 클락(Gordon Clark) 같은 분은 인간에 이성에 호소하면서 논리적인 논쟁을 펼쳐 나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또 그런 방법들이 실효(實效)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 전제론적 변증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전제론적 변증학은 그 출발점이 성부, 성자, 성령등 삼위 일체 하나님이 성경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에게 말씀하신다는 데서 시작된다.
죽은 사람이 무엇을 아는가? 라고 묻는다면 재래식 변증의 대상자도 똑같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다. 그러면, 같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놓고 이야기 할 때 세상 이치로 이론적인 논리를 전개하며 그 사람의 이성에 호소하여 기독교의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 일과 전제론적인 방법으로 그 사람의 죽은 영혼에 호소하여 살게 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앞서도 언급한대로 사람은 로마서 1:21절 말씀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gnontes ton theon) 사람은 그 마음 판에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져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지만 그 마음이 죄로 인하여 어두워져서 앞을 못 보는 것이며 또 한편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알만한 능력을 일부러 억제한다.(suppress). 왜냐하면, 죄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조물주를 섬기기보다 피조물을 섬기기를 더 좋아 하기 때문이다. 선한 것 보다는 악을 더 좋아한다.(롬7:19). 불신자와 대화할 때 그들의 논리에 휘말려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들의 창고는 온갖 쓰레기밖에 없다. 그들의 창고에 들어가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변증학자가 가지고 있는 황금보석이 있는 창고를 보여 주어야 한다면 나의 창고로 그를 끌어 들여 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불신자와 논쟁할 때 대부분의 방법론인 그들 불신자의 견지에서 논쟁하여 무엇이나 수긍하여 그들의 마음을 산 다음, 그 결과로 그들을 주님에게로 이끌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창고에 들어가서 같이 숨바꼭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이렇게 놀면서 보낸 다음 얻는 것은 없으며, “내일 또 놀자” 란 통속적(通俗的) 여운(餘韻)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요 우리들 주위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임을 보아 왔다.
성도가 변증학을 갖고 있듯, 불신자나 기독교롤 핍박하는 반기독신자(反基督信者)도 각각 제 나름대로 그들의 변증학이 있다. 그들의 변증학은 기독교 신자가 갖고 있는 목표와 정반대가 되는 목표를 갖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은 두 가지 종류이다. 한편에서는 조물주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요, 다른 한 편은 인간이 왕이며, 인간의 모든 일의 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인간이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자연을 해석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이다. 전자의 경우는 거듭난 성도이며 후자의 경우는 변증학자가 다루어야 할 불신자나 사이비 신자, 아니면 반기독신자이다. 그러므로 전제론적 변증학이 지향하는 것은 인간의 죽은 영혼을 깨우고 병든 마음을 고쳐야 하는데 그것은 세상적인 이론을 가지고 죽은 사람의 이성에 호소해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이성은 여전히 죽은 이성이기 때문에 논리적인 논쟁을 통해서 그 생각이 변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을 고치고 심령이 변화되는 것은, 거듭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그 죄인의 마음,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이것을 신학에서는 “자연인”(natural man, 自然人)이라 하는데, 그 사람이 변화를 될 때 가능하다.
성경은 인간의 참 모습이 어떤가를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말해 준다. 아무리 인간이 교만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다고 해도 누구나 인간이면, 그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아 타락하여 소망이 없고 지옥의 자녀로 전락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주관적인 독단(獨斷,dogma)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입증 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는데 성경은 조물주 이신 하나님을 스스로 나타내 주시는 책이기 때문에 절대로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고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지혜가 무한하시다. 유한하고 지혜가 없는 인간은 무한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절대 지혜로우신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복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것만이 사는 길이다. 이것을 변증학자는 불신자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의사는 환자 스스로가 처방한 약을 지어 주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의사가 진단하고 의사가 처방한 약만이 그 환자를 고칠 수 있는 참된 진짜 약인 것이다. 사람들은 암에 걸려 있어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자신이 무서운 병에 걸려있는 것을 모르거나 일부러 잊으려 하고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괜찮습니다" 라고 거짓말을 하여 환자로부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칭찬받을 의사가 어디 있는가? 참다운 의사, 환자를 사랑하고 환자를 위한 의사라면,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솔직히 말해 준다. 이런 의사가 정말 의사이다. 병들어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 듣기 좋게 하기 위하여 ”괜찮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 의사는 살인 하는 자임에 틀림없는 악덕 의사이다. 인간이 타락한 상태, 타락한 인생은 그리스도밖에 소망이 없음을 말하고 보여 주어야 한다. “Where are you going to spend your eternity? Is it in the heaven, or is it in the hell? There is nothing between them." (당신은 영원한 시간을 어디서 보낼렵니까? 천당입니까? 지옥입니까? 중간은 없답니다) 얼마나 솔직하고 정직하고 단도직입적(短刀直入的) 인가?
(고) Dr.김명도 목사, 교수
연세대 영문과 졸업, Philadelphia Westminster 신학교 졸업, M.Div.(목회학)Th.M.(신약학) D.Min.(변증학) 개혁장로회 신학교 학감 (RPS, L.A) 미국 개혁신학교(ARCS) 교장 (L.A ) 미국 L.A 소재 칼빈 신학교 대학원장. Tyndale International University 초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