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앙과 불신앙과의 대화 (Dialogue between Believers and Unbelievers)
라틴(Latin)어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방법은 보다 부드럽게 그리고 내용은 더 힘차게". 불신자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사랑하신다. 지금 상담하는 사람(counselee)도 언젠가는 예수를 알고 눈이 열릴 때가 있을지 누가 아는가? 그러므로 교만은 금물이다. 불신자와 대화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라는 것, 그에게는 그가 왕이며 그가 그의 생각대로 우주를 해석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우리 거듭난 성도와 비교해 보라.
거듭난 성도는 반대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고 나는 나를 지으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조물주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변증학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증학의 방법론을 제시 해주었는데 그 방법이 죄로 인하여 죽은 자연인, 자신만이 왕으로 살아가는 자연인에게 설득력이 없을듯하지만 다윗을 뒤에서 지켜주신 같은 하나님이 우리 뒤에서 우리를 지키시며 그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전제 주권을 가지신 분이고 또 하나님의 택자와 비택자가 있을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울면서 회개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불신다가 눈을 뜨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기독교의 증거 (Christian Witness)
그리스도인들은 각각 증거가 있다. 천주교는 천주교로서의 그들이 옳다고 믿는 증거가 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천주교는 그렇다해도 다른 개신교들이야 모두 같은 교리를 믿으니 그들이 하는 대로 기독교를 증거하면 될 일이지 구태여 왜 개혁주의적인 증거를 따로 만들어서 그렇게 해야만 되는가?” 하고 질문할 수 있다. 그들도 모두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부활, 대속의 죽음, 세상의 종말,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가? 하고 다시 묻는다. 그럴싸한 질문들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가령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생각하자. 우리가 생각할 때는 예수를 믿는 교파이면 누구나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몰론 그들 자신들도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다고 그들의 신앙고백서에 명시하거나 또 그렇게 가르친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를 믿으라고 집집마다 찾아다닌다. 그들의 말하는 예수는 누구인가? 우리가 믿는 같은 예수인가? 단어는 같으나 같은 예수가 아니라 다른 예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간보다 먼저 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지 하나님이 아니며 따라서 천지를 만드신 조물주가 아니라”고 가르치면서 그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한다.
이단도 예수를 말하지만 개념이 우리와 다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말하면서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주시므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었으니 믿고 싶으면 믿으시오” 라고 가르친다. 그러니까, 그들의 가르침은 예수님은 할 일을 다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으니 이제는 우리 힘으로 구원을 받으라는 말이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가?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열어 놓은 것만 아니라 친히 우리를 위하여 그 구원을 완성하시고 우리를 이끌어 아버지 하나님에게 받치지 않았던가? 또 주님의 재림도 마찬가지이다. 믿는 성도이면 누구나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떻게 재림하는가 하면 모두 의견이 다르다. 휴거(rapture)가 있고, 지상에는 7년 대환난이 있고, 전 삼년 반에는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고, 후 삼년에는 말할 수 없는 핍박이 있고 다시 예수님이 오셔서 예루살렘에서 문자 그대로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1,000년 동안 통치하는 천년왕국이 온다” 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재림은 한번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요6:39,40,44,54). 두 번 오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모두 자동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다. 후 삼년은 무엇이며 전 삼년은 무엇인가? 그들은 다니엘 9:27절을 말하지만 그 말은 반드시 계시록 11장과 연관지어 해석해야 한다. “3일반,” “3년반,” “1270일,” “한때, 두 때와 반 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전 기간을 일컫는 말이지 환난기간을 말함이 아니다. 그리고 성도가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하는가? 혹은 환난을 당하지 않고 휴거하는가 하는 것도 개혁주의와 많이 다르다. 성경은 요한복음 16:33절에 분명히 성도가 환난을 당할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비단 천주교가 아니고 개신교의 복음주의라 해도 이렇게 엄청나게 차이가 있으므로 기독교를 증거 함에는 본 변증학 제1과에서 말한 것처럼 신론, 인죄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을 바로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고) Dr.김명도 목사, 교수
연세대 영문과 졸업, Philadelphia Westminster 신학교 졸업, M.Div.(목회학)Th.M.(신약학) D.Min.(변증학) 개혁장로회 신학교 학감 (RPS, L.A) 미국 개혁신학교(ARCS) 교장 (L.A ) 미국 L.A 소재 칼빈 신학교 대학원장. Tyndale International University 초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