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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16 00:49
(1) 입으로만 칼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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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386  

시대의 대적들을 헤쳐 나가는 칼빈주의 돼야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는 자신의 정통신앙을 과시하기 위해서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신학의 원리로서는 칼빈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명맥만 칼빈주의자로 말할 뿐이지, 역사와 사회에 책임 있는 영향을 미쳤던 칼빈주의의 정신과 신앙 을 실제적으로 알고 되새기는 경우는 매우 부족하다.

오늘의 교회는 매우 심각한 고목화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과 유럽의 동방정교회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심지어 칼빈주의 교회들마저도 생명력과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명목만 개혁신앙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하고 교만한 개혁주의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점차 회피하고 있다. 거대해서 어찌할 수 없는 공룡처럼, 아무런 변화와 반성이 없이 굳어져가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칼빈주의가 공헌했던 신앙적 유산을 간단하게 돌아보고 미래적 과제를 제시하려고 한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혀주지 못하고,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성공의 신학’에 휩싸여서 천박해지고 피상적이 되어가는 현상을 극복해가는 또 하나의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칼빈주의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을 전후로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였는데, 이는 스위스의 독립도시에서 나타난 지도자들의 헌신과 신학적 감화 때문이었다. 종교개혁은 오래 지속된 친리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었고,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간섭으로 신앙의 부활과 삶에의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16세기에 칼빈을 중심으로 체계화되고, 17세기에 발전되었으며 20세기초반까지 그 영향이 지대했던 칼빈주의에는 중요한 신학적 원리들이 있다.

첫째는 만물이 주님에게서 나오고 주님으로 말미암고 주님께로 돌아간다(롬 11:31)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로 성경을 최상의 권위로 인정, 신앙과 인생과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는 유일한 기초와 근거로 강조했다는 것이다.

셋째로 인간은 아담의 타락이후로 본질적으로 부패하였다는 성경적 인간관을 밝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강조한 것이다.

넷째는 구원을 주시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노력마저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섯째는 교회의 귄위와 성도의 자유를 완전히 인정하며, 질서를 위해서 권징을 실시하고, 목사와 성도의 대표인 장로로 당회를 구성하여 일반성도들의 참여의 자유를 존중한 것이고,

여섯째는 정부와 국가간의 관계에서 국가는 교회를 지배할 수 없고,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자주권을 행사한다고 하여, 특히 정당한 교회의 저항권을 높인 것이다.

일곱째는 성도들의 성실하고, 근면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높이 승화시킨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하여 경건에 이르는 삶을 통해서 윤리적인 생활을 권고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통해서 전인격적 구원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같은 칼빈주의의 원리들은 제네바의 교리문답서(1537, 1545),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 (1563),벨직신경(1561), 제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3-48)등의 문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시대마다 거센 도전에 직면 하여왔다.

칼빈주의가 헤쳐나간 물결들

먼저는 알미니안주의의 도전을 들 수 있다. 칼빈주의의 영향이 확대되어가고 있을 때, 칼빈주의에 대한 중요하고도 커다란 진리의 위기는 알미니우스(1560-1609)를 추종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났다. 이들은 1618-1619년에발표된 「돌트신경」 을 만들어낸 칼빈주의자들, 즉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개혁신앙의 영향력에 걸려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교적 수월하게 정돈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강조했던 것은 먼 미래로 볼 때, 위기의 첫 시작이었다. 돌트신경은 이른바 칼빈주의 5대교리라고 일컬어지는, 구원론을 확립하였다. 즉 인간의 전적인 부패, 무조건적인 선택, 불가항력적 은혜, 제한속죄, 성도의 궁극적 견인 등이다.

또한 뉴잉글랜드에서도 칼빈주의가 헤쳐나가야 할 파도가 있었다. 그것은 청교도의 변질에 관한 것이었다.
칼빈주의는 영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마틴 부서와 하인리히 불링거, 그리고 칼빈이 미친 영향으로 엘리자베드 여왕의 통치기간(1558-1603)을 전후로 해서 칼빈주의 사상이 널리 퍼졌다. 17세기에는 극심한 박해로 인해서 많은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1625년 죤 윈트롭이 청교도의 대표로 선호한 표어는 "언덕위에 빛나는 하나님 나라 도성의 건설"이었다. 영국 국가교회(성공회)에 대한 철저한 순수성을 부르짖었던 청교도들은 금욕적이고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개혁이 불탔었다.
청교도들은 세가지 조건을 근거로 지켰다. 즉 회심체험, 건전한 칼빈주의 교리의 고백, 그리고 신령한 경건생활이었다.

그러나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미국에온 초기 이민자들이 죽거나 영향력이 감퇴하자 새로운 세대는 절충주의 중도노선을 택하게 되었다. 이것은 "반언약제도(Helf-waycovenant)"라고 불리워진다. 믿지 않는 부모라도 만약 자신들의 삶이 방탕하지 않고 뉴잉글랜드 교회의 기본교리만 따른다면 그들의 자녀들도 세례를 줄 수 있다는 허락이었다. 심지어는 죤 코튼의 아들이던 메터 코튼 목사에 의해서 중생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성찬은 개방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청교도들이 채택한 국가의 제도나 체제가 그들이 영국에서 그렇게 비판하던 바로 그와 똑같은 제도와 체제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몰락은 엘리자베드 여왕의 절충주의(via media)를 닮아 타협주의로 바뀌고 말았다.

1636년에 세워진 하바드대학은 점차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한 순수한 목표를 잃어버리고, 신학적으로 변질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회중파의 유니테리안 거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1746년 통나무대학에서 승격된 뉴저지대학이 확대되어 1755년 프린스톤대학으로 청교도 신앙의 명맥을 이어오다가, 다시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반대로 1929년 웨스트민스터가 또 다시 설립해 나가게 되었다.

진리는 더 이상 뉴잉글랜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의 학설로 전락하고 말았다. 칼빈주의가 독립운동 직전까지는 희미하게 나마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에드워드의 대각성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1734-5년의 대각성운동으로 뉴잉글랜드 청교도 목사들은 심오한 신학적 깊이와 감화력 있는 설교로 큰 교육적 사명을 다해가고 있었으나, 점차 칼빈주의적 정통신학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기울이면서, 지적인 사고체계마저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성과 자유의 물결에 직면한 칼빈사상

18세기 유럽대륙에서는 독일에서 루터파의 쇠퇴로 인하여 종교개혁이 영향을 잃자, 남부에서도 이탈리아, 스위스에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가졌던 인간에 대한 낭만적이고 자율주의적인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쟝 쟈크 루소와 임마누엘 칸트 (1724-1804)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칼빈주의는 사실상 거의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일부 소수의 신앙으로 몰락하였다. 1775년부터 1785년까지 미국의 독립전쟁이 있었고, 이 때부터 청교도의 전통은 사실상 많은 빛를 잃었다. 이 시대를 주도한 인물들이 모두 크리스천은 아니었다.
칼빈주의에 도전과 시련은 20세기로 넘어오면서도 점증하였다. 칼 마르크스(1818-1883)와 레닌(1870-1924), 트로츠키(1878-1940, 스탈린(1879-1953)등에 의해서 점차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변질되어 나타났다.

부흥운동과 감정주의의 도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을 추구하는 칼빈주의자들에게 거센 민중종교와 대중종교의도전이 불어닥쳤다. 창조주대 피조물의 관계를 중요시했던 인간관은 사라지고,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라는 개념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정신보다도 우위에 서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웨슬리안 부흥운동이 가져온 피해가 컸다.

18세기 영국의 사회개혁을 낳았다는 존 웨슬리(Wesley)와 찰스 웨슬리

(CharlesWesley)가 주축이 된 부흥운동은 「값없이 받는 은혜」라는 소책자를 중심으로 칼빈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 책에는 하나님의 주권이나 택하심에 대한 언급이 없다.흔히 부흥운동이 많은 사람들을 회심시켰다는 결과만 내세우지만 부흥운동은 종종 진리의위기를 몰고왔다. 부흥운동이 몰고온 천박한 열정주의를 통해서 사람들은 쉽게 열광하였고, 칼빈주의는 이들을 외면하게 되자 점차 사회적인 주도세력으로부터 결별하게 되었다. 따라서 역사의 교훈이자 극복의 과제로 한국교회 내에서도 무분별한 부흥운동의 폐해를 주목해야만 한다.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가 뉴잉글랜드와 신대륙, 그리고 영국을 오가면서 칼빈주의의 신학에 근거한 복음을 감명 깊게 전파하였다. 휫필드는 교파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다. 그러나 웨슬레의 신학에 대해서 크게 이의를 제기하였다. 제랄드 크래그의 설명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휫필드가 보기에는 알미니안주의는 죄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모두 희석시켰다는 사실이 명백하였다. 알미니안주의는 사람들을 자신만만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선택(예정)은 사람들에게 세상적인 안전을 추구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칼빈주의가 인간의 모든 희망을 짓밟아버리고 무관심을 고조시킨다는 웨슬레의 주장은 모두 옳았는가? 그 반대인 알미니안주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생명력 있는 개념을 모두 내어버리지않았던가! 웨슬레는 자기 친구인 휫필드에게 자네의 하나님은 나의 악마야' 라고 가시 돋힌 말을 한적이 있었다"(Gerald R. Cragg, e Church and the Age Reason, New York: Penguin, 1985, P. 145).

칼빈주의는 유니테리안주의로 넘어간 뒤에, 웨슬레안 알미니안들에 의해서 세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칼빈주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행 16:30)라는 외침에 대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서만 가능하다는 답변이 있을 뿐이다.

김재성 / 합동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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