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칼빈주의 교회들의 해외선교는 놀라운 업적과 함께, 갑작스런 선교열풍으로 그 부작용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쌓이게 되었다, 선교사와 본국 교회의 상호불신, 선교지내에서 국내 선교사들끼리 영역갈등, 주도권다툼, 국내 선교경험 미숙에서 오는 시행착오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선교는 지상명령이요, 한국교회의 마땅한 사명으로 여겼다.
그러나 북한 교회재건과 통일의 과제는 진보정치인들의 주장이었지, 칼빈주의 교회의 핵심주제가 되지 못했었다. 방법도 없고, 정보도 없고,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았다. 따라서 국민적인 열망을 신앙으로 이끌어가면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데서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반면에 급진신학의 대안논의와 활발한 접촉은 괄목할 만했다(이만열,"한국기독교의 통일운동 전개과정," 신학정론14권 1호, 11쪽).
개혁신앙을 가진 한국교회들은 신학이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지나치게 좌우된 자유주의 신학과 교회의 모습을 보충해야만 한다. 강단이 정치강연이나, 이데올로기의 전유물로 농락당한 경우를 개혁해야 한다.
당당하게 사도적 신앙의 계승자로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세속문화에 오염되지 않는 기독교회의 정신을 살려나가는 일에 있다. 우리는 세상에 떡을 위해서 살지 않고, 역사적 기독교의 연속성을 지키고 살려나가는 성도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정신 차려서 지켜나갔고, 수많은 희생 속에서도 역사속에서 명맥을 이어가다가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와 싸우면서 정립하였고, 종교개혁자 칼빈과 청교도들이 재 발견하여 새롭게 역사를 변화시키고자 몸부림쳤으며, 미국의 칼빈주의자들이 전해준 평양신학교의전통을 이어받아서 면면히 살아있는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타협하지 말고, 확고히 지켜나가야 한다.
칼빈주의 신앙인들이 모범으로 바라보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지도자들과 성도들, 박해속에서도 역사에 푸른 신선함을 남기도 있는17세기 청교도들의 모습은 어떤 삶에서 영향을 입었던가? 바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의 삶이었다. 이들은 소수였지만, 로마가 감당치 못했고, 제국이 무너지는 혼란기에 마침내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는 놀라운 밀알이 되었다.
목회 방법론에 치우쳐서 신학교에서 배운것들은 모두 다 목회 현장에는 맞지 않는다는 식의 강변을 듣게 된다. 이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과연 오늘의 목회 현실이 신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정작 목회현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빈야드 운동, 신유와 치유사역, 예언과 방언의 능력 등 성도들이 원하는 남다른 체험이란 일시적 종교적, 심리적 위안에 초점이 맞춰지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개인적이고 비 윤리적이고, 공동체의 책임과 교회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가치관의 변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칼빈주의가 많은 난관들과 싸웠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칼빈주의로 부터 이 시대를 이기는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한다. 말로만의 칼빈주의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 세상이나 그 정욕은 다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들이다. 한때의 아름다움이라는 미스 선발대회와 같이 천박하고 저질스러운 것이 인간의 영화와 인기다. 유행과 인기와 평판과 명예에 휘말리지 않고, 소금과 빛이 되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살아가려는 칼빈주의의 가치관 정립이 이 시대의 대안이요,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김재성 / 합동신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