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사랑한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반대로 돈이 될만한 돌을 모아 황금으로 바꾼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돈으로 가치를 평가한다. 돈으로 사람의 계급을 나누고 행복을 측정한다. 조금 더 많은 돈, 조금 더 멋진 차, 조금 더 넓고 비싼 집, 더 고급스러운 음식과 의복. 돈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항상 ‘조금 더’ 원하고, 조금 덜 있는 상태에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라. 돈 혹은 재물 그 자체가 악하거나 더러운 것이 아니다. 솔로몬은 재물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 5:19)
문제는 사람이 돈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지 않고 하나님으로 본다는 것이다. 돈을 잘 사용하기보다 돈의 지배를 받는다(돈이 사람을 사용한다). 어떤 사람은 현실적으로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부에 대한 만족은 상대적이다. 오늘날 대부분은 수백 년 전 평민에 비하면 임금님처럼 먹고 마신다.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옷이 한두 벌이 아니라 넘친다. 취미생활을 위한 용돈은 과거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대부분 자동차가 있다(자동차가 부의 상징일 때가 있었다). TV,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은 기본이고 아이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이 있다. 누구나 학교에 갈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라고 말하지만(딤전 6:8), 우리는 그 기준을 훨씬 웃돌아 정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넘치도록 가지고 누리고 있으면서도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만족시키고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찬양을 부르게 하시지만, 돈은 결코 우리 영혼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내 평생에 불만족과 탐욕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라는 탄식을 내게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삶의 악순환을 일으킨다. 의복과 음식을 추구하느라 목숨을 뒷전으로 여기게 한다(마 6:25).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이들은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지만, 돈을 주인으로 모신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걸고 종처럼 일한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지만 정작 자녀와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려 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훈계와 돌봄의 기회를 비용으로 지불한다. 많은 돈을 벌어 나중에 잘 먹고 잘살기 원하지만, 현재는 못 먹고 못 자고 베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산다. 종종 발표하는 행복지수를 보라. 돈과 상관이 없다. 인생의 참된 복이 돈에 있지 않음에도, 그것을 알고 인정하면서도, 돈에 매여 살고 돈을 위해 살고 돈을 좇아 사는 삶, 그것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악한 세대의 삶의 특징이다.
교회는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성경은 돈을 문제 삼지 않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은 큰 문제로 삼는다.
먼저, 재물은 하나님 말씀의 씨앗이 영혼에 심겼을 때 뿌리 내려 결실을 맺지 못하게 막는 가시떨기와 같다. 말씀을 들었지만, 재물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한다(눅 8:14).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막 4:19)
실제로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예수님의 말씀 “와서 나를 따르라”에 순종하지 못했다.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다(막 10:2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막 10:23). 부자 청년은 땅에 있는 자기 재물 때문에 하늘에 있는 보화를 거절했다.
세상에서 얼마나 재물을 쌓고 누리든지 간에 이 땅에서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재물과 부요를 움켜쥐려고 그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내버리는 것은 얼마나 무지하고 무례한 일인가? 하지만 돈을 사랑하면 그렇게 판단이 흐려지고 눈이 멀어버린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을 돈이 가로막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뿌리가 되어 일만 악을 맺는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영광의 주님을 팔아버렸다(마 26:15). 요셉의 형들은 시기와 질투로 동생을 팔았다(창 37:28). 인기와 명예를 위해 돈을 주고 성령의 은사를 사려 했던 시몬(행 8:18), 돈때문에 가족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이스라엘 민족을 패배하게 만든 아간(수 7:1),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높임 받기 위해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1-11) 등 성경엔 돈이 연루된 범죄의 기록이 많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돈 때문에 믿는 자들이 믿음에서 떠난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시험에 빠진다. 여러 올무에 걸려 넘어진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에 사로잡히는 데 결코 유익하거나 현명한 욕심이 아니다. 그 욕심을 좇다 보면 결국 파멸과 멸망에 치닫게 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눅 16:13).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 제자는 그러므로 재물을 하나님과 함께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이 그가 가진 모든 재물의 주인이시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위해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상 재물이 그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에서 돌아서는 법
먼저, 당신이 주인으로 삼은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라. 당신의 머리는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돈인가? 당신이 믿고 따르는 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그분이 주신 선물인 재물인가? 시간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계산해보면 당신이 섬기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해진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 재물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일에 투자하는가? 절대적인 시간을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일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일할 때도 돈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목적으로 일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일과 하나님과 성도를 섬기는 일에 거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보일 것이다. 돈을 위해서는 변함없이 신실하게 시간을 투자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시간 투자를 아까워하니 말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라고 말씀하셨다(눅 12:21).
당신이 주님을 돈보다 더 사랑한다는 증거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성도를 사랑하고 주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일에 돈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혹시 재물이 당신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는 데 올무나 시험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께서 당신에게 선물로 주신 재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결산할 날이 올 것이다(마 25:19).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돈을 사랑하고 섬기는 악한 세대에서 돌아설 수 있을까? 답은 매우 단순하다.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된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한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섬기기 위해 다른 것을 사용한다. 하나님과 재물 중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섬기면 재물은 제 위치를 찾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중히 여기는 자는 재물을 미워하고 경히 여긴다(마 6:24).
우리가 이 악한 세대에서 돌아서서 돈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복음의 값을 제대로 매길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 안에 영원히 거하는 영생의 가치가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재물을 배설물처럼 가치 없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악한 세대의 눈에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발체: The Master's Seminary, G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