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의 여성 사역의 문제에 대한 한 고찰:
(디모데전서 2:9-15에 대한 성경 신학적 논의1)
교회에서의 여성 사역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간단한 논의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필자 자신은 “여성 사역”이라는 말을 좀 더 폭 넓게 생각해야 하고 그런 폭 넓은 의미의 여성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폭 넓은 의미에서는 교회 안에서 여성은 처음부터 중요하게 사역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한 여성의 사역들은 남성의 사역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삶과 성장의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다. 2) 그러나 일단 이 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때 생각하는 의도인 여성이 교회의 목사와 장로로서의 사역을 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I.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된 출발점
먼저 우리는 오늘날 논란이 되는 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우리 각자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든 지를 차치(且置)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해야만 하는 부분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본질을 흐리게 하지 않는 건전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논의해 가는 과정 가운데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논의와 심지어 감정적인 의견 표명과 의견의 대립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으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논의에서는 먼저 다음 몇 가지 점들을 분명히 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논의가 진정 그리스도교적인 논의이려면 우리 모두가 함께 동의하고 출발해야 할 점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이라고 여겨진다.
1.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빛에서 볼 때 남자와 여자는 그 신분과 지위에 있어서 동등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에 있어서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후의 논의에서 이 점을 가지고 서로를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성 사역을 찬성하는 이들이 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대해서 그렇게 보는 것은 여성을 평등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논의해서는 안 된다.)
창조와 구속의 빛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 타락의 영향 하에서 서로가 투쟁하며 결과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으나(창 3:16), 그것은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기보다는 죄악의 결과요 죄에 대한 형벌의 한 부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상호 지배적이려고 하는 상황은 하나님께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주신 관계의 상황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후의 논쟁에서 어떤 입장을 지니든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논의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여자가 어떤 점에서 부족한 점이 있어서 여성의 교회에서의 사역이 있을 수 없다는 식의 논의가 전개되어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방향에서든지 인격적 가치와 역할을 동일시하려고 해서는 안 되다. 그리하려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이다.
신분과 지위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고 단지 그 은사와 기능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점은 구속에서 더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속이 창조에서 주어진 역할 관계를 무효화시키는 것과 같이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구속은 타락으로 인한 문제를 제거하고 창조 때의 관계성에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창조와 구속의 빛에서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논의의 전제의 하나이다.
또한 창조와 구속의 빛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의도는 남자와 여자가 각기 그들의 특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것이다. 돕는 배필의 의미가 “그에게 상응하는 돕는 자”임을 생각할 때 이 점은 매우 자명하다. 그래서 바울은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전 11:11)라고 말하고 있다. 이점은 성경적 상보주의자들(biblical complementarians)과 성경적 평등주의자들(biblical egalitarians)이 모두 동의하는 점이다.
2. 교회에서의 사역자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로서의 역할이 아니다.
신약 교회의 직임은 구약 교회의 직임과 직접적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직임들이 아니다. 구약의 직임들은 오실 메시아의 사역을 바라보게 하는 모형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으나 신약의 직임들은 구약의 직임과 직접적 연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온전한 선지자, 제사장, 왕직의 대리 직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회나 성공회 등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을 대리하는 직임에 근거하여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은 이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논의를 하는 것이다. 즉, 교회의 어떤 직분자들이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것인데, 그리스도가 남성이었으므로 교회의 사역자는 남성이어야만 한다는 식의 논의는 선결 문제 오류를 지닌 잘못된 논의가 된다. 왜냐하면 신약 교회의 직임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직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 교회의 직임은 그리스도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논의해야 한다.
3. 신약의 선지자들이 있는 상황은 과도기적인 현상이었지, 선지자가 교회 안에 항상 있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신약의 선지자들 가운데서는 남자 선지자들과 함께 여선지자들이 있었다(행 21:9; 고전 11:5(?)) 그러나 그런 직분이 신약 교회에 지속적으로 있게 하지 않으신 것이다. 새로운 계시가 교회 안에 지속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약 초기에 여자 선지자들이 있었으므로 우리 시대에도 말씀을 가르치는 여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논의는 게시사의 과정을 잘 생각하지 않는 논의인 것이다.
4.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순전히 성경이 항상 있을 교회의 모습을 향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어져야 한다.
신약 성경이 교회 안에서의 사역에 대해서 빛을 비춰 주는 것이 우리의 최종적 판단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우리의 문화 현실이나 우리의 현실에 대한 요구로부터 도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현실이 이 문제를 판단하는 준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서, 교회 안에서 남자들과 똑 같이 교육받은 여성들이 차별 받고 있다는 현실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이끌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 문화의 요구가 이 문제를 판단하는 준거가 되어서도 안 된다. 1세기 교회의 문화적 정황이 우리의 교회의 원칙을 규제하도록 해서도 안 되고, 그와 반대로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이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에는 여성들의 참여가 사회 전반에 일반화되어졌으므로, 또한 교회 안에서는 여성이 더 많으므로 당연히 여성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직임을 감당하여야 한다는 식의 오늘의 문화와 현실에 근거한 논의가 우리의 사유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신약 성경이 신약 교회의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이 우리의 최종적 판단 근거가 되어야 한다(sola scriptura!).
5. 현실적의 배려의 문제
그렇기에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는 꼭 같이 교육받은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전도사님이나 교육부서 등에서 사역할 때 경제적 처분(예, 사례)에서나 존경받음에 있어서 남성들과 차별 받지 아니하도록 하는 모든 외적인 준비가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는 것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해야 하고, 더 나아아가서 실제적으로 이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 함께 노력해 가야 한다.
6. 성경에 대한 순종의 문제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성경의 규범적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다 순종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복종해야 한다.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 하지 않는 것은 비성경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혹시 성경을 존중하면서 서로 달리 해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가 성경을 존중하는 태도를 확인 할 수 있으면 그것을 인정하면서 서로 존중히 여기면서, 성경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에 대해서는 토론하며 함께 하나님의 바른 뜻이 어떤 것인지를 추구하여 가야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서로 인신 비방하거나 서로를 이단시하는 태도로 발전되어 가서는 안 된다. 물론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하려고 하면서 그 성경의 가장 바른 뜻이 어떤 것인지를 함께 찾아가는 동료 해석자들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강조하자면, 우리의 모든 판단의 최종적 근거는 성경의 가르침이어야만 한다.
이승구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