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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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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6 00:37
더 없이 영광스러운 복음과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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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460  

기독교는 복음 설교자를 존귀히 여깁니다. 특별히 청교도들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목사직을 존귀히 여기고 설교를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로 여긴 이유는, 설교자가 복음을 말하고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복음을 말하는 설교자가 존귀하고 영광스럽습니까?

첫째, 그가 전하는 복음이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복음을 말할 때, '영광'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도 복음 자체의 영광스러움 때문입니다.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 1:11)",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고후 4:4)",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후 3:9)."

이 복음의 영광이 그것을 말하는 설교자를 영광스럽게 만듭니다. 세상의 학자는 그의 풍부한 지식과 현란한 언변으로 자신을 돋보여 내지만, 복음 설교자는 그가 전하는 복음으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바울이 자신이 복음을 가진 것을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 것"이라 한 것은(고후 4:7), 복음으로 인해 존귀해 지는 인간의 가치 전도(顚倒)를 의미했습니다. 바울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터에게 있어서도 그의 신학의 핵심이 십자가 복음의 영광이었습니다.

칼빈 역시 복음을 말하는 설교자들의 입을 하나님의 입과 동일시할 정도로 설교자들의 영광을 칭송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마 4:4)"을 "설교자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해석하며, 설교자를 하나님의 대언자로 높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설교자는 그가 쏟아내는 탁월한 성경 지식이나, 화려한 언변 때문에 영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흔히 상상하는 탁월한 대설교자가 못 돼도, 그의 말이 어눌하고 유창하지 못해도, 그의 입에 올려 진 복음이 설교자를 영광스럽게 만듭니다.

설교자가 이 복음의 영광스러움을 알게 되면, 그는 오직 복음을 말하는 것 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게 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는 말하지 않기로 작정했던 것도(고전 2:2) 이 복음의 영광을 알고 난 이후부터입니다.

오늘 일부 설교자들이 복음에 올인 하지 않고, 청중들 앞에 현세 구복의 현시자(顯示者)자로 자처하고, 혹은 비전 선포자로, 혹은 윤리 강론자로 자처하는 것은, 복음의 영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영광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 1:17)."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가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이 복음의 의(義)에 특별히 주목한 이들이 아브라함, 하박국, 바울, 루터 같은 분들인데, 이들은 오직 복음에서 의(義)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서, 설교자와 청중들에게 의(義)의 영광을 입히고 경험 시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의(義)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입니다. 이는 복음의 의가 율법을 성취하여(하나님 진노를 풀어드리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간접적인 대면인, 하나님 영광을 목도하는 것만을 허락받았습니다(출 16:10; 대상 7:3; 롬 5:2). 여기에는 모세 같은 위대한 영웅도 예외가 없었으며, 그 역시 오직 하나님의 등만 보도록 허락받았습니다(출 33:23).

복음 설교자의 영광이 바로, 복음의 의(義)에 따르는 하나님의 현현(임재)이며, 이는 실로 복음 설교에 따르는 가장 놀라운 축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피가 뿌려지는 곳에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구약의 '피뿌리는 예'를 통해 이미 계시됐습니다.

송아지 피(그리스도의 피를 예표 함)가 뿌려진 지성소 속죄단과 백성들에게(출 24:6-8)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은, 복음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회중들에게 복음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뿌리지 않는 것과 같으며, 그런 곳에서는 당연히 하나님의 임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강단에서 복음을 말하지 않는 목사가 초라해 보이는 이유도, 복음의 의(義)에 따르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의 영광이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인데, 임재의 원천인 복음이 말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배당에 수천 수만의 사람이 운집해도,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다만 사람들의 훈기(薰氣)만 있을 뿐,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설교자는 자신만 초라할 뿐더러, 그의 설교를 듣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까지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설교자 앞에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면류관이 되질 못하고, 오히려 부끄러움과 심판거리가 될 뿐입니다.

사무엘 시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에 빼앗긴 후, 비느하스의 아내가 낳은 아들 이름을,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의, "이가봇(Ichabod)"으로 명명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다'는 뜻이었습니다(삼상 4:21-22).

화려한 꽃도 없고, 재목감도 못되는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를 돋보여 낼 건덕지는 그 어디에도 없는 그저 불에 태워질 화목(火木)일 뿐입니다(겔 15:2-6). 세상의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의(고전 1:25-29) 모임인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까지 없다면 그의 존재 의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는 얼마 전 수만 명의 교인들을 목회하고 수십 군데의 지교회를 운영하는, 이름만 대면 다 알만 한 대형교회 목사가 주일 낮 설교에서 시종 한 시간 이상을 담배의 해독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을 듣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그 목사에 대한 연민은 물론, 그 설교를 듣고 있는 그 교회 성도들과, 방송을 통해 설교를 청취할 전국의 수많은 지교회 성도들의 영혼이 참으로 불쌍하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복음이 영광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복음에 따르는 성령의 증거 때문입니다. 나는 TV나 방송매체를 통해, 저명한 교수나 강연자들의 명 강의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실력에 탄복을 하며, "나도 저런 식견과 언변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부러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안위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는 그들이 아무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훌륭하고 강연자라도, 그들에게는 기껏 인간의 영감만 있을 뿐, 보리떡 같은 내 설교에 따르는 성령의 증거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성령이 증거 해 주는 말은 복음밖에 없으며, 그런 점에서 복음을 말하는 설교자는 더 없이 영광스럽습니다. 복음에 성령이 증거해 주신다는 언약은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바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이 예수님의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은 강림하셨고, 이후 제자들의 복음 전도는 이전과는 달리 권세가 있었습니다. 성령이 그들이 전하는 복음에 증거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 강림 때 제자들의 입에 방언이 임한 것도, 복음을 전하는 입술에 성령이 증거해 주신다는 예표였습니다.

칼빈이 교황의 권위를 필적할 만한 것은 오직 복음을 말하는 설교자뿐이라고 한 것은, 복음에 따르는 성령의 증거 능력이 어떠하다는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구원에의 부르심의 방편이 되는 것도(살후 2:14), 복음에 따르는 성령의 증거 능력 때문입니다. 복음에 따르는 성령의 증거가, 복음을 듣는 자에게 믿음이 생겨나게 하고(롬 10:17), 죄로 죽은 영혼을 거듭나게 합니다(벧전 1:23).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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