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급성장과 부실한 신학교육제도는 자연히 자질이 부족한 목사와 장로의 양산을 초래하였다. 흔히 목사의 저질화를 많이 비판하지만 장로의 저질화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장로는 고매한 신앙 인격을 소유하여 교회와 사회의 존경을 받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런장로들이 소수로 전락하였다. 교회의 양적 급성장으로 인해 갑자기 많은 장로들이 필요하였고 따라서 선출 절차나 교육 절차가 형식화되고 자질에 대한 기준도 격하되었다. 이것이 불가피한 현실이기는 하였으나 그 결과 한국교회는 심각한 혼란과 갈등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목사와 장로의 갈등으로 침체 혹은 감소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책임은 양자에게 공히 있지만 목사의 협력자로 부름받은 장로가 목사의 대립자가 되면서 교회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지도자들의 갈등 상황에서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 교인들은 무고한 피해자가 된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도 아니며 모든 장로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이것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된 데에는 성경적 원리보다 세속적 원리가 장로의 선택과정과 자기 이해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이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야 교회라는 수레의 두 바퀴인 목사와 장로가 나란히 한 마음이 되어 성령의 이끄심이 원활하고 힘차게 효력을 발생하게 될 것이다.
영수제도의 기원
선교사들이 초기 선교 과정에서 교회사에 나타나지 않는 영수라는 제도를 수용하였다. 영수는 지교회의 대표격이었으며 사실상 장로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영수들이 '안수받지 않은 장로'로서 장로들과 갈등을 빚게 되면서 이 제도가 폐지되고 영수들이 대부분 장로가 되었다. 그러나 영수라는 호칭은 교단에 따라 20세기 후반까지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그보다 더 심각한 영향은 영수 제도가 한국 장로 이해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수(領袖)란 '우두머리'라는 뜻으로서 다분히 세속적인 사고를 함축하고 있는 용어이다. 물론 모든 영수가 이러한 자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한말의유교적 사회 상황에서 이러한 직명의 채택이 자타에게 미친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조 말의 한국 상황은 기존의 사회 제도가 여러모로 붕괴되고 새로운 사회계층이 발생하였지만 사고 방식은 여전히 유교적이며 계급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들어와 전국적인 조직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영수가 지역 교회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수들이 장로가 되면서 자연히 영수의 개념은 장로에게 전이되어 새로운 종교 계급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성경은 장로에게 존경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계급적 혹은 신분적 고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유교적 사고 방식과 사회 구조는 장로를 계급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상당수의 장로들 자신도 그러한 사회적 구조에 적응하여 고자세를 취하는 병폐를 초래하였다.
유교의 신분주의
기독교는 인간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인의 평등을 가르치지만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인생관에 따라 정치적 입신양명을 추구한다. 그 결과, 한국인에게는 신분이 중요하며 직함이 그 사람을 규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묘비에도 직함을 쓴다. 심지어 벼슬을 못한 사람은 늙어도 계속 과거를 치르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학생'(學生)이라고 쓴다. 그리고 종들은 묘비도 없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한국인들은 이러한 전통적 사고 방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 단적인 예가 호칭에서 나타난다. 한번 장로가 되면 이름과 '장로'라는 직함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되며 심지어 시무를 중지한다든지 교회 밖에서도 장로가 호칭이 된다. 직분이 영원한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장로교회의 모체가 된 개혁교회가 인격과 직분을 구별하여 직분자의존경과 인정이 그의 인격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역 때문이라고 보는 교회 정치적 원리나 거기에 근거하여 직분자의 임기제를 시행하는데 거부감을 가진다.
사도행전 15장 23절이 보여주는 대로, 목사나 장로도 모두 한 형제일 뿐이다. 그러나, 상하구별과 신분주의가 깊이 뿌리 박힌 한국사회에서 장로직이겸손히 수용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다른 직분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유례가 없는 직분 과잉 현상을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교회에는 교회가 커도 장로 몇 명, 집사 몇 명이 있을 뿐이지만 한국교회는 전교인의 과반수에게 직분을 남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직분과 신분을 혼동하는 상황에서 장로야말로 평신도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신분으로 생각하여 장로가 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한번 장로가 되면 영원히 그 신분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유교적 신분주의 사고는 자연히 섬기려는 겸손한 자세보다는 지배하고 주
장하려는 자만한 태도를 가지도록 만든다.
자본주의의 영향
현대 한국사회는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교회도 예외가아니다. 성경이 장로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디모데전서 3장 1-7절에 기록된 감독의 자격을 차용하여 사용하는데, 거기에는 경제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경제적 능력이 그 사람의 능력 지표로 인정되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장로에게 경제적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장로가 되는 것이 아니며 다른 요건들도 고려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교회가 지나치리 만큼 거대한 예산을 집행하며 모두 교인의 헌금에 의존해야 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능력은 불가피한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대개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 장로로 선출되며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한 장로는 특히 예산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소외당하거나 스스로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은 자연히 교회를 회사와 같이 생각하고 장로는 대주주와 같은 책임과 권리를 행사하게 되며 무의식적으로 교회에 대한 '소유의식'을 가지게 만든다. 따라서, 교회 재정을 사용하는데 간섭하고 조종하게 된다.
성경적으로, 헌금은 본래 집사가 관장하도록 되어 있다. 초대교회의 헌금은 사랑을 실천하는 구제헌금이었으며 그 분배를 위해 집사제도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이런 집사의 재정관리와 분배는 교회사적으로 주된 전통이 되어 왔으며 지금도 많은 서구교회들이 재정관리를 철저히 전문 집사들에게 맡기고 목사나 장로는 이에 개입하지 않는다.
헌법에서 규정한 장로의 직무 어디에도 재정관리가 들어있지 않다. 단지 감리교 헌법에서만 '장로는 교회의 재정 유지에 힘쓴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재정관리나 집행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물론 현대와 같이 교회의 재정이 복잡하고 비대해진 상황에서 장로가 재정에 무관심해서는 안되지만, 장로가 지나치게 교회재정에 민감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자본주의적 영향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젊은 장로의 출현
현대사회가 경제 중심적 사회로 전환되면서 어른을 존경하던 과거의 전통이점차 사라지게 되었으며 교회의 지도력도 노년층에서 장년층 혹은 중년층으로 낮아졌다. 이런 경제중심적 사고가 젊은 장로들의 출현을 부추긴 것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이 산업화되고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장로의 년령이 낮아지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장로들은 연세가 많은 분들이었으나, 오늘날은 년령기준이 30세까지 낮아지게 되었다. 물론 30대나 40대의 장로들이 활력적이고 적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나 젊은 장로들의 출현은 성경적 원리보다 세속 정신의 유입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되며 따라서 많은 문제들이 교회 안에 발생하게 되었다.
본래 장로란 구약의 '자켄'이든 신약의 '프레스뷔테로스'이든 모두 백발의 '노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젊은 장로'란 말 자체가 자체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말로 성립될 수 없다.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변화를 고려한다 할지라도 30대의 장로란 성경적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젊은 장로의 출현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생시켰다.
첫째, 사회가 경제적 생활력을 중심으로 노인을 무시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세속적 풍조를 교회 안으로 끌어드리고 정당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교회에서 노년층은 소외당하고 정상적으로 장로직을 감당할 수 있는 노년에 도달한 장로는 은연중 퇴출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둘째, 젊은 장로의 출현은 동년배 혹은 년상의 집사들을 실망시켜 교회 봉사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계급적 신분주의가 강한사회에서 50대 집사에게 30대 장로는 부담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존재일 수 있다.
더욱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 장로들의 미숙성이다. 성경에서 노인을장로로 임명한 것은 백발의 노인이 가지는 오랜 경륜에서 오는 심오한 지혜와 온유한 덕성과 원숙한 신앙 때문일 것이다. 젊은 장로에게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활력과 열심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지혜가 부족하고 혈기가 많으며 신앙이 미숙하다. 따라서 교인들을 덕스럽게 지도하고 돌볼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장로의 주요한 직무는 교인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이다. '치리한다'든가 '감독한다'든가, 또는 '다스린다'는 표현이 세속적 사고에서는 '지배한다' 혹은 심지어 '군림한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그 성경적 의미는 오히려 '형편을 살핀다' '관심을 가진다' '돌보아 준다' 또는 '사랑으로 이끌어준다'는 뜻이다.
장로는 목사가 교인들을 다 돌볼 수 없기 때문에 목사를 도와 교인들을 심방하고 관심을 베풀며 대화하고 도와주는 봉사자들인 것이다. 그런 일을 하려면 교인들보다 덕성이나 신앙에서 원숙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젊은 장로의관심은 년령의 성격상 교인들을 돌보는 자상한 일보다 사업과 조직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며, 따라서 장로 본연의 직무보다 교회 업무와 회의에 치중하게된다. 더욱이, 젊은 장로는 아직 혈기가 강하고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단순한 열심으로 목사나 다른 장로와 충돌하거나 과격하게 행동할 위험을 상대적
으로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영광스러운 장로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히 실현되기 위하여 그의 몸된 교회는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힘차게 발전해야 하는데 장로는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중심적인 직분이다. 따라서, 요한이 환상 중에 하늘에 갔을 때 하나님 보좌 주위에 24장로의 보좌가 있음을 보았다: "또 보좌에 둘러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4:4).
올바른 장로는 성도의 이상이며 교회의 기둥으로서 영광이 약속되어 있다. 장로는 세속적인 지배자나 권력자와 달리 목사를 도와 덕과 사랑으로 교인들을감화시키고 교회의 화평을 도모하며 형제들을 돌보고 세워나가는 교회의 겸손하고 온유한 봉사자들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고난과 수고를 자취하는충성스럽고 헌신된 어른들이다. 따라서 성경과 교회사가 증거하는 대로 올바른 장로의 몰락은 교회의 몰락을 결과하며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덕스러운 장로의 존재는 교회의 평화와 성장을 가져온다.
실로 장로가 그토록 교회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장로의 순종 여부에 따라 교회의 발전이 좌우된다. 예수님 당시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될 장로들이 소위 '장로들의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중시하여 그를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섰다. 장로들은 세속적 직업과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속적 상식과 인간적 전통을 더 중시하기 쉽다. 이를 극복하고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장로의 길이다.
장로의 세속화는 교회의 세속화를 반영한다. 따라서 여기 지적된 장로의 문제는 대부분 목사나 다른 직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어는상황에서나 교회는 세속화의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세속적 영향을 막아내지못하면 교회가 부패하고 퇴보하게 된다. 물론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창조적으로 적응하며 발전해야 되지만 세속 정신에 복속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항상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 자신을 세속적 영향에서 돌이키고 말씀대로 개혁해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Dr. 이정석 목사:
총신대학교에서 손봉호 교수의 지도아래 기독교철학을 전공 (B.A.)하였고, 79년 미국에 유학하여 칼빈신학교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M.Div.과정을 마치고 이어 Cornelius Plantinga교수의 지도아래 조직신학을 전공(Th.M.)한 후, 88년 귀국하여 총신대 등에서 강의하며 서울 둔촌동 초대교회를 담임 목회하였다. 그 후, 네델란드에 유학하여 Aadrianus van Egmond교수의 지도 아래 교의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95년 귀국하여 개혁 신학교에서 조교수,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 한국개혁신학회 신학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미국 플러신학대에서 조직신학 강의 및 한인 목회학 박사원 부원장으로 논문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