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에비온주의 이단
영지주의와 마르시온주의가 영적인 것에 치중하는 헬라적인 이단이라면 에비온주(Ebionism)의는 육적인 것에 치중하는 유대교적 이단이었다. 이미 사도행전에 헬라파와 유대파의 갈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에비온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이 되려면 먼저 유대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헬라파 기독교인들을 비판했다.
어쨌든 예수는 기독교의 창시자이기 이전에 유대교인이었고 그분 스스로도 말씀하셨듯이 율법을 없애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유대교인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이 원래부터 하나님이 아니고 단지 위대한 선지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에비온파 중에는 동정녀 탄생을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면 이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았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이들은 예수님이 너무나 완벽하게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그를 중간에(세례를 받을 때) 메시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에비온주의자들은 예수를 율법의 완성자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싫어한 사람은 믿음을 강조한 바울이었고 이들이 애용했던 성경은 가장 유대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마태복음이었다.
4. 몬타누스주의 이단
2세기 말 소아시아를 거점으로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까지 번져간 과격한 성령운동 및 예언운동이 있었는데 그것이 몬타누스주의이다. 몬타누스(Montanus, 135-177 AD)는 소아시아 프리지아 출신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성령이 자기를 통해 직접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이제부터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였다.
보통 과격한 성령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재림에 심취하게 되고 예수님이 재림할 날짜를 계산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데 몬타누스도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새 예루살렘이 내려 올 테니 짐 싸들고 프리기아의 페푸자라는 동네로 가자고 예언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예언에 따라 그곳으로 이사했고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는 자세로 철저한 금욕주의를 따랐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환멸을 느꼈지만 몬타누스의 열광적인 성령운동은 그곳에서 사라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번져나갔다.
5. 이단들에 대한 정통 교회의 대응
위에서 살펴본 여러 초대교회 이단 사상들에 대응하기 위해 교회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 대표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택했다.
(1) 교회는 사도적 전통에 따른 신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진리를 이단으로부터 파수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발견했다.
진리는 어느 한 사도에게 비밀리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도 전체에게 공개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에게만 전해진 비밀 계시를 주장하고, 마르시온주의자들은 바울만을 고집하고, 에비온주의자들은 유대 전통만을 강조하고,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성령의 직접 계시만을 믿었다. 그러나 정통 교회는 진리는 그런 식으로 어느 한 사도에게 혹은 한 무리에게 비밀리에 전해진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성경을 통해 공개적으로 전해졌다고 선포했다.
(2) 교회는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 기독교의 정경을 확정했다.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확정한 마르시온의 영향으로 정통 교회는 성경의 정경화(canonization) 작업을 서두르게 되었고 그 결과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기독교의 정경으로 확인하고 오늘의 신구약 성경을 정통 교회의 정경으로 주후 397년 확정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성령의 역사였다고 우리는 믿는다.
(3) 정통 교회는 신조와 신경을 작성하여 복음을 왜곡하고 진리를 대적하는 이단들에 대항했다.
현재 사용하는 형태의 사도신경은 6세기경에 확정 됐지만 그 중심 뼈대는 그보다 훨씬 전에 확정되었다. 예를 들어 4세기에 로마 교회에서는 ‘Roman Symbol’로 알려진 신경(信經)을 사용하였는데 두세 구절을 제외한 전체가 이미 2세기의 이래나우스(Irenaeus)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신앙고백을 담은 신경(信經)을 처음에는 ‘creed’라는 단어 대신 ‘symbol’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symbol’은 원래 군대에서 사용하는 암호를 뜻하는 단어였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하기 위해 암호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단인지 정통 교회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신경을 군대의 암호처럼 암송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6.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
현재 우리 주변에 활동하는 이단들은 옷만 바꿔 입었을 뿐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실 모든 이단적 요소들은 이미 교회 안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현대에서도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가 위에서 본 4가지 이단적 요소들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음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영지주의자들같이 ‘알아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르시온주의자들같이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에비온주의자들같이 ‘똑바로 살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몬타누스주의자들같이 ‘성령 체험’을 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체계 있게 균형을 잃지 않고 전체적으로 알고 믿지 않으면 신앙이 어느 한 쪽으로만 지나치게 기울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단은 아니더라도 분명 균형을 잃은 신앙이 되기가 쉽다.
신구약 성경 전체는 그 내용과 양에 있어 방대하고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한 눈에 파악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평신도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인 길은 무엇인가? 교회가 신조와 교리교육을 강화하고 성경대로의 교리적인 설교를 하도록 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마 5:13) 교회와 성도가 되도록 온 힘을 기우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