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마케팅 원리를 수용해서 전달할 수 있는 복음은 가짜 복음입니다
아무리 놀랄 만한 마케팅 원리를 동원해도, 죄와 하나님의 진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칭의, 성화의 삶과 최후의 심판 등의 진리를
왜곡하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게 포장할 수 없습니다
실용주의적 마케팅 원리가 교회에 적용됨으로써 파생된 결과는 크게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왜곡, 예배에 대한 왜곡, 말씀 선포와 교육에 대한 왜곡, 회심관에 대한 왜곡, 하나님의 복과 인정에 대한 왜곡입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왜곡
실용주의적인 마케팅 원리가 교회에 들어와 하나님 없어도 된다는 인식, 곧 현대판 이신론을 만들었습니다. 이신론이란 하나님의 존재만 인정할 뿐,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론입니다.
즉, 교회가 실용주의적인 마케팅 원리를 수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람의 구원과 회심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효과적인 전도 방법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입니다. 교회가 실용주의적 마케팅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후 사람들에게 세상을 맡겼듯이, 구원도 그 길만 하나님이 마련하셨을 뿐 이후의 것은 사람의 수완에 맡겨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무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가 복음을 잘 팔 수 있도록 옆에서 보조 역할이나 하는 존재도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진리 왜곡입니다.
이러한 왜곡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조장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까지 양산합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의 왜곡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용주의적 신앙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실용주의적인 마케팅 원리가 교회를 움직이면서, 전능한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과 절대적인 신뢰는 답답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인간 손에 맡겨 두고 일절 간섭하지 않는 하나님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하나님에게 누가 절대적인 의존과 신뢰를 바치겠습니까?
2. 예배에 대한 왜곡
두 번째 결과는, 예배에 대한 왜곡입니다. 문화 행사와 예배 사이의 경계가 점점 더 흐려지고 있습니다. 실용주의적 마케팅 원리가 예배를 엔터테인먼트로 바꾸고 있습니다.
온갖 문화 프로그램을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인 예배에까지 끌어들이고, 부담 없는 예배를 표방하며 예배를 오락화 하는 일까지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강대상의 주요 게스트가 되고, 예배 시간 대부분이 다양한 공연으로 채워지는 일들을 이제는 아무도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배를 즐기는 태도가 점점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구도자 중심적인 예배’ 개념을 교회에 도입하면서, 예배의 목적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는 것보다, 참석자들의 욕구 충족과 즐거움을 더 우선시합니다.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 방식대로 성전에 나와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그리고 급기야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케팅 원리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처럼 조작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저 종교적 유흥에 불과한 자리를 만들고 있기에 하나님을 모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예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는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해서,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일차적으로 우리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시간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와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 결과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예배다운 예배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진지하고 경건한 예배, 하나님께 집중된 예배, 우리가 만든 분위기가 아니라 주의 성령이 우리를 이끄심으로 생겨난 감동이 있는 예배를 찾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산만하고, 시끄럽고, 조작과 선동이 난무하는 예배가 점점 흔해집니다.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는 모습을 답답하고 칙칙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다음 세대에 대해 걱정하게 만듭니다. 지금도 젊은 세대는 마케팅 원리에 따르지 않는 교회를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공연과 결합한 형식의 예배를 세련된 예배라고 생각하며 동경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몇 십 년 후, 하나님께 집중하는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예배가 오히려 독선에 치우친 이상한 예배가 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