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포하는 말씀에 대한 왜곡 (대중의 기호 중심)
교회 안에서 제시하는 가르침과 설교 메시지의 왜곡입니다. 소비자 만족을 최우선시하는 실용주의적 마케팅 원리를 따르려면,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은 부각하고, 소비자가 싫어하는 것은 기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당에 와 있는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주로 선포하는 설교 주제나 사람들이 서점가에서 주목하는 기독교 서적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죄와 심판이나 복잡하고 지루한 교리들을 다룬 것은 여간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디를 보나 예수 믿고 잘 되는 것, 복과 치유, 우리 삶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의 제시 등에만 열을 올릴 뿐,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회개의 필요성을 선포하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 출판사 여덟 곳에서 출판된 도서의 87.8퍼센트가 자기 계발과 성공, 대인 관계 기술과 자존감 향상 등 현대인이 선호하는 충족적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동향은 우리나라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단 미국에서 대중성을 획득한 아이템이면,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하지 않고 수입 먼저 하고 보는 형편입니다. 그 결과 실용주의적 마케팅 원리가 교회 속에도 깊이 침투했습니다.
그러나 마케팅 원리를 따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말하는 교회가 과연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을까요? 죄에 대한 선포 없이, 회개에 대한 언급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결코 불가능합니다.
마케팅 원리로 파악한 인간의 필요와 하나님이 파악하고 있는 인간의 필요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의 복음을 듣고 스스로 순종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음을 제시하는 동시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나 실용주의 관점은, 인간은 타락해서 성령 하나님의 개입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없이는, 그 누구도 복음을 바르게 깨닫고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의 견해를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효과적인 방법과 뛰어난 수완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팔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심리 치료법, 잘 생활할 수 있는 테크닉, 자신의 자아에 몰입하게 하는 가짜 복음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복음은 효과적인 마케팅을 진행한다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장을 보십시오. 바울은 단호한 어조로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그 참혹한 죽음을 야기한 우리의 죄, 이것이 수완 좋게 전달한다고 해서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이 복음을 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 떠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특성입니다.
실용적인 마케팅 원리를 수용해서 전달할 수 있는 복음은 가짜 복음입니다. 아무리 놀랄 만한 마케팅 원리를 동원해도, 죄와 하나님의 진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칭의, 성화의 삶과 최후의 심판 등의 진리를 왜곡하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게 포장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끼는 것은 전할 수 없는 교회,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는 교회, 심리학적 위로밖에는 줄 것이 없는 교회, 이러한 모습의 교회를 원하십니까? 실용주의적 마케팅 원리를 수용한 교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