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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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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1 23:14
개혁교회 입장에서 본 신앙고백 교육(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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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643  

(2) 역사적 근거
위의 여러 성경적 근거 위에 초기 교부시대로부터 중세시대와 종교개혁시대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된 신앙을 지켜 온 성도들은 늘 ‘신앙고백’을 분명하고 바르게 고백하고 또한 이 신앙 고백의 변질을 막기 위해 문서적인 기록의 형태로도 남겨 놓았다.
특히 16,17세기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로마 가톨릭교회에 맞서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통해 성경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려고 했던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개혁교회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은 칼빈의 영향에 힘입어 더욱 체계 있고 정확한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칼빈은 교회가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교회 교육의 핵심으로 여겼으며 그 중요성에 대한 표현은 그가 영국의 한 성주에게 보낸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 교육이 없이는 절대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씨앗이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는 것처럼 교회를 왕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붕괴되지 않고 든든히 서 있을 집(교회)을 짓기 원하신다면 아이들이 아주 인상 깊게 이 신앙 교육서를 통하여 믿음에로 이끌려 지도록 힘쓰고 돌아보십시오.”

칼빈은 또 제네바 국회에 제출한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제의서’에서 이 부분을 강력하게 세우고자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성찬식과 시편을 찬양할 것과 어린이들의 교육에 교리문답서 사용을 요구 하며 교리문답의 중요성 을 언급했다. 그리고 어 린이 교리교육의 중요성 어린이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청교도 을 강조한 제 2 차 제네바 교리문답서의 서문도 유명한 말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의 순수함을 보존케 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아이들에게 신앙고백을 가르쳐 저들로 하여금 믿는 내용을 깨닫게 함이 극히 필요하니, 이같이 함으로서 참된 성경 내용이 변질되지 않고 보존될 것이며 또한 각 사람에게 혹은 후손 대대로 전파 될 것이다. 내가 제안하려고 하는 제도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 신앙의 간결하고도 단순한 한 요약을 작성하여 모든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일 년의 일정한 날에 목사 앞에 나와 문답을 하고 시험을 받고 또한 각자의 능력을 따라 저들이 충분히 가르침을 받았다고 인정될 때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을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양육하라는 특별한 권면을 받아왔다. 이를 규모 있게 수행하기 위해 교회는 ‘교리문답’이라고 불리는 어떤 특정한 규칙을 사용하였다. 사탄은 자신이 교회를 흩어서 가공할 만한 폐허로 만들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 안에 아직 어떤 참 신앙의 징표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자 사탄은 이런 거룩한 질서를 붕괴시켰다. 따라서 사탄이 남겨 놓은 것은 변화 능력이 전혀 없고 단지 미신만을 산출해 낼 수 있는 몇 가지 유물들에 불과하다.(로마 가톨릭) 이것이 바로 왜 현재 우리 교회 안에 내적인 힘은 없고 외적인 종교적 모습만이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확실한 원인이다. 우리가 여기서 제시하는 이 요리문답은 옛적부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준수되어 왔고, 교회가 완전히 부패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포기된 적이 없는 전통적인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서’는 이처럼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중요성은 칼빈뿐만이 아니라 초대교회 때부터 종교개혁 때까지 마찬가지였다. 즉 개혁교회의 신조(신경), 신앙고백서, 교리문답 등은 주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의 고백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진 찬양과 헌신의 의미가 깊이 배어 있는 표현이었다. 또 칼빈이 역설한 교리문답 교육 없이는 결코 오늘까지 기독교가 존속할 수 없었다고 많은 목사들이 증거 할 뿐 아니라, 교회가 교리문답 교육이 없이는 신앙생활의 순결을 지킬 수가 없었고, 역사적으로도 가장 부흥했던 교회도 교리교육을 소흘히 할 때 곧 쇠퇴하고 부패하기 시작했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개혁주의자들이 아닌 다른 분파들은 늘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서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개혁교회와 개혁교회가 아닌 교회를 구분 짓는 외적인 큰 특징 중에 하나였다. 이러한 구별 방법은 어떻게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역사적으로 늘 동일하게 개혁주의가 아닌 자들은 개혁교회의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공격하고 그 필요성을 부인해 왔다. 즉 영지주의, 펠라기우스주의, 알미니우스주의(웨슬레적 감리교, 성결교), 경건주의, 신비주의, 오순절주의(순복음 교회), 현대 자유주의 등이 신앙고백서의 권위와 용도를 전적으로 배격하거나 반대하려고 한다.

그들이 개혁교회의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반대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신앙고백서들이 1) 성경의 자유로운 해석과 신학의 발전을 방해하며, 2) 양심의 자유와 개인의 판단 권을 방해하고, 3) 위선과 독선과 완고함을 조장하며, 4) 교파 간에 분란과 혼란을 야기 시키고, 5) 종교적인 증오심과 분파들 간의 험담을 낳게 하며, 6) 역작용을 일으켜 교리적 차별주의나 회의주의 또는 불신앙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단들 역시 개혁교회 신앙고백들을 전적으로 배격한다. 그들은 신앙고백서를 마치 인간의 자유와 권위에 대한 새로운 멍에인 것처럼 여기거나 새로운 형태의 교황주의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들의 모순은 그렇게 개혁교회 신앙고백을 반대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들 주장에 맞게 자기들만의 신앙지침을 만들어 그들 전통적 체계나 자기들이 추앙하는 인물들의 권위를 내세우며 그들 역시 기록이나 문서화된 신앙고백서와 같은 형식의 문건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어느 종교나 신앙고백의 형태는 어쩔 수 없이 본성적으로 필요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은 신앙고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형태보다는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 중 일부는 개혁교회의 전통적인 신앙고백들을 인정한다고 입으로는 말하기 때문이다. 특히 더욱 주의를 요하는 것은 자기들도 개혁교회 신앙고백을 믿으며 정통 장로교회라고 하면서 신앙고백서는 갖고 있지만 명목상으로만 갖고 있을 뿐 실제로는 전혀 가르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데 이것도 신앙고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또한 요즘 장로교 내에서도 ‘성경신학’ 운운하며 목사가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거부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많은 장로교회의 성도들이 참된 신앙을 지키려고 갈급해 하면서도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성경적으로 정립하지도 못하고 쉽게 신앙이 변질 되며 이단에 빠지기도 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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