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와 개혁주의는 언뜻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복음주의가 동성애와 낙태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들이 성경의 모든 부분에 있어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복음주의는 이미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고 있으며, 급기야는 WCC, WEA와도 하나되는 종교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간혹 사람들은 복음주의와 개혁주의를 같은 것으로, 아니면 다른 것으로 이해한다고들, 논쟁하는 모습을 본다.
같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성경의 포용성의 넓이에 대한 부분이라고 여기면서 개혁주의는 좁은 의미의 성경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복음주의는 개혁주의가 가진 성경관을 포함하여 대사회적인 포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회 속에서는 복음주의가 복음확장을 위해서 더 바람직하다고 한다. 여성의 목사 안수가 제기된 시점이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찾을 수 있다. 한편, 복음주의와 개혁주의가 다르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복음주의는 감정적인 부분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개혁주의는 지성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면서 다른 점을 인정하듯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와 개혁주의의 진정한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감정과 지성의 차이가 아니다. 성경의 무오성을 복음주의와 개혁주의가 중요하게 여기고 인정하고 있지만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모든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의 무오성을 형식으로만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무오성을 고백하는 것은 성경의 모든 내용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배우고 순종할 때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이다. 성경의 무오를 인정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동의한다고 해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성으로 인해 계시하신 그 말씀이 성경이라고 하는 책으로 기록되었기에 무오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무오성과 하나님의 완전성은 동일한 것이다. 만약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한다면 하나님의 불완전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무오성은 사람들 간의 동의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말씀하는 것을 고백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의 위치도 성경의 가르침대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 합동 교단은 2023년 총회신학체성위원회라고 하는 위원회를 통해 개혁주의 신학의 요점을 담은 총회신학정체성 선언문을 만들고 총회에서 채택하였다.(개인적으로 이미 12신조와 웨민신앙고백과 대,소리요리문답 안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을 요약하여 선언문을 만들었는데 너무나 빈약한 것으로 보인다. 부족하지만 이 선언문대로 목사들이 과연 신학을 정립하고 목회를 하는지가 더 중요한데 그저 소리만 외치는 정치적 구호에 지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확인한 것에 더 의미를 둔다.)
이 선언문에서도 성경의 무오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성 윤리’를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남성과 여성에 차이를 분명하게 지적하여 준다. 왜 필자가 신학정체성 선언문이 정치적 구호에 지나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지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올 2024년 총회에도 노회 몇 곳에서 이미 여성목사 안수에 대한 헌의가 제출되었다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연 총회가 가진 신학정체성을 바르게 정립하려고 한다면 이런 여성목사 헌의안은 각하시켜야 함이 마땅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시대적인 조류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만약 그 진리가 시대적인 환경과 여건에 변화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여성목사가 제기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내에 많은 여성들이 있고, 앞으로 다가오는 세대는 여성이 교회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져야 대 사회적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가 여성목사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통합교단이 이런 논리에 의해 여성목사, 장로를 인정하였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교회는 여성목사와 여성장로를 그렇게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목사가 되어 오히려 목회할 수 없는 사역지가 더 많아졌다고 하는 것이다. 여성이 전도사로 있을 때는 더 많은 사역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교회가 여성목사를 청빙하지 않기에 사역지로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만약 우리교단이 여성목사를 인정하게 되면 이러한 현상이 분명 동일하게 일어날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딤전3:1-2). 결국 여성목사를 인정하는 것은 성 윤리를 왜곡하는 일을 인정하는 죄가 된다. 여성이 장로가 된다는 것은 성경에도 없는 한 남편의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언제나 항상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모든 교회가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성경 말씀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그리고 감정에 의해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복음주의가 첨병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사이의 전정한 차이는 무엇인가?
복음주의는 감정적이고 그래서 더 사회적 대응을 잘하여 복음의 확장을 잘할 수 있는 신학인가? 반면 개혁주의는 지성적이서 아는 것에만 한정되어 사회적 개념을 무시하고 복음확장에 장애만 가져오는 신학인가?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차이점은 감정이나 지성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차이는 성경의 완전한 무오성을 고백하고 인정하므로 모든 성경의 내용에 순종하느냐 아니면 성경의 진리 중 좋아하는 부분만을 강조하고 따르냐 하는 것에 있다.
복음주의는 성경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만 인정하고 고백한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해석한다. 마치 로마교회가 교회의 신학자들을 세워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킨 것처럼 그렇게 행동한다. 오늘 합동 교단이 이런 짓을 점점하고 있다. 신학교 교수들을 세워 교회에서 여성의 사역을 위한 바람직한 자세라는 아젠다로 이리저리 떠 벌리면서 결국 여성목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결국 복음주의는 성경의 내용에 불성실한 모습을 항상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시작하여 성경의 모든 내용을 의심하지 않고 언제나 고백하고 순종한다. 성경의 윤리를 지킨다고 해서 복음주의와 개혁주의가 같은 신학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는 진리에 있어 후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고, 지금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합동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복음주의가 무엇이고, 개혁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목사들이 너무나 많고 이제는 신학교 교수들도 자신이 복음주의 신학자인지? 개혁주의 신학자인지도 정체성을 알지도 못하고 돈 받고 연구하고 발표하면 되는 줄 안다.
마지막으로 합동교단이 만든 총회신학정체성 선언문이라도 시행하는 교단이 되길 바란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처럼 그렇게 말만하지 말고 실체적으로 교회의 모든 목사들이 고백하고 순종하는 그런 신학 선언문이 실행 되어지기를 바란다. 총회는 여성사역자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여성 사역자도 교회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에 순종하면서 교회에 필요한 여성의 사역을 위한 바른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진리 안에서 탁월한 방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총회의 바른 역할일 것이다.
임진남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