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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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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7-08 16:42
청중이 설교에 주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낚시꾼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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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514  

어떻게 설교에 청중을 집중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1. 설교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

(1) 청중이 설교에 주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낚시꾼 탓입니다. 저는 예민해서 그런지 눈먼 맹인이라도 설교 시간에 나를 향하여 얼굴을 들고 바라보지 않으면 아주 신경이 거슬립니다. 제 설교 시간에 청중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본다든가, 또는 주위 사람과 속삭인다든가, 졸고 있다든가, 시계를 꺼내본다든가 하면 저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최대한 설교에 집중시키는 방 법을 제가 연구하고 계발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두 사람이 같이 낚시를 해도 한 사람은 많이 잡는데 다른 한 사람은 거의 못 잡습니다. 그건 물고기 탓이 아니라 낚시꾼 탓입니다. 낚시 가서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으면 그건 낚시꾼을 탓해야 합니다. 낚시꾼은 낚싯바늘에 물고기가 반응하도록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회중들이 졸든지 산만하든지 자기가 할 말만 하고 내려온다면 그는 훌륭한 설교자는 아닙니다. 비록 회중이 산만하고 피곤해도 눈과 귀가 번쩍 뜨일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가 전문가입니다. 물고기 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설교 시간에 바알세불이 역사합니다.

여기서 바알세불을 그냥 우화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신학적이 아니라 마 12:22-24의 그는 ‘파리의 신’인데 다름 아니라 설교 시간에 ‘파리’ 가 웽웽 하고 날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파리들인가 하면;  어떤 농부는 설교 중 밭 갈고 씨 뿌리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농부 아내는 말린 농작물 거둬드릴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상인은 결제하지 못한 수표가 눈앞에 맴돕니다.  가게 주인은 물건 팔 생각으로 눈앞에 파리가 웽웽 거립니다.  심지어는 여자 교인의 리본이나 드레스에 한 눈이 팔리기도 하고 교인의 구두에서 나는 삐꺽대는 소리가 주위를 산만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예배시간에 특히 설교 중에는 아주 성가신 파리들이 무수히 날아다닙니다. 복음의 잔치가 있는 곳에 파리들이 날아와서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중의 주목과 주의 집중을 빼앗아 버립니다. 제가 이 시간에 ‘설교의 주의 집중’을 주제로 말씀드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영국의 많은 교회들에서 설교에 집중하는 설교자나 회중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예배나 설교는 그저 ‘행사로 치르기’ 식이 되어버리고 말지요.

회중들의 태도 자체가 설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설교자의 말 에는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지요. 대신에 자꾸 고개를 사방으로 기웃거리면서 ‘누가 왔나, 안 왔나?’ 둘러보는 사람들이 교회마다 있습 니다. 때로는 늦게 들어오면서(삐거덕거리는 마루가 있었던 시절에) 발 소리를 내기도 하며 문 닫는 소리가 쾅하고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런 여러분의 두리번거림이 얼마나 거슬리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설교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잘 아시겠지 요? 사람들이 ‘설교는 별로 들을 게 없다’는 의식이 매우 오랜 세월동 안 그들의 정신 속에 고착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별로 들을 만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 교회의 설교 시간이 산만 하고 ‘파리’들이 막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 말, 말뿐인 설교’ 말 이외에는 없는 설교에 회중들은 오래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감사’에 관한 설교를 가장 잘 하는 분이 있다면 그는 평소에 늘 감 사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관한 설교를 가 장 잘 하는 분이 있다면 그는 평소에 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으로 사는 분입니다. 그런데 ‘전도’에 관한 설교를 잘 하는 분을 찾기가 매 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평소에 ‘전도’를 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이와 같이 ‘말, 말, 말’이 아니라 ‘삶, 삶,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설교에 정말 들을만한 ‘내용’이 있다면 사람들은 50마일을 걸어서라도 그 설교를 들으러 나올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설교에 대한 기대’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주실까?” 성도들이 그런 기대를 가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 데 성도들이 말씀에 대한 아무 기대감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그건 물고기 탓을 할 게 아니라 어부 탓을 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심각하게 점검해 보십시다. 오늘날 우리 교우들이 교 회에 나올 때 어떤 기대감을 갖고 나오는가? 아니면 그저 때우기 식으로 나오는가? 아예 설교에 대한 아무 기대감도 갖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데 설교 시간에 그런 성도들에게 집중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설교자는 이 점을 정직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2. 설교에 대한 실제적 지침

(1) 설교에 집중케 하려면 내용을 잘 구분해서 담아야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바구니를 들고 상점에 심부름을 갔습니다. 차 1파운드와 겨자 가루 반 파운드 그리고 쌀 3파운드를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 저는 사나운 개들을 피해 산길과 웅덩이를 지나 삥 둘러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바구니 속의 찻잎, 겨자가루, 쌀이 모두 한데 뒤섞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찻잎도 겨자가루도 쌀도 아무 것도 건질 수 없었고 다 내버려야 했습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락 별로 주제가 비슷한 내용끼리 잘 포장해서 구분을 잘 해서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내용이 있어도 중언부언이 되고 맙니다.

이 말 했다가 저 말 했다가 설교가 산만해 지는 것이지요. 설교에 원고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원고를 작성하지 않고 그저 머릿속에 기억만 갖고서 강단에 올라가면 이말 저말 횡설수설 중언부언 하게 됩니다. 그런 것보다는 설교가 단정하고 가지런하게 잘 정돈되어 있고 흐름과 뼈대와 주제가 명확한 것이 좋습니다. 즉 뒤죽박죽인 설교를 하지 마십시오.

(2) 같은 말을 반복하면 안 됩니다. 또 설교를 지루하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은 한 설교에서 설교자가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원고를 작성하지 않았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설교자 자신은 말하기에 바빠서 자기가 말을 계속 반복하는 줄 모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했던 말 또 하네!’하면서 귀가 거슬리는 것입니다. 어떤 설교자는 중간 중간에 이제까지 했던 설교 내용을 ‘요약, 중간 정리’ 해 주느라 했던 설교를 또 반복하기도 하는 데요 그 ‘요약, 중간 정리’가 한 두 문장으로 간단히 끝나야지 한 단락 이 되고 5분이 경과 하면 설교 내용이 반복되어 지루합니다.

(3) 내용 없는 설교를 길게 하면 지루합니다.

원고 작성이 철저하면 할수록 설교가 길지 않습니다. 반대로 원고 작성이 흐릿할수록 실제 설교가 길 어집니다. 이상합니다. 원고 작성을 안 하면 설교가 할 말이 없어서 더 짧아질 것 같은데 오히려 반대로 길어집니다. 왜냐하면 원고가 없으니 까 했던 말 또 하고 이말 저말 중구난방 식으로 하니까 설교가 길어지 는 것입니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렇습니다. 설교가 평소보다 길어지면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4) 설교를 지루하게 하지 않기 위해 음성도 단조로우면 안 됩니다. 톤의 높낮이가 없는 것보다는 높낮이가 있는 것이 더 낫고 스피치 의 속도가 천편일률적이기 보다는 말을 빨리했다가 느리게 했다가 하 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래야 듣는 사람들이 더 집중합니다.

물론 이런 테크닉들은 일단 설교 내용이 충실한 바탕에서 시도해야 합니다. 설교 내용은 빈약한데 대화의 기술만 발달하면 오히려 더 듣기 싫습니다.

(5) 설교의 뼈대가 있으면 살도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설교를 ‘뼈대’ 중심으로 합니다. 교리, 본문내용 분석 등 뼈대는 잘 세우는데 살(설교 내용)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뼈를 먹지 않습니다. 설교의 뼈대를 잘 세웠으면 살을 거기에 붙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된 재료를 오랜 시간에 수고하여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6) 설교의 ‘서두’를 너무 길게 하지 마십시오. 집을 지으면서 그 현관만 크고 요란하게 만든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또 어떤 식당에 가면 손님을 위해 식탁보를 깔고 테이블을 세팅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해서 손님을 기다리다가 지치게 만든다면 고객은 화를 낼 게 분명합니다.

설교의 서두는 필요하지만 에피타이저(appetizer)는 간단히 하고 식사의 메인 코스가 빨리 나올수록 좋습니다. 저는 설교의 서론을 마치 ‘포고원’(布告員, 관가의 칙령을 읽는 사람)의 서론처럼 아주 간결하게 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설교 서론에 사람들의 주위를 끌만한 신선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서론을 너무 길게 하지는 마십시오. 첫 머리는 화려한데 본론이 부실하면 듣는 사람들은 더 실망할 것입니다.

설교자는 온전히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 글쓴 이 /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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