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교회에 각종 세미나와 부흥을 위한 각종 연구모임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내용은 성경과 위배되는 사상 혹은 주장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초교파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교회의 양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어느 교단 누구에 의해서 주도 되든지 크게 개의치 않고 신학적 경계를 쉽게 초월하고자 하는 경향은 그 좋은 증거라고 할 것이다.
루터교 신학자 마티(Martin E. Marty)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신학은 좋든 나쁘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정교하든 산만하든 불가피하게 존재할 것이다.” “교회들이 신학을 버리거나 덜 강조할 때 기독교 메시지를 명확히 표현하고 옹호할 수 있는 지적도구를 포기하는 셈이다. 그로 인한 종교적 이념의 혼돈에서 공동체에 남는 주된 기준은 아주 자연스럽게 편의성의 기준이며, 사실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되는 것 같다.”
요 8:3~11과 마 15:21~28을 예로 들면, 여성해방신학자들이나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이 본문은 남성 중심적인 문화관에 고정되어 있으므로 여성 독자들에게는 불리하고 따라서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성적인 이데올로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류의 주장은 문화 혹은 성별에 따른 관점에서 성경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오류인데, 이는 결국 신학적인 무지 혹은 신학을 경시하는 태도와 직간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더구나 개혁주의 신학자들마저 동조하거나 혹은 앞장서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참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해석학이 조직신학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고, 정통신학의 틀을 붕괴하고 깨는 것을 마치 사명으로 인식하는 듯한 경우가 종종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해석학은 자율적인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반드시 특정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고정하는 신학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조직신학에 종속하는 영역임을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목회의 우선순위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말로는 신학이라고 밝혔지만 그러나 실은 맨 마지막에 놓였다는 보고가 있다. 목회에 미치는 중요성의 순위의 맨 처음은 영성, 인간관계의 기술, 인격, 커뮤니케이션 기술 순이었다. 응답자들은 대부분 신학과 영성은 무관한 것으로 간주했다. 신학적인 근거가 없거나 혹은 전에 듣지 못하던 매우 모호한 사상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현재의 교회 상황을 두고 지적할 가장 시급한 두 가지의 문제는 신학적인 무지와 복음주의에 만연하는 정통신학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에 관한 성경의 바른 교훈을 가르치겠다고 하면서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여 왔는지 그 해석학적인 전통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해석학적인 전통이 분명한 사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오늘날의 신학으로 형성된 것이다.
신학이란 곧 성경 해석의 원리이자 성경 해석에 근거한 사상의 체계이다. 따라서 신학이란 신앙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료한 신앙이 없었다면 신학은 그 내용으로 아무 것도 가질 것이 없다. 교회가 지금까지 교회를 양육해 온 바른 신학을 성경 해석의 이정표로 삼는 일은 현대주의적 폐해가 만연한 지금에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기독교는 신학 없이 살아 남을 수 없으며, 신학은 오늘날 특별히 우리의 생각 없고 비합리적인 문화에서 특히 중요하다.”
-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설립기념 세미나 강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