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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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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7-19 21:01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려면 목적론적 윤리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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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225  

'목적론적 윤리'라는 용어는 일반 사람들에겐 지극히 낯 설은 용어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용어가 낮설다고 해서 이 가치관이 낯 설은 것은 아니다.
그러면 '목적론적 윤리'가 무엇이기에 우리들의 가치관에는 낯설지 않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올 법 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필자는 이 용어에 대한 정리를 하고, 그 다음에 이 사고가 인류 역사에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는지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목적론적 윤리란 일반 철학에서 보는 대표적인 두 가지 윤리적 관점 가운데 하나이다.

철학에서는 윤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그 첫째는 '법칙론적 윤리'이고, 또 하나는 '목적론적 윤리'이다. '법칙론적 윤리'란, 이 세상엔 분명히 보편타당한 윤리가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반면에 '목적론적 윤리'란 윤리의 핵심을 행복으로 보고 행복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윤리는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고도 말한다.

왜냐하면 목적론적 윤리의 관점에서 윤리는 단지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윤리란 행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고로 이들에게 있어서 타인이 비 윤리적이라고 할 때 심한 불쾌감과 도덕적 정죄가 나오는 이유는 선과 악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비 윤리가 자기의 행복을 깨뜨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고로 이들은 윤리가 수단이고 행복이 목적이기 때문에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윤리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행복이라는 궁극적 목적은 얼마든지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789년의 프랑스 대 혁명이다.
프랑스 대 혁명은 '목적론적 윤리관'에 의하여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행되어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당시 프랑스의 시민들은 '행복'이라는 '절대적인 목적'을 위해서 혁명을 선택했다.

그들은 다수의 행복이라는 정당한(?) 목적(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고,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결코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 백명이 겔로틴(단두대)에 목이 잘려나가도 사람들은 이 혁명이 자신들에게 결국은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이후에 이러한 가치관은 공산 혁명의 중요한 원리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가치관이 오늘날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끔찍하다.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은 지극히 목적론적 윤리관에 매몰되어 있다.

이 세대의 사람들(여기에 교인들도 예외는 아니다)의 최대 관심사는 오로지 행복하게 사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대 사람들은 자신에게 행복을 제공해 주기만 한다면 불법한 정치가도 뽑아주고, 사악하고 음란한 문화도 거부하지 않는다.

이 시대 사람들은 말한다.

'무엇이 잘못이라는 것인가? 불행과 억압을 가져다 주는 질서와 법보다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불법과 무질서가 더 우월하지 않는가?'

이처럼 목적론적 윤리관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가치의 평가를 '개인의 행복'으로 환산한다.

따라서 이 시대 사람들이 다른 이성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이성은 나에게 행복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요즘 시대가 정의하는 '사랑'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사랑한다고 했던 그 사람이 결혼을 한 후에 자기가 기대했던 '행복'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채워주지 못하면 원수가 된다. 이혼을 하거나 살인까지 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도 이런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는 은연중에 '구원=행복'이라는 등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 시대의 목회자는 교인들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한다.
교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교리도, 교회의 질서도, 엄격한 권징도 다 양보했다.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예배, 찬양, 기도, 봉사..)은 교인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죄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하는 목회자가 아닌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목회자를 찾는다.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려면 목적론적 윤리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를 우리의 가장 고상한 가치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 제1문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분명하게 선언한다.
"사람의 제1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 사람의 제1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


- 회복의 교회 김민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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