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장 회개와 복받음
• 42:1-2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친히 나타나 만물 창조의 능력과 그 위대성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듣고(38-41장), 욥이 하나님의 위대성과 무소 불능(無所不能)하심과 그의 무한한 지혜와 지식을 깨달았고 또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무슨 경영 (經營)이든지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줄을 깨달았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욥이 자기 무능과 무지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고 자기가 한 말과 자기가 소원했던 모든 것이 모두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이 하나님의 능력과 그 깊으신 지혜와 섭리를 깨닫고 보니 자기 한계 밖의 말을 한 것과 스스로 알 수 없는 말을 한 것을 자백하였다. 하나님과 변론한 것과(40:1-2) 자기가 고난받는 원인에 대하여 알려고 하나님께 따진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와 목적과 결과를 다 알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 며 기다릴 것뿐이다.
•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과 자기의 부족을 자복하는 말을 하겠다는 것이요 또 이제부터는 주님이 가르치는 것만 겸손히 배우겠다는 것이다.
•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전에 하나님과 그 뜻에 대하여 많이 배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몸으로 고난을 당하며 하나님께 직접 듣고 체험하였다는 것이다.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한 것이 그 뜻이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더욱 발견 하고 영으로 그 말씀을 깊이 깨달은 자는 모든 가치관이 달라지 고 자기도 변화된다. 모세는 젖뗄 때까지 어머니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워 알았으나 미디안 40년 생활의 신령한 체험이 그를 변화시켰고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만든 것이다. 또 바울이 성경을 어려서부터 많이 배웠고 하나님을 열심으로 섬겼으나 아라비아 3년 기도생활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진리를 확실히 터득하게 만든 것이다.
•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영광과 심오한 섭리를 깨닫고 자기의 더러움과 무지함과 부족함을 깨달아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다. 욥이 지금까지는 자기가 고난받을 만한 죄가 없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으나 이제는 자기의 무능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회개한 것이다.
스스로 한(恨)하고 이것은 자기를 스스로 더럽게 여기며 멸시 한다는 뜻이다.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이것은 자기를 낮추고 부인하면서 회개하는 태도이다(에 4:1; 렘 6:26 ; 겔 27:30).
욥이 회개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 무지한 말을 한 것이다. 자기는 죄가 없으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치신다고 말한 것을 회개한다(16:6-17).
둘째, 월권(越權)된 언행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와 그 섭리에 맡기지 않고 자기가 당한 일을 자기가 다 알려고 하나님께 따진 것을 회개한다. 만사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순종하지 못한것이 죄이다.
셋째, 생일을 저주하고 죽기를 원한 것이다(3:1-26).
넷재,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腐敗性)이다. 욥이 이상의 모든 말을 하게 된 것은 욥의 속에 있는 부패성 (죄악성) 때문이다. 그의 깊은 속에 자기도 모르는 교만과 악함과 더러운 부패성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번에 발견한 것이다. 욥이 환난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 속에 있는 부패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환난을 받는 동안에 그 부패성이 나왔으므로 자기를 더럽게 여기며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부패성이 다 있는데 그것이 시험과 환난이 올 때에 나오고 하나님을 발견할 때에 나타난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때에 자기의 부패성이 발견되어 예수님 발 앞에 거꾸러져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계 1:9-17),
하나님께서 욥에게 환난을 허락하신 목적은
첫째,, 욥의 신앙을 드러내려 함이요,
둘째, 욥의 속에 있는 부패성을 빼내려 함이요,
셋째, 연단시켜서 정금과 같은 신앙 인격으로 만들기 위함이요,
넷째, 나중에 갑절의 복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욥에게 주신 환난은 유익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환난도 마찬가지이다.
•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을 마치신 후에 욥의 친구들을 향하여 노하고 책망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욥이 죄 때문에 고난받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욥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둘째, 죄값으로 고난이 오고 망하게 된다는 일반적인 진리를 가지고 욥을 정죄하였기 때문이다. 바른 진리도 잘못 사용하면 죄이다. 마귀도 성경 말씀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였다(마 4:5-6).
셋째, 욥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괴롭게 했기 때문이다.
넷째, 자기네들끼리 서로 비난하고 공격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사랑이 결여(缺興)된 어조(語調)로 공격만 일삼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욥의 말이 정당함을 인정해 준 것이다. 그러나 욥이 3절에서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 까"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욥은 말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욥의 말이 정당하다고 인정해 준 것이다.
엘리바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는 친구들의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 42:8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 욥의 친구들에게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수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가서 욥을 통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정당치 못한 말을 한 것을 회개시키기 위함이요, 욥과 화목시키기 위함이요, 욥이 그들보다 정당한 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욥의 친구들도 바로 서게 된 것이다.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 이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는 제물들이다. 일곱 마리씩 드리라고 한 것은 칠 수는 완전수이므로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을 드려야 될 것을 의미한다.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욥이 기도를 해주어야 그들의 죄가 사해질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욥을 제사장과 선지자 위치에 세워 놓고 그 친구들을 욥에게 굴복시켜 붙여준 것이다. 그 이유는, 욥의 친구들을 그냥 놓아두면 계속해서 정당하지 못한 주장을 하며 잘못된 길로 나아가다가 망할 것이기 때문에 욥의 인도를 받아 바른길을 걷게 하며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욥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욥의 인도를 받는 것이 큰 복이다. 모세의 형 아론도 모세보다 말을 잘하지만 모세보다 진리에 대해 깨달은 면이 적고 정당한 길을 걷지 못하겠기 때문에 모세의 인도를 받도록 한 것이다. 그것이 아론에게 큰 복이었다. 그런데 아론이 모세의 인도를 받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며 (출 32:1-6), 미리암과 함께 모세를 원망하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민 12장). 그러므로 우리도 신앙적인 면이나 진리 면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인도를 받는 것이 복이다.
• 42: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욥을 통하여 번제를 드렸다. 그때에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여기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이로써 그들이 욥과의 질서가 바로 되었다. 하나님께 바로되려면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되어야 한다. 하나님께만 바로 하면 된다는 것은 바리새인의 고르반 사상이다(마 15:5-6).
• 42:10-11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욥이 회개하고 바로 섰으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바로 하니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여겨 그 환난 가운데서 건져 주셨다. 병도 낫게 해주시고 소유도 전보다 갑절이나 준 것이다. 그때에 그 소식을 들은 모든 형제 자매와 전에 알았던 자들이 다 와서 욥을 위로하며 욥에게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을 선물로 주었다. 욥이 고난당할 때에는 욥을 돌아보는 형제 자매도 없었고, 욥을 아는 사람 가운데서도 찾아와 도와 주거나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엘리후와 세 친구가 찾아오기는 했으나 위로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정죄만 하여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욥이 환난 가운데서 회복되었다는 말을 듣고 다 찾아와서 금을 주면서 위로해 주었다. 사람들이 고난당할 때는 아무도 돌아 보지 않고 멀어지지만 잘 될 때는 잘 도와 준다. 그러므로 환난당 할 때에 도와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우리는 환난당할 때에 누가 도와 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 짖어야 한다.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욥이 환난 때에는 찾아오지 않았으나 욥이 잘될 때에 찾아온 사람들을 욥이 잘 영접하여 대접하였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 도와 주지 않은 그들에 대하여 섭섭해 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도리어 잘 대접을 한 것이다. 이것이 욥의 너그러운 인격이다.
• 42:12-13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末年)에 처음보다 갑절의 복을 주었다. 욥이 환난당하기 전에는 양이 7,000마리 였는데 14,000마리가 되었고, 약대가 3,000마리 였는데 6,000마리가 되었고, 소가 500겨리 였는데 1,000겨리가 되었다(1:3). 그리고 아들 일곱과 딸 셋도 다시 낳았다. 전에 죽은 아들 일곱과 딸 셋도 천국에 있으니 자녀도 갑절을 받은 셈이다.
• 42:14-15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하나님께서 욥에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딸 셋을 주셨다. 그 첫째, 딸의 이름은 "여미마"라고 지었는데 그것은 "낮(晝)"이라는 뜻으로 그녀가 낮과 같이 깨끗하고 밝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둘째, 딸의 이름은 "긋시아"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계피(桂皮)"라는 뜻으로 그녀가 향기나는 계피처럼 모든 사람에게 향기가 되기 위함이다. 셋째 딸의 이름은 "게렌합북"이라고 지었 는데, 그것은 "뿔"이라는 뜻으로 화장품을 넣어두는 함처럼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화장용으로 쓰는 물감을 뿔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욥의 딸들 은 그 이름처럼 용모가 아름다웠겠지만 신앙적으로도 그 인격이 아름다웠을 것이다. 잠언 31:30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성령의 은혜로 믿욥이 있어야 하고, 속 사람이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으로 만들어져야 된다. 모세의 출생 당시에 그의 어머니가 모세의 준수(俊秀)함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서 길렀다고 하였는데(출 2:1-2), 어린 아이를 준수하다고 말한 것은 성령의 은혜가 그 얼굴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빛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 42:16-17 그 후에 욥이 일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욥이 환난 후에 140년을 더 살며 손자 사대(四代)를 보았다. 70인역에는 욥이 240세까지 살았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의하면 욥이 100세에 환난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 욥의 연령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자녀와 소유에 대한 복도 주었으며 장수 하는 복도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