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장 욥의 무지 지적
• 39:1-2 산 염소가 새끼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하나님께서 전장(前章)에 이죄 계속해서 욥에게 짐승들의 기이한 현상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전지 전능함을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산(山)염소는 깊은 산 중에서 서식(棲息)하는 야생 동물로서 그 털 색깔이 바위의 색과 비슷하므로 사람이 쉽게 보거나 접할수 없는 동물이다. 암사슴은 위에서 말한 산(山) 염소의 암컷을 가리킨다. 이렇게 깊은 산 속에서 생활하는 동물들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기한에 새끼를 낳고 그 정해 주신 방식대로 새끼를 기른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잘 모른다.
• 39:3-4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아 그 괴로움을 지내어 버리며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길리우다가 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산(山)염소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는데, 낳을 때에 수고를 많이 하지만 낳은 후에는 그 고생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산염소의 새끼는 너무 무정하다. 그 새끼는 얼마 동안 어미와 같이 있다가 조금 자라나면 달아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산염소에게 그러한 생식 생리(生殖生理)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을 창조할 때에 각기 다른 성품을 주었기 때문에, 생김새도 다르고 생식 하는 방법도 다르고, 새끼에 대한 정(情)도 다르고, 자기 어미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동물마다 종류대로 다르게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짐승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의 위대하심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 께서는 모든 생물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시고 이용하셔서 당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다. 다니엘 때에는 사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어 많은 사람에게 증거한 일이 있다(단 6:19-27). 하나님께서 사납게 만든 사자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짐승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 39:5-8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내가 들로 그 집을, 짠 땅으로 그 사는 처소를 삼았느니라 들나귀는 성읍의 지꺼리는 것을 업신여기니 어거하는 자의 지르는 소리가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초장이 된 산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것을 찾느니라
여기서는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는 들나귀나 들짐승까지도 하나님께서 거할 처소와 초장을 주어서 먹고 살게 해 주신 것을 말씀하셨다.
들나귀는 사람이 거하지 않는 광야에서 사는 동물로서 사람이 기르는 집나귀처럼 사람에게 얽매임 당하거나 제재를 받지 않고 들에서 자유롭게 산다. 그 들나귀는 사람이 어거(馭拒)하려고 소리를 지르며 잡으려고 해도 워낙 빠른 동물이므로 도리어 업신여기며 산으로 두루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고 산다는 것이다.
집나귀는 사람에게 얽매여 일하기 때문에 사람이 먹을 것을 넉넉 하게 준다. 그러나 들나귀는 사람에게 얽매이거나 순종하지 않고 제 자유대로 다니므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산으로 두루 다니며 고생한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집나귀처럼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도 있고, 들나귀처럼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 그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의 관할하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욥이 자기가 당하는 환난의 원인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알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 39:9-12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내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그것의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여기서는 들소의 힘과 그것이 사람에게 어거(馭拒)되지 않는 점에 대해서 말한다. 들소는 아주 힘이 강하지만 집에서 기르는 소처럼 외양간에서 살게 하거나 써레를 끌게 하거나 곡식을 운반하고 떠는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들소를 창조할 때에 강한 힘을 주셨으나 들에서 자유롭게 살도록 성품을 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들소를 통하여 주는 교훈은,들소가 힘은 강하지만 어거 당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무용지물인 것처럼, 성도가 아무리 세력과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충성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힘이 없어도 집소처럼 주인에게 잘 이용당하고 충성하면 구원 운동에 필요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구원 운동에 충성하고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들소처럼 우주 만물 가운데는 많은 힘이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이용하면 큰 유익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 모든 것은 바라보지 말고 허락 하신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해 나가야 된다.
• 39:13-18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 두어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구로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괘념치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 내가 지혜를 품부하지 아니하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니라 그러나 그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
여기서는 타조의 위엄과 미련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타조는 날개를 치면서 달리면 말(馬)을 경(輕)히 여길 정도로 빠른 짐승이라고 한다. 그 타조의 빠르기는 시속 40km(100리) 이상이다.
타조는 사막에 알을 낳고도 품지 않고 내버려둔다. 어미 타조는 자기가 낳은 알을 무정하게 다른 짐승이 물고 가거나 밟을 것도 생각치 않고 버려둔다. 그 알은 사막의 뜨거운 모래의 열기에 더워져서 저절로 부화(孵化)가 된다.
타조는 그 날개가 위엄 있고 빠르며 힘이 센 짐승이지만 무정 하기 짝이 없다. 다른 짐승들은 모성애(母性愛)가 있어서 자기가 낳은 알을 품어서 까고 새끼를 잘 기르는데 타조는 그렇지 못하다. 이것은 타조가 미련한 탓인데, 하나님께서 타조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우리가 타조처럼 자녀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안 된다는 것과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는 것과 지혜 없는 자도 하나님께서 내시고, 하나님의 관할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 39:19-25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그것이 골짜기에서 허위고 힘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하며 칼을 당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그 위에서는 전동과 빛난 작은 창과 큰 창이 쟁쟁하며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를 들으면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나팔 소리 나는 대로 소소히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장관의 호령과 떠드는 소리를 듣느니라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말(馬)에게 준 힘과 용맹에 대해 말씀 하셨다. 말은 위엄스런 울음 소리와 옷소리를 내며 목에는 갈기(긴털)가 있어서 달릴 때에 바람에 흩날린다. 그리고 힘이 강하여 골짜기도 메뚜기처럼 뛰어 올라가고 전쟁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군사를 맞아 앞으로 나아가며 장군의 명령을 따라 나팔소리를 듣고 행한다. 이렇게 용맹있고 바르며 영리한 말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잘 이용되도록 하였다. 타조는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않게 하셨으나 말은 사람에게 이용당하게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 사람이 모든 것을 이용하여 자기 할 일을 해 나가야 한다.
• 39:26-30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욥이냐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거하며 거기서 움킬 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 있느니라
독수리는 높은 낭떠러지에 보금자리를 정하여 눈이 밝아서 멀리가지 바라보며 먹을 짐승을 찾아 움켜서 자기도 먹고 새끼에게도 그 피를 빨아 먹게 한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것이 아니고 그러한 지혜와 성질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짐승들에게 필요한 대로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되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도 있게 하고 순종치 않는 것도 있게 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들도 하나님께서 관할하고 어거하여 당신의 지혜와 권능을 나타내는데 이용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알 수 없는 모든 일이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다 하실 수 있는 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다리는 것이 신앙이다.